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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랭크 Jun 01. 2024

[캔버스에 비친 내 모습] 충분한 물감

초보자는 선을 애매하게 긋는다. 실수할까 봐, 다시 고칠 수 없을까 봐, 지금까지 애써 그린 것을 망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오늘도 2시간째 지지부진한 속도로 제자리를 맴돌며 그림의 마무리를 못하고 있었다.


"얼굴에 선을 그릴 때 메마르게 붓칠 한 이유가 있으세요?"


다가온 강사가 말을 건넨다.  캔버스를 보니 붓이 지나간 자리가 마른 바퀴자국처럼 성글다.


"물감을 충분히 써보세요. 그것만으로도 소위 있어 보이게 선을 다듬을 수 있고, 피부의 층을 표현하기도 쉬워요."


2시간 동안 선의 두께, 색, 각도, 위치를 따져가며, 몇 달간 배운 조각 지식을 모아 힘들게 노력하던 참이다.  그러나 몇 차례 떼었다 다시 붙인 테이프 마냥 표면은 더 뭉개지고 있었다.


 나는 회사 회의에서 보통 모두가 한 가지 해결 방안을 고민할 때 3가지 대안을 떠올린다. 그리고 3가지 대안 각각에 나름의 반박을 부딪혀 가능한 최선의 방안을 찾는다. 그리고 그 방법의 타당함과 예상되는 난관들을 나열하며 계획을 세우자고 한다. 이러한 빠른 사고에 알량한 자부심을 가지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좋은 방법은 쉽다.


누군가는 문제를 쉽게 푼다. 동료들과 쌓아둔 '충분한' 신뢰로 몇 단계의 절차를 건너뛰고 직접 하면 2주는 걸릴 일을 부탁하여 3일 만에 끝낸다. 그리고 남은 시간 여러 번의 피드백을 받으며 완성된 형태를 갖추고 마무리한다. 그리고 더 큰 일을 할 새로운 신뢰를 챙겨둔다.


 나의 복잡한 문제접근 방법은 혼자만의 제한된 능력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 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물감을 쓰세요."

물감을 흠뻑 칠한 캔버스의 인물은 조금이나마 표정과 홍조를 띠며 마무리의 느낌을 담아냈다. 불과 몇 분 만에 가벼운 성취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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