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처럼, 아메리카노 커피

뉴요커의 뉴욕 읽기, 뉴욕 일기

미국인처럼, 아메리카노 커피


아메리카노(Americano)라는 말은 영어에서 미국을 뜻하는 'America'를 말의 뿌리로 하고 '..처럼'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탈리아어 접미사 ‘no’가 붙어 만들어진 단어이다. 그래서 아메리카노커피를 단어 그대로 해석한다면 “미국처럼 마시는 커피”인 셈이다.


이 해석이 아메리카노커피에 대해 익히 잘 알려져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허술해 보인다. ‘미국처럼’ 마시는 것이 아니라 ‘미국인처럼’ 마시는 커피가 아메리카노 커피이니 조금의 보완이 필요할 것 같다.


미국인을 뜻하는 'American'에 'no'를 붙이면 ‘아메리칸노(Americanno)’가 되고 여기에서 중복되는 철자 n을 하나 생략한 것이 ‘아메리카노(Americano)’라고 바뀐 것이라 보는 것이 좀 더 적절할 듯하다. 이렇게 탄생한 아메리카노커피라는 표현에는 나름 커피 맛을 좀 안다는 이탈리아인들이 커피 맛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아 보이는 미국인들의 커피마시는 방식에 대한 무시가 담겨 있다.


어쨌든 진하게 내린 에스프레소커피에 뜨거운 물을 부어 희석시킨 미국인스타일의 커피가 이제는 대중적으로 사랑받고 있으니 더 이상 “미국인처럼 마시는 커피”에 대해 “커피 맛이라곤 개뿔도 모르는 무식한 미국인들이나 마시는 커피”라고 깔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미국인처럼 마시는 커피는 그 뿌리에서부터 철저히 대중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사실은 대중성보다는 서민성이 더 가까워 보인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 온 초기의 이민자들은 차(Tea) 마시기를 무척 좋아했었다. 유럽의 차 문화를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정치와 경제적인 이유로 홍차의 가격이 비싸지자 그것을 대신할 만한 것을 찾아야만했고 이때 그 자리에 들어선 것이 커피이다. 하긴 진하게 내린 커피에 뜨거운 물을 부어 양을 늘리면 색이나 느낌이 홍차를 우려낸 것과 얼핏 비슷해 보이기는 한다. 커피원두를 거의 검어질 때까지 불에 볶는 미국식 다크로스팅 스타일 또한 이렇게 경제적인 이유에서 시작된 것이다. 유럽 땅에서는 서로 인연 없이 살던 홍차가문과 커피가문이 신세계였던 미국 땅에 넘어와서는 대충 뒤섞여 울타리 없이 살아가게 된 격인 셈이다.


그렇게 아메리카대륙에서 유행하던 커피취향이 유럽으로 건너가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들에 의해서이라고 한다.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들은 유럽인들이 마시던 에스프레소커피에 뜨거운 물을 부어 희석하면 미국본토에서 마시던 커피와 비슷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것이 오늘날의 아메리카노커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유럽에서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넘어갔던 커피가 다시 유럽으로 돌아오면서 “미국인처럼 마시는 커피”로 스타일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미국인의 커피는 영국식 티타임의 편안함이나 우아함과는 원래부터 거리가 멀었다. 미국인의 커피는 다크로스팅된 원두를 아주 미세하게 갈아두었다가 뜨거운 물을 부어 대충 내려서 자신의 입맛만큼 커다란 컵에 대충 부어 들고 다니면서 대충 마시는 가장 서민적인 음료이다. 그러니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커피를 마치 걸레 빤 물 같다고 혹평했던 유럽인들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것도 같다.


아무튼 그 유래를 알게 되면 미국식커피에게서 뭔가 의미를 부여할 만한 특별한 맛이나 향을 찾으려는 시도 따위는 한낱 어리석은 짓임을 알게 된다. 길거리의 허름한 델리 선반에 놓인 색 바랜 보온 통에 채워 둔 것을 찍 찍 눌러 손에 잡은 종이컵 가득채운 쓰고 검고 양 많고 뜨거운 검은 음료가 가장 미국인적인 커피인 것이다.


뉴욕의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산책하던 덩치 큰 멍멍이도 스타벅스에 들러 아메리카노 그란데 한 잔 입에 물고 나올 것 같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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