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에투알 개선문, 파리의 별에 오르다

23. 에투알 개선문, 파리의 별에 오르다 (ver.4)



바람 많은 날의 밤이면 파리의 거리는 더욱 스산하다. 창밖을 내려다본다. 에투알 개선문이 밤 불빛을 한껏 밝히고 있다. 고개를 돌려 벽에 걸려 있는 네모난 시계를 확인하고서는 '저기를 올라도 괜찮을 시간이다'는 생각에 문밖으로 나선다.


에투알 개선문은 파리의 북서부, 샤를 드골 광장의 중앙에 서있는 높이 50미터에 폭 45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노천 예술작품이다.

샤를 드골 광장의 개선문이 ‘에투알 개선문’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것에서 프랑스 사람들의 아름다운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광장에서 방사형으로 뻗어나간 12개의 도로 형태가 마치 별빛이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별의 광장'(에투알(에뚜와, Etoilé, 별) 광장)이란 이름을 붙였고, 그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개선문에게는 '별의 개선문'(에투알 개선문)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별과 개선문이라니, 밤하늘의 별과 나폴레옹의 개선문을 연관시키기는 쉽지 않은 노릇이다. 알퐁소 도데 (Alphonse Daudet, 1840년 - 1897년)의 작품 <<별>>(Les étoiles, 부제: 프로방스의 어느 양치기 이야기)에 나오는 프랑스의 별은 양치기 뤼브롱(Luberon)과 어여쁜 아씨 스테파네트(Stéphanette)의 수채화 같은 이야기를 머금은 촉촉한 서정적인 별이다. 하지만 개선문은 전쟁영웅의 귀환을 환영하기 위해 세운 것이기에, 별에게서 개선문을 떠올리려는 것이나 개선문에게서 별을 연상하려는 것은 <유리알 유희>를 하라는 주문과도 같이 난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러 날의 낮과 밤을 에투알 광장에서 서성이다가 보면 알게 된다. 프로방스 지방의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과 파리의 하얀 대리석을 예술적으로 엮어 놓은 위대한 건축물이 에투알 개선문이라는 것을. 이젠 별의 개선문이라는 이름만으로도 프랑스인의 예술적 상상력과 재치가 느껴지는 것만 같다.


비록 광장의 이름이 1970년 초대 프랑스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샤를 드골 광장으로 개명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런 사정 따위는 상관없이 여전히 에투알 광장이란 '파리스러운'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실제 파리지앵이나 파리지앤느에게 길을 물을 때면 코에 바람을 조금 넣고서는 '에투와'라고만 하면 그냥 알아듣는다.


바닥까지 딱딱하기 그지없는 이 돌의 광장을 그냥 '별'이라고만 부르다니, 신비하기까지 한 일이다. '에투와'는 오직 파리라는 마법사가 부릴 수 있는 주술의 비문祕文인 것처럼 들린다. 주문에 걸린 파리의 바람은 별의 광장을 둥글게 맴돌다가 파리의 하늘 높이 솟아 별빛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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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투알 개선문에서 콩코드 광장 쪽으로 곧게 난 거리가 샹젤리제이다. 이곳을 돌아다닐 때면 '오 샹젤리제'를 허밍 하는 것만으로도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샹젤리제를 지나 조금만 더 걸어가면 파리의 가로수 길을 만날 수 있기에, 에투알 개선문에서 콩코르드 광장으로 이어진 길은 파리의 여유로움을 누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길이다.


콩코르드 광장에서 가로수 길을 지나 샹젤리제의 입구에 들어서면 에투알 개선문이 또 다른 표정으로 여행자를 맞이 한다. 가까워질수록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더해가는 에투알 개선문은, 하얀 미소를 머금은 파리지앤느 같다. 그래서인지, 샹젤리제를 걸어 올라가며 만나는 에투알 개선문은 파리 여행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경 중에 하나로 꼽히고 있다.


에투알 개선문은 나폴레옹의 지시에 의해 만들어지기 시작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살아서 이 개선문을 지나가지 못하였다고 한다. 나폴레옹과 샤를 드골이 별의 광장에 서서 저마다의 자랑거리를 수다스럽게 떠벌리고 있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입꼬리가 올라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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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배꼽에 내려앉은 돌의 별이, 밤의 장막에 덮인 파리의 하늘에 별빛을 흩뿌리고 있다. 이방 여행자의 방문을 막아서지 않는 돌의 별은 좁고 가파른 돌계단을 겸손하게 걸어서야 정상에 다다를 수 있게 한다. 누군가 말한 것 같다. 가파른 나선형의 그 길을 맴돌듯 오르다 보면, 어딘가에서 숨어 지내던 추억의 조각들이 슬그머니 끼어든다고.


여기가 저기인가 보다. 가빠진 숨을 몇 번 몰아쉬며 호흡을 정리한다. 개선문 꼭대기에 올라 바라보는 밤의 파리는 사랑스럽지만 어딘지 쓸쓸해 보이기도 한다. 상점이며 가로등이 떼를 지어 불을 밝힌 샹젤리제를 내려다보다가 눈을 돌려 밤의 황금 촛대 에펠탑을 바라본다. 밤이 되면 파리의 유혹은, 말로는 담아낼 수 없을 만큼 진해진다.


낮과 밤이 이리도 다르다니, 밤의 옷을 갈아입은 파리의 유혹에 정신마저 몽롱해진다. 말의 문이 닫히고 가슴의 문이 열린다. 이방 여행자를 유혹하는 것이 파리의 본능이란 것을 밤의 에투알 개선문에서 알게 된다.


밤의 시간은 유난히 짧다. 다시 돌계단 안으로 들어간다. 올라왔던 계단이 만들었던 그 길과 내려가는 계단이 만들고 있는 이 길은, 분명 같은 곳을 향하는 길이지만 겹침 없이 대칭만을 이룬 채 서로 다른 길을 만들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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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의 별에서 내려서자 피로가 몰려든다. 가까이에 숙소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침대에 몸을 눕히자 이내 눈이 무거워진다. 에투와 개선문의 밤 불빛을 바라보며 파리라는 이름의 진한 잠에 빠져든다. 파리라고 쓰고 개선문이라고 읽는 잠결에서 밤이슬 같은 별의 꿈을 꾼다.

양치기 뤼브롱과 아씨 스테파네트의 이야기가, 객실 천장을 별의 광장 삼아 총총히 불을 밝힌다.


한 번만이라도 바깥에서 밤을 새워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잠든 깊은 밤이면 신비로운 또 다른 세계가

고독과 고요 속에 눈을 뜬다는 것을 잘 알게 되지.

밤이면 샘물은 훨씬 더 맑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연못에서는 자그마한 불빛들이 사랑스럽게 반짝이지.


온갖 요정들이 여기저기에서 노닐고

밤공기에서는 나뭇가지나 풀잎이 자라나는 소리 같이,

들릴 듯 말듯한 바스락 거림 같은 여러 소리들이 들려오지.

낮은 살아있는 것들의 세상이지만

밤은 낮에 침묵했던 것들의 세상이거든.


싸늘한 이성과 나른한 감성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살아온 이방 사내에게 하나의 별이 내려온다.

"다행이다. 꿈은 깨어난 후에는 지워지는 것이기에, 삶에 무게를 더하지는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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