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그 밀어 같은 속삭임에서는 <커피>라 불리는 말간 진갈색 액체의 은밀한 향긋함과 촉촉한 입맞춤이 느껴진다. 커피가 없는 카페를 생각할 수 없기에 커피를 손에 쥘 수 있는 곳이라면 공원의 벤치이건 바닷가 언덕이건, 그곳이 어디이든 간에 카페인 것이다.
돌이켜보면 커피에 빠져 살아온 날이 그 누구보다 길고 깊다. 그래서 어느 누군가와 커피와 커피에 얽힌 이야기로 속 하얀 잔을 달그락거리게 된다면, 여러 낮과 밤을 꼬박 지새운다고 해도 행여 먼저 잠자리를 찾게 될 일 따윈 없을 것 같다.
사랑이 깊어지면 한 곳만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 인간이란 존재인가 보다. ‘한 곳 바라보기’가 외사랑이라 한들 어떠하랴. 그래서 쓸쓸함이, 외로움이 좀 느껴진들 어떠하랴. 사랑하는 것에는, 사랑한다는 것 밖에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할까. 사랑하는 그것에 대해서라면 그 어떤 미사여구를 주절주절 늘어놓는다 해도 부끄러울 일이라곤 하나 없겠다.
‘커피와 사랑에 빠진 이’라면 애초 ‘길 떠날 운명’을 타고난 것이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운명의 길을 느린 보폭으로 여러 계절과 여러 해를 걸어본 이만이 커피의 속살을 어느 것 하나 놓침 없이 구석구석 탐닉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커피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는 불어오는 바람을 핑계 삼아 종종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커피와 나의 농익은 사랑 얘기 몇 토막을 풀어놓아야겠다.
커피의 기본적인 속성에는 맛과 향과 색이 있다. 커피가 가진 이 세 가지의 속성에는 이성적으로 설명 가능한 정형성과, 감상을 바탕으로 한 정성성이 덧붙여지게 된다. 하지만 커피를 가슴으로 사랑하게 되면, 매일 아침 같이 눈 비비며 깨어나는 옆지기 같이, 굳이 정성성이나 정형성을 구분하는 것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게 될 수가 있다. 그때가 되면 늘 편하기만 하기에 언제나 손 닿을 곳에 있어야만 하는, 언제나 낮은 목소리로 부를 수 있어야 하는 그 또는 그녀와 같은, 식구이자 분신 같은 존재가 커피인 것이다.
어찌 되었건 간에 맛으로 보자면 혹자들은 신맛과 쓴맛 그리고 떫은맛, 이렇게 세 가지를 커피의 기본적인 맛이라 애써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커피와 사랑에 빠진 이이게 있어, 커피에게서 느껴지는 맛이 어디 이것들 뿐일까.
커피의 맛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화자의 감상과 추억이라는 요소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그 감상과 추억이 속살 뽀얀 잔에 고여 있는 갈색의 말간 액체 안으로 녹아들면 수 십, 아니 수백의 커피 맛이 탄생하게 된다.
겨울 들판의 싸한 맛과 가을 하늘의 파리한 맛, 자갈치 시장의 비릿하지만 평온한 맛과 오월 장미꽃의 플로럴 한 맛, 봄날의 들판에 내리는 햇살의 따사로운 맛과 사랑스러운 연인의 입술 같은 달콤한 맛, 그리고 너의 가슴 같은 포근한 맛, 그 외에도 사람의 감상과 가슴이 빚어낸 그 어떤 표현이 커피의 맛에 덧붙여진다고 해도 고개 저을 일은 없을 것이다.
커피의 향기는 또 어떤가. 갓 내린 커피에서 스멀스멀 오르는 새벽안개 같은 향기의 포자들을 어떻게 글과 말로 잡아낼 수 있을까.
바닷가 언덕길의 눅눅하면서도 상쾌한 향기, 산 능선 바람의 싱그러운 향기, 봄 들판의 풋풋한 향기,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의 구수하고 누릿한 향기, 슬픈 눈물 같은 애절한 향기, 시골길에 날리는 흙먼지의 희뿌연 향기, 장날 곰삭은 젓갈의 콤콤하면서도 아늑한 향기, 밤하늘 달빛에서 묻어나는 은은한 향기, 갓 비 그친 깊은 숲 속의 초록 향기, 이른 새벽 첫 빛에 반짝이는 이슬방울의 초롱초롱한 향기,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향기를 커피의 향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커피의 색을 얘기하자면 지면이 더 길어질 수도 있다. 사람의 인생 저마다, 자신만의 색을 가지고 있듯이, 손끝으로 딸그락거리는 한 잔의 커피 속에는 추억이 녹아든 자신만의 색이 그 안에 담겨 있기 마련이다.
말간 연갈색 가을을 닮은 너의 색, 짙은 흑갈색 눈망울을 지닌 너의 색, 망망한 잔물결 같은 너의 색, 겨울 들판의 눈빛처럼 하얀 너의 색, 하늘호수에 잘게 부서지는 구름 띠 포말 같이 뽀얀 너의 색, 가을의 단풍잎처럼 노랗고 붉은 너의 색, 속 하얀 잔에 찰랑이는 연갈색 바다 빛깔 같은 너의 색처럼 갈색 또는 흑색, 뽀얀 백색의 크레마에 인퓨전 된 삶과 추억의 색과, 자신이 담기는 잔을 따르는 고집 없는 색이 커피의 본연의 색인 것이다.
말해놓고 보니 커피, 그놈 수다스럽고 변덕스럽긴 하지만 참 사랑스럽다. 하긴 변덕스러운 만큼 허술하고 허술한 만큼 편안해서 좋은 것이 커피이기도 하다. 아무리 담아낸다 해도 커피로 인해 시작된 글은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으니, 커피는 사람을 수다스레 만드는 샘물이라 할 수 있겠다.
커피의 변덕스러움이란 게 단지 감상의 변덕에 그 원인을 둘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변덕의 원인은 또한 커피 자체가 가진 불완전성에서도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순하게만 보이는 사람이라고 해도 고집스러운 몇 가지 면이 있기 마련이듯 커피에서도 또한 고집스러운 면을 찾아볼 수 있다.
커피는 간혹 예민하고 다루기 힘든 여자 같이 느껴지기는 때도 있다. 하긴 장미 넝쿨을 감싸고 있는 가시의 뾰족함이 싫지만은 않듯이, 날카롭기에 사랑스럽고 그래서 더 보듬어 안고 싶은 것이 커피인 것 같다. 어쨌든 커피에서는 어느 단 한순간이나마, 어떤 특정한 맛이나 향에 갇히지 않으려는 지극히 어여쁜 커피의 고집이 느껴진다.
하지만 환경적인 면에서 본다면 커피는 연약하면서도 아무런 고집이 없어 보인다. 자신이 자라온 장소, 밭의 토양, 재배된 해의 기온, 태양의 빛, 물의 온도, 물의 양, 원두의 양, 물의 성분, 분쇄 정도, 로스팅된 정도, 산패의 정도, 보관 상태, 보관 환경, 보관 기간, 온도와 습도, 설탕이나 크림과 같이 토핑 되는 그 무엇들과 인퓨전 되는 향과 맛, 담기는 잔의 성질과 색상에 따른 변화와 같이 셀 수 없이 많은 환경적 요인이 커피의 맛과 향, 색의 변화에 다양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기물을 원재료로 한 가공물이란 게 성장환경과 가공방법, 유통과 보관 과정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란 것을 이해한다면, 커피의 변덕스러움을 당연한 것이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커피를 사랑하는 이들 중에는 유독 그날의 날의 커피의 맛과 향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가 있다. 나 또한 그런 부류에 속한다고 말하는 것에 아무런 부끄럼이 없다.
누군가, 왜 커피에 대해서만 그러하냐고 물어온다면, 지금 모락 하게 피어오르는 커피의 물안개에, 입으로든 가슴으로든, 자신의 추억과 감상을 녹여내거나, 커피의 향과 함께 갈빛의 사색을 즐기거나, 커피 잔을 만지작 거리면서 연인이나 친구와의 수다로 시간 가는 줄을 잊고 있고 있는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하고 싶다.
“지금 당신에게 커피는 무엇이고, 어떤 의미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