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벗어난 집시
살아남은 자의 숙명: 사색으로의 산책
계절을 벗어난 집시
어느 날 자신이 속해 있던, 속해 있었다고 믿었던 무리를 이탈한 집시 하나가 다른 계절을 찾아 길을 떠났다고 한다. 사실 길을 떠난 것일 수도 있고 길에 나선 것일 수도 있다. 또한 그때의 이탈은 타의에 의한 탈락일 수도 있고, 자의를 따른 탈출일 수도 있다.
어쨌든 아주 우연히도, 그것을 우연이라 얘기하기엔 어딘가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나의 여정 또한 그의 이탈이 남긴 족적을 몇 군데 겹쳐 지나가게 되었다.
혹자들이 전하기를, 그가 몸에 걸친 것이라곤 마른 풀잎처럼 버석거리는 허름한 천 조각뿐이었지만 그의 행색은 결코 남루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지나는 길에 그를 만났었다는 몇몇 이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그의 이름을 아십니까.”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이름을 들은 적은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항상 ‘그’라는 대명사로만 불릴 뿐이었다. 그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끝내 알 수 없었다. 추측 건데 그는 신비주의자일 수도 있고, 어쩌면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이름을 가져본 적이 없는 정말로 무명씨일 수도 있어 보였다.
어떤 이는 말하였다. 그는 낡은 기타를 튕기며 슬픈 곡조의 노래를 뽑아내곤 했었다고. 그것도 심금을 울리며 구슬프게 아주 잘 불렀었다고. 또 다른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는 비 내리는 날에도 결코 비를 피하지 않았었다고. 그것도 아주 엄청난 폭우 속에서 그랬었다고.
그리고 누군가는 보았다고 했다. 빗물이었는지 땀이었는지 모르는 어떤 물기가 그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이었는지 체온이 실린 안개가 그에게서 모락모락 피어올랐었다고. 분명 그의 얼굴에서 아지랑이와도 같은 물기의 증발을 목격했었다고.
그와 잠시나마 말을 섞은 적이 있다는, 아마 그게 분명 그였을 거라고 기억을 더듬으며 말하는 누군가는, 노랫가락 같은 그의 말을 이렇게 전하였다.
길을 떠난 집시
집시는 자신의 운명을 알아야 하지
집시는 자신의 운명에 순응할 줄 알아야 하지
집시는 노래를 부르 줄 알아야 하지
집시는 제대로 울 줄 알아야 하지
집시는 춤을 출 줄 알아야 하지
집시는 춤으로 슬퍼할 줄 알아야 하지
집시는 길을 걸어야 하지
길을 떠나야만 하는 것이 집시의 숙명이지
집시는 혼자 걷는 외로움쯤이야
잠시 곁을 지킨 길벗으로 삼을 줄 알아야 하지
집시는 바람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알아야 하지
집시는 다른 계절의 향기를
스쳐가는 바람결에서도 맡을 수 있어야 하지
언제 적이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분명 그가 이 길 어딘가를 걸어 지나갔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무언가에 대한 느낌이란 것에는 원래 뚜렷한 이유란 것을 찾기 어려운 법이다.
주관을 객관으로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 ‘그것을 느끼는 것’이다. 혹시 느낄 수 없다면 ‘느꼈다고 믿으면’ 될 뿐이다. 어떤 것을 느낄 수 있다면, 또는 느꼈다고 믿으면, 그것에게는 객관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된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것만으로도 이 길을 걸어야만 하는, ‘그’라 불리는 그 집시가 걸어간 길을 따라 걸어야만 하는 이유는 가슴에 차고도 넘친다.
저 앞 어딘가에서, 바람의 골을 헤집으며 그가 걸어가고 있다. 느낄 수 있다. 이 길은 그도 나도 자의로 선택한 진정으로 자유로운 길이라는 것을. 길가에 깔려있는 키 작은 풀들 저마다가 송이송이 꽃을 피운 아름다운 길이라는 것을.
그가 찾으려는 계절과 내가 찾아가는 계절은 분명, 지금은 벗어나 있을 수도 있지만, 이 길의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