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이카로스의 날개 이야기>, 신화와 우화 사이에서

0. <이카로스의 날개 이야기>, 신화와 우화 사이에서

이카로스의 추락 그림.jpg Jacob Peter Gowy's The Flight of Icarus (1635–1637)



1. 신화와 우화 사이에서


<다이달로스의 이야기>라 할 수 있는 <이카로스의 이야기>는 흔히 고대 그리스의 신화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아비인 다이달로스(Daedalus)나 아들인 이카로스(Icarus) 또한 그저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의 땅을 살아간 존재였기에 그들을 이야기를 신화라는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다이달로스를 두고 대장간의 신인 헤파이토스의 자손이라고 불렀다는 것에서 그가 가진 재주가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만큼 뛰어났을 거라는 점은 추측 가능하다. 또한 다이달로스의 그런 비범한 재주로 인해 이카로스와 다이달로스의 이야기를 신화인 것처럼 여기게 된 것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제 아무리 뛰어난 재주를 가진 다이달로스였지만 그의 행적에서 어떤 신적인 능력이나 그것에 비견될만한 신비로운 행위는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그 아들인 이카로스의 경우에는 아비가 만들어 달아 준 날개로 하늘을 날다가 떨어져 죽었다는 사실 외에는 다른 특별한 행적을 찾을 수 없다.

이런 점들로 인해 <이카로스의 날개 이야기>는 신화가 아니라 우화 내지는 전설 정도로 여기는 것이 옳을 수 있다.


<이카로스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인 다이달로스는 손재주에 머리까지 좋은 기계 공학자이면서 토목 및 건축 분야의 전문 기술자이기도 하다. 그가 만든 여러 가지 장치에 대한 기록을 근거로 그를 발명가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탁월한 능력을 가진 공학자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다이달로스의 행적과 능력을 기술하고 있는 자료들을 살펴보면 그가 가진 기술이 대단히 놀라운 것이긴 하지만 그 안에서 신화적이라 할 만큼의 인상적인 요소는 발견되지 않는다. 굳이 그의 능력에 대해 얘기하자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이 사물을 세밀하게 살피고 분석한 후에 그것을 자신이 가진 기술을 통해 하나하나 꼼꼼하게 해결해 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분명 르네상스 시대의 장인이었던 레오나르도다빈치 또한 다이달로스의 이러한 기법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다이달로스의 명함을 받아 들게 된다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만큼이나 다채로운 직업이 그 안에 길게 나열되어 있을 것이다.




2. 하늘을 난다는 것에 대한 고찰


이제 하늘을 난다는 측면에서 <이카로스의 날개 이야기>를 살펴보자. 하늘을 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꿈이다.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에서는 <아폴론의 전차>나 <헤르메스의 날개 신발> 같이 마법 같은 신화적 도구를 이용해서, 오직 신들만이 하늘을 날았던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신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을 직접 본 이나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이들 중에 뛰어난 능력을 가진 몇몇은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을 꾸었을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서의 전제는, 하늘을 날겠다는 비범한 꿈을 꾼 그 또는 그녀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아주 ‘뛰어난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평범한 인간들에게 그 이야기는 그저 신비로운 신화로만 들릴 뿐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 인간은 '하늘을 나는 것에 대한 욕망'이 본능으로 내재되어 있을 수도 있다. 다만 물리학적인 이유와 인간의 육체적 능력으로 인해 그것은 발현되어서는 안 되는 '감춰진 비밀의 본능(hidden secret instinct)'일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극히 소수의 이들은 그 본능을 막아선 울타리를 스스로가 무너 버릴 수 있는, 그래서 '신적'이라 불릴 만큼의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이들인 셈이다.


전차라든가 신발과 같은 도구를 이용했다는 것은 하늘을 날고 싶다는 인간의 꿈이 찾아낸 ‘하늘을 나는 수단과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이기에 의미를 높이 살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하늘을 난다는 것은, 적어도 인간 다이달로스의 비행이 있기 전까지는, 뛰어난 인간조차 꿈으로만 꿀 수 있었던 신화 속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난다는 것에 대한 다이달로스의 방법은, 비록 과학과 비과학이 혼재되어 있긴 하지만, 비교적 구체적이다. 미궁에 갇힌 채 새가 나는 모습을 자세하게 관찰하였고, 떨어진 새의 깃털을 모아 밀랍으로 일일이 붙여, 인간의 몸을 하늘로 띄워 올릴 수 있을 만큼의 날개를 만들었다. 물론 이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그 방법과 근거가 크게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날개라는 무엇(what)과 미궁에서 날아올라야만 하는 왜(why), 그리고 새의 깃털과 밀랍이라는 어떻게(방법, how)가 박자를 맞추고 있는 서술의 구조와, 이천 연도 훨씬 넘은 아주 오래 전의 인간이 가졌을 지식을 고려해 본다면 다이달로스의 관찰에 기반을 둔 날개의 제작 과정과 방법은 충분히 실용적이면서도 과학적인 접근을 바탕으로 하였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3. 난다는 꿈을 이룬 최초의 지상인 다이달로스


이제 다이달로스는 하늘을 날게 되었다. 그의 비행이 아들인 이카로스를 잃게 만든 절반 또는 그것에 못 미치는 성공이었지만, 또한 그의 비행에 대해서는 오직 그날의 단 한 번의 비행만이 기록에 남겨져 있을 뿐이지만, 그는 하늘을 날겠다는 꿈을 이루어낸 최초의 인간이 된 것이다. 땅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지상인 다이달로스가 하늘을 날았다는 사실은, 그리고 그날의 비행에 대한 기록은, 그의 뒤를 따르려는 후세의 또 다른 뛰어난 이들에게 분명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여기에서 관심을 두어야 할 점은 '인간이 하늘을 날았다는 것'이다. 만약 그가 신이었다면 ‘신이 하늘을 날았다는 것’이 꼭 기록으로 남겨야 할 만큼의 대단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신은 하늘을 날아다닐 수도 있고 바다 위를 걸어 다닐 수도, 땅속을 돌아다닐 수도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신’인 것이다.


아무튼 ‘날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은 다이달로스라는 인간의 성공으로 인해 ‘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기대와, 다양한 해석을 통해 과학과 철학과 문학과 예술의 토대를 제공하게 되었다.


다이달로스의 이 이야기에는 또한 인간의 교만을 경계하는 경고 장치 또한 갖추어져 있다. 그런 점에서는 다이달로스의 이야기와 이솝이 남긴 우화들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날개를 갖게 된 후 하늘을 날아 자유를 얻은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에게는, 잘 알려져 있는 것과 같이 비극적인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비의 경고를 무시한 또는 잊은 젊은 이카로스는 점점 더 높이 날아올랐고 결국에는 태양에 가까이 다가갔다. 태양의 뜨거운 열기는 새의 깃털을 붙였던 밀랍을 녹여버렸고 이로 인해 깃털은 날개에서 떨어져 나가게 되었다. 결국에는 이카로스가 하늘을 날 수 있게 해 주었던 날개의 깃털이 그를 바다에 추락시키는 도구가 된 것이다.


‘하늘을 나는 이야기’에는 비극적 결말을 통해 일종의 경고가 담겨 있는 경우들이 있다. 그리스 신화 중에 파에톤(Phaethon)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파에톤은 아비이자 태양신인 헬리오스(Helios)의 마차를 너무 높게, 또는 너무 낮게 몰아, 땅의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고 또한 땅이 말라버리게 하자 이에 노한 제우스가 던진 벼락에 맞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카로스와 파에톤 이야기는 상당히 닮아 있다. 두 이야기에서 기성세대에 해당하는 아비는 아들에게 그의 능력과 배경을 물려주는 존재이고, 젊은 아들은 아비가 물려준 것들을 누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비의 현명한 처신과 경고를 무시하고 급기야 사고를 치고야 마는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존재이다. 그렇다면 잘 나가는 아비를 둔 아들은 모두 교만하거나 어리석기만 한 것일까.


어쩌면 일단 하늘을 날아 보면, 어느 한순간, 이성을 잃게 되는 일이 생겨나는 것 같기도 하고 땅에서는 알 수 없는 어떤 무모한 도전 의식이 불쑥 일어나는 것 같아도 보인다. 이것을 두고 젊다는 것이 자신의 행위에 대한 관리 능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라고도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에 의한 위험의 감내’라는 ‘젊음의 능동성’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4. <날개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늘을 난다는 것은 분명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커다란 도전인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또한 스스로에 대한 도전일 수도, 신에 대한 도전일 수도 있다. 추락은 도전에 대한 대가이다. ‘Adventure is not Free'이란 말처럼 '도전은 공짜가 아닌 법'이다. 파에톤의 경우처럼 신의 노여움으로 인한 것이거나, 이카로스 이야기처럼 추락은, 이성적인 대처의 부족함이 부른 값비싼 대가일 수 있다.


대가가 따르지 않는 도전은 없다. 다이달로스가 만든 날개에서 열에 약한 밀랍을 사용한 것을 마치 과학적 허술함인 양 얘기하는 이가 있다면 오히려 부족한 독자적 상상력이 끌어낸 자기변명일 뿐이라고 해야 한다.


이 이야기를 신의 권능에 도전한 인간의 비참한 결말로 해석하건, 젊은 이카로스의 강인한 도전 의식으로 해석하건 간에 분명 다이달로스는 스스로의 능력을 통해 하늘을 난 최초의 인간이자 그로 인해 외아들을 잃은 애처로운 아비로서 기억되어야 한다.


이 이야기를 옮긴이의 의도까지 애써 파악하려 하기보다는, 낮 꿈이든 밤 꿈이든, 그냥 그 이야기 속에서, 이야기의 꿈을 꾸는 것이 좋겠다.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꿈은 누구나의 것이고 그 꿈에는 아무런 제약을 두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인간의 꿈은 영원한 진행형인 것이다.


글을 마무리하다 말고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본다. 태초부터 빛이 그곳에 있었고, 그 이전에는 어쩌면 어둠이 그곳을 채우고 있었을 것이다. 시간을 구분하지 않는 이에겐 어둠인지 빛인지, 지금의 때란 것이 의미를 잃는 법이다. 무한한 시간이 흐르는 하늘 저 멀리에서 무언가 작은 점 하나가 일렁거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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