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카라바조를 찾아서

2. 카라바조를 찾아서


흔히 [카라바조]란 네 글자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년 9월 29일 - 1610년 7월 18일)는 미술사에 있어 일대 파란과 혁명을 일으킨 천재 화가 중에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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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 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 1609–1610, Galleria Borghese, Rome, Italy


"삶이라는 기나긴 길을 걸어가다가 보니 알게 되었다. '천재'라고 불리게 되는 것이 그 자신의 입장에서는 그리 환영할만한 일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세상은 천재를 향해 무한한 환호성을 보내는 것 같아 보이지만 막상은 범인들의 잣대를 그에게 들이대려 들고, 일상이라는 굴절 렌즈를 낀 채로 뭔가 수군거릴만한 얘깃거리를 찾아내려는 듯 그를 벌거 벗기기를 마다하지 않는 이상한 곳이다.


범인들이 바라는 천재란, 지극히 일상적이면서 평범한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가졌지만 특정 분야에서만은 획기적일만큼 놀라운 능력을 가진 이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천재는, 탁월함을 넘어 엄청난 능력을 가진 데다가 누구보다 완벽한 인격까진 갖추어야만 세상의 비난을 피해 갈 수 있을 텐데, 과연 그런 완벽한 사람이 존재하였던 것인지, 신이라면 가능한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궁금하다. 대체 세상의 비난으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천재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천재는 비록 특정한 한 두 부분에 있어서 탁월한 재능을 지니긴 하였지만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는 허술함과 부족함이 넘쳐나는, 지극히 연약하면서도 불완전한 우리와 같은 인간일 뿐이다.

따라서 천재는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고 이해되어야 하는데도 세상은, 천재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체계와 사고의 울타리 안으로 그의 사상과 행동을 몰아넣어 가두려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들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기괴한 일들이 그들의 삶을 가득 메웠던 것처럼 보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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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또한 그런 경우이다. 삶은 그 자체가 소설 같은 것이었으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수한 가십거리가 그의 주변에 마구 흩어져 있고, 그것들의 파편으로 인해 분명 '그'라고 지칭되고는 있지만 '그가 아닌 또 다른 그'의 삶을 살아간 것처럼 여겨지는 위대한 그림쟁이가, [미켈란젤로 메리시 카라바조]인 것이다. 그래서일 것 같다. 그를 뒤따르는 길에서는 심심함이라든지 지루함 따위가 끼어들 일이라곤 전혀 없는 것이.


그의 작품이 당대의 시대적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쩌면 시대를 너무 앞서갔던 것처럼, 그는 자신의 삶에 있어서도 아웃사이더로 살아간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당대의 문화적 수준과 사회적 분위기가 카라바조와의 성향과는 제대로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남겨진 기록을 통해 카라바조의 삶을 유추해보면, 적어도 삶에 있어서의 그는, 자신의 감정과 내면의 소리를, 마치 어린아이가 그러하듯, 자기중심적으로 이해하고 반응하면서 살았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세상 사람들은 카라바조의 그런 성향에 대해 '충동적이고 무계획적이면서 무분별한 삶을 살아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긴 저잣거리와 뒷골목을 쏘다니면서 술판과 노름판에 끼어들었고 여러 싸움질에 연루되어 경찰서와 법원과 감옥을 들락날락거리다가 결국에는 시비 끝에 사람을 살해하고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으니, 누구도 그의 삶에 대해 '반듯하다'라고 하는 이성적인 표현을 사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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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삶을 쫓는 것이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에 있어 선입견이란 높고 긴 담장을 둘러치게 만드는 일일 수 있지만, 예술가에 따라서는 그가 남긴 작품에 대한 이해와 감상의 폭을 극적으로 넓혀주는 흥미로운 작업이 되기도 한다.

카라바조는 그의 작품만큼이나 삶의 행적 또한 드라마틱한 예술가이다. 그래서 카라바조라는 예술가를 제대로 알아간다는 것은 그의 작품을 알아간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의 삶과 사상, 죽음을 함께 알아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삶을 바라보고 있으면 별빛 하나 없는 깊은 밤에 피워 놓은 장작불의 불꽃을 떠올리게 된다. 잘 마른 둥치 굵은 장작이 타닥타닥 거칠게 타오르듯이, 그의 삶은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뜨거웠던 그의 영혼을 따라 격정적으로 타올랐다가 어느 한순간, 어쩌면 너무 허무하다 할 수 있을 만큼, 빠르게 꺼져버렸다. 그리곤 잘 타올랐던 불꽃이 때깔 좋은 숯을 남기는 것처럼 영원토록 반짝이는 작품을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


아무리 열심히 그의 발자국을 쫓아다녀도,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궁리를 해봐도, 그의 삶의 걸음에서는 일정한 방향이나 패턴이 찾아지지 않는다. 아마도 그래서 일 것 같다. 그를 뒤따르는 발걸음을 멈출 수 없는 것은.


하긴 불꽃같은 삶을 살다가 떠난 이에게서,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천재 예술가 카라바조에게서, 그런 것 따위를 찾으려는 시도는 일개 범인에 지나지 않는 이의 어리석은 시도일 뿐이다. 불꽃의 속성이 비정형성일진대 어찌 정해진 형식이나 형태를 그것에게서 찾아낼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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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카라바조의 그림 앞에 선다. 눈을 당겨 그가 남겨 놓은 선과 구도, 명암과 색채, 인물의 표정과 붓질을 세세하고 꼼꼼하게 살펴본다. 이런 날이 얼마나 더 지속되어야 할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지나온 시간보다 더 길고 긴 날을 이렇게 지내게 될 것 같다.


이렇게 살아가다가 보면 예측할 수 없는 암시와 새로운 강렬함이 그의 작품에서, 그의 삶에서, 더 찾아지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카라바조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마지막 장을 넘기지 못하고 손가락 끝을 파르르 떨게 만드는 책의 매력처럼 아름답게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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