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이카로스의 날개>, 사건의 실제

11. <이카로스의 날개>, 사건의 실제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부자에게 일어났던 그날의 비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갇혔던 고대 그리스의 미궁 라비린토스(Labyrinthos)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들 부자는 왜 미궁에 갇히게 된 것일까."

이카로스와 다이달로스가 미궁에 갇히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첫 번째는 크레타의 왕비 파시파에와 연관된 이야기이다. 뛰어난 건축가이며 조각가에 발명가이기도 한 다이달로스는 크레타섬에서 미노스 왕의 환대 속에 지내게 되었고 그러던 중 왕의 시녀와의 사이에서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바로 이카로스이다.

당시 크레타의 왕비인 파시파에는 다이달로스의 도움으로 포세이돈이 보낸 황소와 정을 통하여 황소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가진 미노타우로스(Minotauros)를 낳았다. 당연히 왕비의 남편인 미노스 왕은 분노하였고 다이달로스에게 이 괴물이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최고의 미궁인 라비린토스를 만들게 하였다. 미노스 왕은 나중에 다이달로스가 그의 왕비인 파시파에와 괴물 황소의 간음에 도움을 준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에 화가 난 미노스 왕은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인 이카로스를 미궁에 함께 가두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미노타우로스를 미궁에 가둔 미노스 왕은 해마다 일곱 명의 소년과 소녀를 이 괴물에게 제물로 바쳤는데, 아테네의 영웅인 테세우스(Theseus)가 제물과 함께 미궁으로 들어가서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하였다.

이때 테세우스를 연모한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가 다이달로스에게 테세우스가 미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부탁하였고, 이에 다이달로스가 실타래를 주면서 탈출방법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미노스 왕은 분노하였고 이것으로 인해 다이달로스는 그의 아들인 이카로스와 함께 미궁에 갇혔다고 한다.


사실 다이달로스가 저지른 사건의 원인은 미노스 왕의 왕비 또는 딸에게 있는 것이었기에, 왕의 분노는 그 사건을 사주한 자신의 아내 또는 딸에게로 향해야만 한다. 사건의 원인이 왕비인 파시파에 있건 공주인 아리아드네에 있건, 그 사연이 어찌 되었건 간에 다이달로스는 그의 아들인 이카로스와 함께 자신이 만든 미궁인 라비린토스에 갇히게 되었다. 그들로서는 분명 억울한 일이지만 상대는 왕과 왕비, 공주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 멍청한 왕의 환대를 즐기며 살았던 다이달로스에게도 분명 책임은 있다. 이제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어떻게든 그 미궁을 벗어나는 것뿐이다.


결국 다이달로스는 그의 천재적인 머리와 손재주를 이용하여 미궁에서 벗어날 방법을 궁리해낸다. 그들이 갇힌 미궁 라비린토스는 건축물로서는 너무나도 완벽했기에 지상을 통해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그 미궁을 설계하고 만든 장본인인 다이달로스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서 자신과 아들의 어깨에 붙이고 하늘로 날아올라 미궁을 탈출하게 된다.


이카로스는 너무 높이 날지 말라는 아비의 주의를 잊은 채, 또는 무시한 채 태양 가까이로 날아갔고, 결국에는 태양의 뜨거운 열에 깃털을 붙인 밀랍이 녹으면서, 또는 깃털이 타버리면서, 바다에 떨어져서 죽게 된다. 다이달로스가 이카로스의 시신을 건져 올려 가까이에 있는 섬 어느 곳엔가 묻었다고 하는데 이 섬이 이카로스의 이름을 딴 ⟨이카이라⟩이다.


사실 오비디우스가 전한 이카로스의 날개에 얽힌 이야기를 알게 된 때부터 지금까지, 이야기의 제목과는 달리 이카로스가 차지하는 부분을 그다지 인상적이라고 여기지 않고 있다. 그것은 사건의 원인제공자이자 피해자이고, 기술자이자 예술가로서 미궁과 날개를 만들었고 아비로서의 애틋함을 불태운 다이달로스의 모험과 고뇌가 더 인상 깊게 남았기 때문이다.


날개를 만든 것은 다이달로스이고 다이달로스 또한 이카로스와 함께 하늘을 날아올랐으니, 날개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카로스의 날개라고 하기보다는 다이달로스의 날개라고 하는 것이 더 이성적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일이란 게 어디 이성적이기만 하였던가.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서는 것이 지극히 인간적인 일이다. 그래서 이 다이달로스의 날개 이야기에 <이카로스의 날개>라는 제목을 달아 붙여서 ‘날개, 미지의 세상에 대한 동경’으로 각색하고 채색하는 것이다. 원래 우리 인간은 보고자 하는 것을 사실로 믿게 되는 존재이다.


알고는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다이달로스라는 중년의 아비보다 젊고 싱싱한 이카로스가 더 끌린다는 것을. 주름 낀 이마에 햇볕에 그을린 피부, 어쩌면 머리까지 훤해가 벗겨졌을 다이달로스라는 기성세대보다는 금방이라도 튀어나올듯한 물기로 온몸이 팽팽했을 젊고 잘생긴 이카로스의 죽음이 더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현명한 독자라면 이제 오비디우스가 그들 부자의 비행을 목격한 이들로 '어부와 목동과 농부'를 지목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땅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태생적 운명을 하늘이라는 신의 영역으로 날아오르도록 안내한 것은, 비록 그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외아들을 희생양 삼았더라도, 다이달로스임에 분명하다. 즉 이 이야기는 ‘이카로스의 도전’이 아니라 ‘다이달로스의 도전’인 것이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소중한 무엇인가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비록 하나뿐인 아들이라 하더라도, 다이달로스는 알고 있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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