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고도를 기다리며, 오지 않은 것 기다리기

살아남은 자의 숙명: 사색으로의 초대

13. 고도를 기다리며, 오지 않은 것 기다리기



1. 그를 기다리며


살아간다는 것이 자신의 아둔함이 그 깊이만을 더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끔은 의심스러워질 때가 있다. 그때마다 왜 그런 것인지에 대해 그 원인을 찾아내려 애써보긴 하였지만 실상은 그것이란 것의 언저리조차도 더듬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언젠가부터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의 주인공들처럼 아직 오지 않았지만 분명 올 것이 틀림없는 고도(Godot), 그를 기다리게 되었다.


어쩌면 그들이 기다린 그는 어떤 신(God)일 수도 있고, 그냥 고도라 불리는 어느 남자이거나 여자일 수도 있다. 그는 형체를 지녔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는 어제 내린 줄기 가는 빗물이었거나 방향 없이 스쳐 불어간 어느 날의 바람이었을 수도 있고, 며칠 전 터벅터벅 늘어진 걸음으로 지나간 그 누구였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간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굳게 믿으면서 그가 내일에는 분명 이곳으로 올 것이기에, 이 자리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 뿐이다.

예정 없이 시작된 이 기약 없는 기다림이 비록 부조리해 보일 수도 있지만 기다리는 행위는, 그것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기다리는 것이라면,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기다림을 통해 스스로가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비록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공간에는 잔돌을 쌓아 만든 담장이 둘러쳐져 있지만, 그를 기다리는 가슴의 영역에는 아무런 울타리가 둘러치지 않은 들판에 파란 하늘과 푸른 초장만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점차 바닥을 향해 깊숙이 흘러내린 사색의 줄기는 세상의 처음이자 인간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정신계에 도달한다. 정신계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뿌리이고 깨달음의 시작이며 끝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곳이 보인다는 것은 자신의 근원에 가까이 다가선 것이기도 하다.


그곳이 가까워질수록, 인간의 정신이나 그것을 담고 있는 그릇으로는 결코 담아낼 수 없는, 표현하기 어려운 무언가에 대한 느낌을 점차 알아가게 된다. 또한 걸음마다 점차 강해져 가는 자신의 실존에 대한 확신은, 그곳 자체가 거대한 실존의 자장磁場이거나, 적어도 실존을 인도하는 어떤 존재가 그곳에서 강렬한 무엇인가를 뿜어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에 대한 그리고 그것에 이르는 길에 대한 고찰과 그 결과물을, 생각하는 이의 저잣거리 철학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혼돈과 혼동 속에서 그것의 족적을 따라나선 글줄의 흔적을 저잣거리 철학의 현재화라 이름 붙인다.

2. 생각하는 이의 저잣거리


적당히 이름 골라 붙이기를 마친 저잣거리 철학은 이제 저잣거리 한복판으로 끌려 나온다. 저잣거리 철학이 끌려 나온 이 길이, 그래서 그것이 걸어가야 할 이 길이, 생각하는 이의 저잣거리이다. 어디론가 끌려나가게 되는 것에는 죄 있음이나 죄 없음이 기준이 되지 않는다. 그저 어느 날 문득, 누군가의 강한 힘에 의해 또는 알 수 없는 인력에 이끌려, 북적이는 저잣거리로 끌려나가게 되는 것이다.


세상살이란 게 아무리 생각하며 행동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죄를 짓지 않고는 살아갈 길이 없기 마련이다. 그러니 어느 누군들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지나가버린 죄를 죄로써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자각 능력의 결핍이 현재 내가 범하고 있는 가장 큰 죄일 수도 있다. 인지 못한 채 저질러진 죄가 언젠가의 원죄가 된다.


아무튼, 죄의 유무에 대한 성문화 된 판결은 없었지만, 법정에 끌려 나간 기억조차 없는대도 불구하고, 어느 날 저잣거리에 던져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의 죄라는 것이 현재의 죄만으로 국한한다면, 저잣거리로 끌려 나온 인간은 ‘왜 그렇게 된 것인지’, 그 이유를 알 길 없고,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 방법 또한 찾을 수 없는 부조리한 상황 속을 헤매게 되는 것이다.

생각하는 인간의 걸음은 결코 멈춰 서지 않는 법이다. 그러니 생각하며 기다린다는 것은 목적지 없는 길을 이유 모른 채 걸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오지 않은 것이라 여기는 것, 어쩌면 오지 않을 것을 기다리는 것은 실체 희미한 무언가를 찾아가는 기나긴 여정인 것이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현재의 죄를 찾아낼 길이 없으니 지나온 죄에 대해 돌이켜본다. 팔을 길게 뻗어 기억의 공간을 휘저어보지만 어느 것이 죄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혹시 죄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망각의 강 건너편으로 띄워버린 것들에 대해선 알 길 없다.


"죄가 없는 데도 끌려 나온 것일 게야."


무지는 하늘을 향해 투덜거리게 한다. 무지의 죄가 현재의 죄에 덧붙여진다.


“그가 오면, 나의 모든 죄는 사함을 받을 거야.”


이제 마음의 결에 편안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는 죄로부터 나를 구원할 것이다. 마음의 심층에 작은 결이 찰랑인다. 두 손 모아 기도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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