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센강의 무채색 밤의 꽃, 노트르담 대성당의 밤 스케치(ver.4)
구름에 가리어진 달이 밤하늘에 걸려있다. 냉랭한, 그래서 너무 아름다운 파리의 거리가 어둠에 잠겨 있다. 서둘러 밤 단장을 마친 거리의 소음은 둥지에 모여든 참새떼의 재잘거림처럼 소란스럽간 하지만 너무 사랑스럽다.
"구름 낀 밤하늘을 비집어 나온 달빛이 여리게나마 거리를 비추고 있으니, 행여 이방인이라 해도 길 잃을 일은 없겠다."
밤바람의 부드러운 터치가 센강에 내려앉은 불빛을 일렁이게 한다. 겨우 디디고 있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고흐의 밤하늘에 걸려 있던 별빛 몇 점이 수면에 똬리를 튼다.
"틀림없다. 검은 밤의 저 물결이 파리와, 파리의 낭만을 잉태하고 기른 것이."
밤은 우리를 모든 것으로부터 가만히 떼어 놓는다. 인적 뜸해진 몇 개의 다리를 지나다가 걸음을 되돌린다. 얼마 걷지도 않은 것 같은데 다시 시테섬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파리의 밤은 거리나 시간 같은, 숫자로 표현되는 단위 따위는 잊어버리게 하나보다."
누군가를 기다린 듯, 몇 가닥 불빛에 기대어 자신의 은밀한 곳까지 세세히 드러낸 무채색의 꽃송이 앞에서 멈춰진다. 밤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달빛과 별빛을 따라 활짝 피어난 야화夜花 같다.
가만히 보면 저 모습은, 고집이 센 데다가 퉁명스럽기까지 하고, 세월의 주름이 가득한 얼굴에 흰 머리카락마저 희끗희끗한, 그래서 더 멋있어진 거라고 여기려 하는, 어느 중년의 이방인 같아 그리 낯설지는 않다. 카메라 렌즈를 조심스레 들이대자 시테섬을 에워싼 물줄기에서 밤안개가 훅 올라온다.
"진갈색 짙은 음영에 걸러진 밤의 선과 면이 조명 환한 낮의 그것들보다 더 곱고 선명한 것은, 어둠이라는 농밀한 장막을 스크린 삼은 덕일 게다."
센강은 센강대로, 파리는 파리대로, 시테섬은 시테섬대로, 노트르담은 노트르담대로, 달빛은 달빛대로 그리고 밤하늘은 밤하늘대로, 제 살아가던 길을 따라 가만가만 스스럽게 흘러가는 밤이다. 지나는 배가 일으킨 파도에 센강의 수면을 떠다니던 빛의 입자들이 어둠을 향해 솟아오른다.
"파리에서의 밤은, 행여 잠 없이 지새우게 된다 해도, 그래서 이대로 새벽이 온다고 해도, 졸릴 일 따위는 없을 거야."
* 노트르담이 없는 밤의 센강은 얼마나 허전한가. 그래도 잿빛으로 변해버린 그 무채색 꽃이, 원래의 모습 그대로 추억 속에 잘 담겨 남아 있으니, 정말로 다행인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