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발걸음 남기고 싶고 가슴에 담아 두고 싶은, 그런 곳이 자꾸 생겨나게 된다. 미술관이 바로 그런 곳 중에 하나이다.
길을 가다가 문득 발견하게 되는 작은 갤러리에서부터,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조금은 크게 마음을 먹어야만 찾게 되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까지, 몇 점 작품을 걸어 놓은 크지 않은 미술관에서부터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많은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커다란 뮤지엄까지, 좁지만 마음이 여유로운 공간에서부터 크지만 가슴을 빼곡하게 만드는 공간까지, 미술관은 예술가의 손질만큼이나 종잡을 수 없이 자유로운 곳이다.
그중에 어떤 미술관에서는 야생화 피어난 향기로운 들판을 걸어 다니는 듯 눈과 걸음이 평화롭고, 가슴에 이는 상상에도 아무런 울타리를 두르지 않게 되는 아주 편안한 시간을 누리게 된다.
파리의 피카소 뮤지엄은 아주 커다란 상상이 한껏 자유롭게 날개를 펼치게 되는 그런 곳이다. 이곳에서 만나는 피카소는 색다르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이곳을 찾게 된다면 피카소의 작품을 처음으로 대면했던 지나간 시간 속의 어느 날처럼 이물스러움이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아비뇽의 여자들이나 게르니카와 같이 회화에 머물던 피카소의 작품세계에 대한 지식은, 전시실을 채우고 있는 피카소의 다양한 그림과 조각 작품, 삶의 흔적에서 '그의 정체성'에 대한 혼동에 빠질 수 있다.
“그는 화가였던가 아니면 조각가였던가”
어느 것이라 한들 좋다. 걸음이 조각 작품 앞에 멈춰질 때면 그는 조각가이고, 그림 앞에 서게 될 때면 그는 화가이다.
파리의 피카소 뮤지엄에선 그동안 그와 그의 작품에 대해 가졌던 이해라는 게, 한낱 편협하고 값싼 지식이 낳은 보잘것없는 편견일 수 있다는 의혹에 빠지게 된다.
“그러니 얼굴빛이 붉어질 수밖에.”
어찌 한 사람에게, 이리도 대단한 예술적 재능을 부여한 것인지, 세상만큼이나 불공평한 게 신神이라고, 이곳에서는 자신의 무능에 대한 책임을 신에게 전가하게 된다.
"펜 하나 제대로 흘리지 못하는 무딘 손과 느끼는 것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는 굳은 가슴과, 바로 눈앞의 것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희미한 눈이 내가 가진 전부라니."
자신의 실체에 대한 깨달음은 누군가를 향한 원망으로 이어지다가 결국에는 변명거리를 찾아 안주하게 되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라고, 원망과 변명은 인간의 본능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세뇌한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전시된 그의 작품 앞을 떠나지 못하던 발걸음이 대서양을 건너 이곳, 파리의 피카소 뮤지엄으로 이끌었나 보다.
책이나 여러 가지 매체로 익혀온 피카소에 대한 지식은 종이 위에 살짝 묻힌 옅은 잉크의 흔적일 뿐이었다. 이제야 표면에 뿌려 놓은 얕은 지식이 종이 속으로 깊숙하게 스며든다.
오늘은 밤늦게까지 파리의 골목길을 검질기게 돌아다니게 될 것 같은 날이다. 몽파르나스의 낮은 언덕길을 지나는 앤틱 자동차를 세워 타게 된다면 'Midnight in Paris'의 그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미술관은 아름다운 유혹이다."
파리의 피카소 미술관에서 아름다운 유혹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