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약한 지병을 앓고 있다. 가끔 피곤한 날들이 이어지면 증상이 심해지고, 다음 날에는 이인감이 찾아온다. 그렇게 현실과 유리된 느낌으로 며칠을 보낸다. 희망 없는 생경함 속에 살게 된다. 그럴 때마다 세 가지 현상을 경험하고는 한다.
먼저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줌아웃된다. 나는 세트장 밖에서 이 상황을 바라본다. 영화 '트루먼 쇼'처럼 그 안의 일상과 사람들, 건물들은 인위적으로 보인다. 꺼림칙한 점은 한 주 동안 나를 사로잡았던 열정과 분노가 세트장 밖에서는 모래알만큼 작게 부질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나를 대하는 타인의 시각일지도 모른다. 내게 중요했던 것이 그들에게는 전혀 주목할 만한 것이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타인들이 이뤄낸 평소에 알고 있던 일들이 거대하게 느껴지고 압도된다.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개인 사업으로 시장의 수요를 끌어내고, 한 분야를 좋아해 책이나 음반을 출시한 이들의 복잡다단한 수놓음이 명확히 보인다. 내가 했던 일들은 거대한 것들에 기대어 이루어진 일처럼 느껴지고, 나는 작게 느껴진다.
그리고 시간의 끝이 보인다. 특별히 기억에 남지 않는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끝에 도달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 끝이 얼마뒤에 올 것처럼 느껴져 지금과 끝 사이의 시간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특별히 갈구하는 것은 없는 채로, 역에 서서 열차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서있다. 기다림 사이에 어떤 경험을 새겨 넣어야 시간이 천천히 흐를지 생각해 본다.
어제에 이어 오늘까지도 유리창 너머의 내가 보인다. 허공에 손짓과 발짓을 바삐 흔든다. 하지만 유리창 너머의 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슬픔인지 좌절인지 그 몸짓만으로는 구분하기 어렵다.
3일 차가 되어 이전의 상태로 돌아왔다.
무엇이 현실일까?
어떤 것이 사실에 근접할까?
유리창 너머에도 온기는 없다.
그래도 공허함의 열기는 유리창 안 무대에 있을 것이라 상상한다.
우둔한 다툼이라도, 끝이 보이지 않도록 오늘이 새로웠으면 좋겠다.
잠을 설치더라도 기억할 하루의 감정이 있는 밤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일은 각인될 경험의 하루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