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곗바늘의 길이에 대한 고찰

시곗바늘의 길이에 대한 고찰


아기돼지 삼 형제라는 이야기가 있다. 시계 안의 세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전통적인 아기돼지 삼 형제의 이야기와는 다소 다르지만, 또 다른 아기돼지 삼 형제의 이야기가 그 안에 담겨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시침인 첫째 놈은 천하태평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느긋한 성격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상은 아주 고집이 센 놈이다. 다른 형제들이 아무리 재촉을 해도 가듯 안 가듯, 답답하지만 겨우 멈추지 않을 만큼만을 움직일 뿐이다.


분침인 둘째 놈은 늘 제 성에 찰 정도로만 움직인다. 어찌 보면 셋째의 독촉에 적당하게나마 응답하려는 것 같기도 하고, 첫째의 느릿함이 못마땅하기도 해서 그저 미안하지 않을 만큼만 적당하게 움직여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초침인 셋째 놈은 성질머리가 아주 급해서 자기 자신도 분주할 뿐 아니라 다른 형제들을 쉬지 않고 재촉한다.

셋째를 ‘부지런하다’고 말할 수 있겠고 첫째는 ‘게으르다’고 말하기에도 좋아 보인다. 첫째와 셋째만을 놓고 본다면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부지런한 개미 같은 셋째는 다가올 겨울을 충분히 준비했을 것이고, 게으른 배짱이 같은 첫째는 빈둥대기만 하다가 결국 겨울을 넘기지 못하게 될 것 같다.


그렇다면 둘째는 어떨까. 보는 방향에 따라서는 현명하다고 할 수 있겠고, 그저 하루하루를 적당하게 살아가는 일반적인 인간의 모습을 닮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행여 누군가 둘째처럼 살아간다면, 줏대 없는 '낀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어 보인다.


다시 아기돼지 삼 형제의 얘기로 돌아가 보자. 마른 짚을 대충 엮어 지은 첫째의 집과, 첫째보단 조금 더 튼튼하고 꼼꼼하게 짓긴 하였지만 나무를 얼키설키 엮어 만든 둘째의 집은 늑대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였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돌을 쌓아 지은 셋째의 집은 그들 돼지 삼 형제를 늑대의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으로부터 지켜주게 된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게 되면 아기돼지 삼 형제가 처하게 되는 상황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성질머리 급한 셋째가 마른 짚을 대충 엮어 빨리 집을 지었고, 성격 느긋한 첫째가 시간을 충분히 갖고 돌을 쌓아 튼튼한 집을 지었을 거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어떤 경우이건 둘째의 집에는 변화가 없을 것 같다.


이렇듯 아기돼지 삼 형제의 이야기에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를 빗댄 해석이나, 다른 시야로 바라본 아기돼지 삼 형제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보일 수도 있겠다. 무언가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고 쳐다보는 관점마다 새로워질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서로 다른 세 개의 시곗바늘에서 ‘시간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그 시간을 사용할 것인가’라는 시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찾아볼 수 있게 된다.


다시 전통적인 관점의 아기 돼지 삼 형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누구에게나 동일한 양과 같은 질로 주어진 시간을, 셋째처럼 부지런하게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첫째처럼 그저 느긋하게 사용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둘째처럼 적당히 사용할 것인가.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면 어느 누구도 그중에 어느 것 하나만이 진리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본다. 셋째 바늘의 바쁜 움직임이 첫째와 둘째를 움직여서 새로운 시간이 찾아오게 하고, 첫째 바늘의 느린 움직임을 따라 결국에는 새로운 날이 찾아온다.

"난 오늘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