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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랜시스 하 Apr 17. 2024

타지로 떠나 나에게 남은 것들 (feat. 애니 홀)

 마음에 그리운 도시 하나 품고 산다는 은밀한 경험에 대하여.

각자의 결핍에 따라 다른 모양 다른 답 다른 이야기가 쓰여진다. 


영화 <애니 홀>에서 우디 앨런은 인생을 두 종류로 분류한다. 비참하거나, 끔찍하거나(miserable or terrible). 심각한 장애를 앓거나 희귀병으로 사투하는, 이런 극단적인 비극을 제외하고는 모두 비참한 인생 쪽에 속한다고 단언해 버린다. 그 말을 나도 부정하지 않는다. 아니 강하게 동의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비참한 인생에 품고 갈 아름다운 기억이 필요하다. 나에겐, 간곡히 필요했다.

Annie Hall

뉴욕과 도쿄. 특히 뉴욕은 미저러블한 내 인생에 내게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을 남겨준 도시다. 여기서 아름다움이란 국어사전에서 정의하는 의미(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 만하다)와는 좀 다른 결을 뜻한다. 

영영 사전을 보면 beauty는 좀 더 넓은 의미로 쓰이는데
“the qualities in a person or a thing that give pleasure to the senses or the mind”

즉, 마음이나 감각에 기쁨을 주는 사람 또는 어떤 것들의 특성을 뜻한다. 그래서 beauty는 주관적이다. 


A에게는 꼴 보기 싫은 점이 B에게는 나의 beauty로 느껴지기도 하니까. 사람을 기쁘게 만드는 것은 기뻐하는 그 사람의 성질과 성향에 따라 다른 법이니까. 누군가에겐 뉴욕이나 도쿄가 misery 또는 trash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내게는 beauty였다.


그 도시에서 나는 내 결핍의 모양을 따라 공원과 갤러리, 5번가 애비뉴, 숱한 골목들을 걷고 사람들을 지나치거나 마주하거나 바라보면서 나의 이야기를 살았다. 내가 그리워한 줄도 모르던, 비로소 닿았을 때 애틋한 장면들이 그곳에 있었다. 


마음에 그리운 도시, 사랑하는 도시 하나 품고 산다는 것은 사랑할 수 있는 도시를 발견한다는 것은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은밀한 경험이다. 


뉴욕행을 결심했을 때 내 삶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예쁜 카페에 가고 맛있는 코스 요리를 먹어도 기쁨이라는 것은 내 맘대로 솟아나지 않았다. 공허했다.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색을 잃어갔다. 좋아하던 게 많은 사람이었다. 작은 일에도 설렘이라는 사치를 누리던 내가 이렇게까지 동태눈을 한 사람이 되었다는 게 당혹스러웠다. 


마찬가지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아무 감흥이 없어요” 이런 고민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여기에 이렇게 답하고 싶다. 마주하면 알게 돼요. 내가 좋아하는 게 내 곁에 내 앞에 나타나면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이 감정이 반응한다고. 그때 감지하면 된다. “아, 나 이걸 좋아했구나”라고. 

마음에 그리운 도시, 사랑하는 도시 하나 품고 산다는 것은 사랑할 수 있는 도시를 발견한다는 것은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은밀한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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