아스따 루에고, 스페인!

by 길문

여행이 끝났다. 시작을 했으니 마침표를 찍은 건데, 다시 그곳을 가는 건 미지수라서 아디오스(goodbye!)가 맞을 것 같다. 그런데 인생엔 '다시'가 있을 수 없지만 여행은 아스따 루에고(다시 만나요!)가 가능하니 그럼 아스따 루에고로 바꿀까? 이걸 굳이 생각한 건 여행과 인생을 같이 놓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행처럼 사는 것이 '다시' 가능하다면 난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 어떻게 살고 싶을까?


스페인을 돌아보기로 마음먹은 건 피코스 데 에우로파(Picos de Europa) 때문이었다. 유럽의 봉우리로 알려진 그 단어는 스페인 북부 산악지역인 칸타브리아(Cantabria), 아스투리아스(Asturias), 레온(Leon)에 걸친 광대한 스페인 최초 국립공원이자 유네스코 생물권 보존지역을 말한다. 엄청난 석회암 지대라서 카르스트 지형이 뭔지 제대로 알 수 있는 곳이다. 이제 한국인 단체 등산객들도 온다는 그곳을 굳이 택한 배경엔 자연스럽게 작년 돌로미티 알타 비아 1 트레킹이 너무 좋았다는 기억이 있었다. 그곳 같은 곳 또 없을까 찾다 찾은 그곳. 그럼 그곳에 어떻게 갈까, 도움을 준 건 인터넷이었다. 자료를 뒤지다 찾으니 나온 영국 회사. 트레킹과 액티비티를 전문으로 하는.

20250907_115233.jpg 바르셀로나까지 태워다 준 아시아나 비행기

혼자 가는 것보다 당연히 가이드 두 명이 따라붙는다면 믿음직스럽지 않을까? 그렇게 선택한 후 일정을 생각하다 이왕 스페인에 가는 거 언제 다시 오겠냐는 심정으로 나름 일주를 해보자는 생각까지 나아갔다. 그렇게 짠 계획. 남들은 어떻게 땅 큰 이 나라를 여행하나 염탐을 하는데 상당히 공을 들이고, 마지막으로 트레킹을 위한 집결지 빌바오 공항에 도착하는 비행기 편을 마련하니 여행 준비는 거의 끝났다. 떠나기만 하면 되는데, 여기서 또 이왕지사 스페인에 가는 거니 돌아올 때 이탈리아를 거치기로 했다. 하나 덤으로 붙였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 없으니 말이다.


일정에 로마라는 코 하나 더 붙인 건 경유 편 비행기를 구할 수 있어서, 직항 표는 비싸거나 없으니, 이럴 거면 어딜 거쳐서 오냐 했던 것이다. 올해 로마는 희년(Jubilee)을 맞이했다. 이탈리아에 국교는 없지만, 정교분리 국가라서, 대게 가톨릭이 아닐까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건 로마에 많은 성당의 숫자뿐만 아니라, 로마에 있는 바티칸시국이 많은 여행객들을 끌어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 때문이다. 콜로세움 없는 로마를 상상하기 어려운 것처럼, 바티칸이 없는 로마 또한 상상이 될까? 콜로세움 만으로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에는 힘이 달리지 않을까?


동네 노는 할머니?

스페인 못지않게 이탈리아도 관광수익이 전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나라여서, 로마시 재정에 바티칸이 주는 영향을 논하는 건 의미가 없을 정도이다. 특히 종교적인 면에서 전 세계에서 신자 수가 두 번째인 가톨릭을 로마시가 앞장서서 환영을 했다는 건 작년에 여실히 보여줬었다. 2024년 로마 시내는 일 년 내내 공사 중이었다. 무엇을 위해? 2025에 맞는 25년 주기로 찾아오는 가톨릭 희년 행사가 주범(?)이었다. 2025년 로마를 찾을 순례객들을 위해 말이다. 그러니 바티칸 행사가 로마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이러니 로마는 이탈리아는 가톨릭 국가가 아님에도 마치 국교가 가톨릭인 것처럼 믿어지는 이유가 될 것 같다.


연례행사처럼 떠나고 싶어 떠나는 트레킹을 올해는 피코스 데 에우로파로 정하고, 여기에 스페인 일주 같은 여행을 더한 후 기꺼이 엮은 로마까지 넣다 보니 일정이 길어졌다. 이걸 온전히 내 힘으로 해내고 싶었다. 자유여행 말이다. 어디를 가든 현지 가이드를 통하지 않고 스스로 도시 명소를 다니고 먹는 것도 해결하는 여행. 이걸 준비하는 건 온전히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하나하나 교통편과 숙소를 예약하고 그 도시에서 가장 봐야 하는 명소까지 카드로 해결하니 어느덧 그 복잡한 것 같은 과정이 알아서 해결된 듯 보였다. 이제 중간에 변수만 생기지 않으면 이걸 그대로 진행하면 되는 것이었다.

20250924_100132.jpg 산에 눈이 쌓여 보기는 좋았는데......

계획이 승리한 이번 여행은 내가 더 노력해서가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대견하게 여겨졌던 모든 결과들이 종교적으로 표현하면 '은총'이 되겠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어느 곳이든 사람 사는 동네가 별다르지 않아서였다. 장삼이사! 딱 들어맞는 말인 듯 인간이 만든 제도와 시스템이란 것이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 워낙 사람이 많이 몰리는 지역이라서 미리 예약할 건 예약을 하면 큰 어려움은 생기지 않으니까. 결국, 사람이 만든 보통 사람도 다 이용하는 시스템에 올라타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것도 종이 한 장 필요 없이 오직 PDF 파일들과 이를 저장한 스마트폰만 있으면 어려움이 없었다. 단지, 이걸 잊어버리지 않고 소매치기로 유명한 두 나라에서 그들을 무시하고 다니면 되는 거였다.


바닷가 옆이라서 그런지 비가 자주 오던 바르셀로나를 지나 그라나다를 거쳐 안달루시아 지방에 갔을 때는 더운 날씨로 인해, 입에서 정말 단내가 날 정도였다. 작은 물병 두 개가 모자랐던 그곳에선 마치 여행 그 자체가 '순례'인 듯 여겨져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이걸 한다고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이걸 하고 있는 그 자체가 무슨 사명감으로 하는 것인지 라는 생각까지. 사실은 이걸 포기하면 모든 여행이 멈춰지기 때문인데, 낯선 땅에선 그건 도박이었다. 그렇다고 못해낼 것도 아니니 마저 끝낸 것이지만.

20250929_133852.jpg 성 밖 바오로 대성전 전경

사실, 여행이 좋은 건 몰입할 수 있어서다. 모든 것이 생소하고 처음 해야 하니 집중은 필수적이고, 여기서 혼자 하다 보니 약간의 긴장과 염려는 양념이 되어 평소 얼마나 무용한 생각으로 소모적으로 살아왔는지 깨닫다 보니, 종착점이 보였다. 그건 이미 빌바오에서 마드리드를 거쳐 이탈리아 영해로 들어서는 순간 어슴푸레 알게 된 것이지만, 그래서였을 것이다. 희열! 감기 기운이 있었지만 마저 로마에서 희년을 다른 순례자들처럼 끝냈기에 찾아왔을 그것을 만난 곳은, 마지막으로 찾은 성 밖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였다.


그것도 자연스럽게 당연한 듯이 당당하게 찾아온 그것 때문이라도 여행을, 걷는 걸 멈추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앞으로도 쭉 틀리지 않을 것 같으니, 아마 난 예지력이 있나 보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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