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는 아무리 낮은 구릉이라 해도 조금은 별스런 느낌을 갖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일 수 있다. 몽마르뜨를 오르는 걸음에 괜한 먹먹함이 끼어드는 것은.
몽마르뜨의 정상을 지나 마을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테르테르 광장(Place du Tertre)에 도착한다. 광장이라고는 하지만 규모면에서는 동네 공터에 가깝다. 어쨌건 이 네모난 공터에 ‘예술가들의 광장’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 놓은 것은 벨 에포크(좋은 시대, belle époque)의 예술가들과 작가들이 이곳 주변을 즐겨 찾았기 때문이다.
세월이 가면 사람은 사라지고 그들의 추억만이 남겨지는 법이다. 이젠 그 어디에서도 그들을 찾아볼 수 없다. 테르테르에서 여행자는 다른 여행자들의 북적임을 견디며 머물고 싶은 만큼만 서성거리다가 마음 내킬 때를 쫓아 그냥 떠나가면 그뿐이다.
사람의 흐름을 비켜 걸음을 멈춰 선다. 공터를 둘러싼 집들과 카페들이 바깥세상과의 경계를 만들고 있다.
가장 테르테르스럽게 느껴지는 카페의 노천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가로와 세로가 그저 일이십 미터 남짓할 것 같은 네모난 공간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좋은 한 때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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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이 조금 식기를 기다렸다가 입술에 가만히 붙인다. 입 안으로 스며든 검은 액체의 향이 혀 끝을 마비시킬 것 같이 진하다. 오직 가슴을 열어야만 이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니, 이 느낌을 어떤 말로 담아낼 수 있을까.
“이성조차 마비시킬 것 같은 검은 액체의 주술이라니, 테르테르의 커피에 뿌려진 토핑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커피에 관해서라면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 페리고르의 말을 끄집어내어도 좋겠다.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순수하고 사랑처럼 달콤하다.”
(Noir comme le diable, chaud comme l'enfer, pur comme un ange, doux comme l'amour.)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 페리고르 (Charles-Maurice de Talleyrand-Périgord, 1754년 2월 2일 출생 1838년 5월 17일 사망)은 프랑스 혁명기부터 나폴레옹 전쟁을 거쳐 왕정복고 시기까지 활약한 프랑스의 정치인이자 외교관이다. 외교관으로서의 그는 18세기 말과 19세기 초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외교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관습적으로 사용하던 단위계 대신 m와 kg을 사용하는 미터법의 규격을 제정하는 등 과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프랑스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여 ‘영국은 종교는 300개인데 요리는 3개뿐’, ‘미국은 땅덩이는 그렇게 넓으면서 요리는 그것밖에 안 되냐’와 같은 말을 남겼다.
커피와 카페를 애써 구분해야 할 이유는 없다. 커피 향이 피어오르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인들 카페가 아닐까. 카페라는 용어를 잘 꾸며진 좁은 공간에 가둘 필요는 없겠다. 갈색의 호수 속살에서 문화와 예술, 사람의 삶이 일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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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4년 터키의 콘스탄티노플에 최초의 카페가 생겨나면서 커피는 문화의 매개체이자 문화 자체로 자리를 잡아갔다. 커피를 하나의 문화로 만들어 간 것은 이슬람 문화권인 것은 분명하지만 ‘최초의 카페’에 대한 해석에는 다른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1683년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에 최초의 카페가 등장하면서 빠르게 유럽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이렇게 생겨난 카페들은 ‘교류와 소통’이라는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예술과 정치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1686년에 문을 연 파리의 생제르망 거리의 [르 프로코프](procope café, le procope)는 프랑스 최초의 카페이자 지금까지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카페이다. 당통과 미라보 등이 이 카페에서 프랑스 대혁명의 씨앗을 키웠다고 하니 카페는 근대식 자유 민주주의의 산실인 것이다. 자유를 꿈꾼 그들이 마신 커피는 자유라는 꿈의 실천을 위한 진보적 소통의 수단이자 각성제였을 것이다.
커피와 카페를 좋아하지 않았던 예술가가 얼마나 될까. 프랑스 남부의 도시 아를르에 머물던 빈센트 반 고흐는 [카페 드 라 가르](Cafe de la Gare)에서 <아를르의 밤의 카페>(The Night Café in Arles)를 그렸다. 또한 <아를르의 여인, 마담 지누>(L'Arlesienne Madame Ginoux)는 그 카페의 주인인 마담 지누를 그린 것이다.
일단 떠오른 생각은 숲 속을 지나는 바람과도 같아서, 구불구불 끊이지 않고 흘러간다. 머리 위에 하늘이 열려 있는 지붕 없는 카페에 앉아 파리의 바람과 추억을 몇 장 그림에 옮겨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