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세상의 끝을 만난다

21.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세상의 끝을 만난다_ver.4


잔뜩 흐린 날이란 건 태양과 달의 경계에 선 어스름한 어느 하루와도 같은 날이다. 시곗바늘을 보면 아직 낮인 것이 분명하지만 아무리 하늘을 더듬어도 태양의 궤적을 찾아내기는 어렵고 밤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사물의 윤곽이 너무 뚜렷하다. 이런 날이면 하루라는 시간을 낮과 밤으로 구분하려는 이분법적인 지식은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빗방울이 조금씩 굵기를 더해가고 있는 늦어진 저녁 무렵에 파리 시청과 노트르담 대성당이 넉넉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서 있는 시테섬을 찾는다. 시테섬은 파리의 문화와 예술이 시작된 곳이기도 해서 ‘파리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파리라는 낭만의 도시에서, 센강 위에 떠 있는 섬이라니, 그것도 그저 편한 산책 삼아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만 센강을 차지하고 있는 섬이라니, 그 이질적인 느낌만으로도 수많은 파리지앵과 파리지앤느에게 미친 영향을 짐작해 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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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테 섬의 동쪽 지역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내부의 길이만으로도 100미터가 넘는 거대한 성전이자 파리의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위대한 예술품, 오만한 인간의 배설물, 빅토리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영어 번역에서는 'The Hunchback of Notre Dame', 프랑스어 원 제목은 'Notre-dame de Paris'(파리의 노트르담))의 배경, 신의 권위를 빙자한 자기만족의 결과물과 같이 다양한 별칭을 갖고는 있지만 그 어떤 표현도 이 위대한 건축물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지 못하니 인간은, 자신의 손끝으로 만들어낸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인해 언어의 한계에 부딪히고야 만다. 자기가 만들고서도 제대로 표현할 길 없다고 징징거리다니, 인간이란 참 아이러니한 존재이다.


*** ***


시테 섬에서 짧은 다리 하나를 건너 조금만 걸어가다가 보면 파리 제1대학인 소르본 대학(Université de la Sorbonne)의 인근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된다. 노트르담 대성당과 파리 시청, 소르본 대학이 어우러져 있는 이 구역은 토론하고 사색하길 좋아하는 노학자의 곰삭은 노련함이 푸릇한 젊음의 열정과 뒤엉켜 자유로이 유영하고 있는 ‘파리의 지성’이라 할 수 있다.


비도 피할 겸 다리도 쉬어갈 겸해서 노트르담 대성당의 우측면 아래에 바로 붙어 있는 카페에 앉는다. 둥근 테이블 위에 갓 내린 에스프레소 한 잔이 신선한 버터향을 가득 머금은 크루아상 한 덩이와 함께 테이블에 내려앉는다.


열여섯의 생기발랄한 에스메랄다(Esmeralda)가 파리의 저녁 빗속을 통통 뛰어다닐 것만 같다. 애욕에 눈먼 성직자 클로드 프로로(Claude Frollo)의 빗나간 집착과, 비록 모습은 추하지만 영혼은 순수한 꼽추 꽈지모도(Quasimodo, '반신불구'라는 뜻)의 애달픈 눈물이 시테 섬을 양갈래로 감싸 흐르는 센강의 물길에 씻겨 정처 없이 흘러간다.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려온다. 종탑을 올려다본다. 아름다운 그녀를 향한 꼽추의 연가가 음의 파동에 파르르 떨리고 있다.


비가 잦아든다. 달그락거리던 잔을 잔 받침 위에 내려놓을 시간이다. 둥근 잔의 바닥에 남아 있는 연갈색의 액체가 누군가의 눈물 같다. 차마 마저 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 ***


성전의 문 안으로 들어선다. 인간과 신이 소통하는 장소이자 죄 사함이 허락된 신성한 장소이기 때문일까, 실내에 들어서는 순간 속세의 시간은 의미를 잃어버린다. 누군가의 나지막한 기도소리가 밀폐된 공간 안을 공명하고 있다. 촛불 아래에 두 손을 모은 인간의 경배는 엄숙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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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을 장식한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는 비 오는 날의 희미한 빛에서조차 화려한 꽃을 피운다. 화려함에 눈이 먼 것인지 마음의 무릎이 저절로 꿇려진다. 고개 숙여 나를 내려놓지만 억겁의 번뇌가 짙은 먹구름처럼 떼를 지어 몰려온다. 신의 권능과 인간의 교만함은 긴 터널 같은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순례자의 길을 걷는 듯 무겁기만 하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세상의 끝을 만난다


인간의 거주를 감싸 안은

이 작은 섬에서는

살아가는 것과

성스러운 경배가 하나이다


허공에 그어 놓은

돌과 하늘의 경계는

겨우 들어 올린 눈길만큼이나

두껍고도 무겁다


뭉뚝한 성전의 벽면에

에펠탑의 뾰족함이 스며들고

신을 향한 무한의 집착이

허공에 그어 놓은 선에서 완성된다


첨탑을 기어이 기어오른

인간의 집착은

세상의 끝에서 추락한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촛불 아래에서

번뇌는 더욱 날카로워진다


*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그것을 잃어버린 후에야 '아'하는 탄식과 함께 그 가치를 깨닫게 되니 인간의 깨달음은 놓쳐 버린 버스를 향한 안타까운 눈빛 같다. 언젠가 저 자리에 저 때의 모양을 가진 노트르담 대성당이 다시 들어서겠지만, 그것은 어쩌면 같은 소리를 지녔지만 다른 뜻을 가진 단어와도 같아서 행여 또 다른 오만한 배설물에 지나지나 않을지, 저 위대한 건축물은 이제 영원히 기억에서만 존재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괜한 걱정에 자꾸 커피잔만 달그락거리게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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