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이카로스의 날개>, 사건의 개요

10. <이카로스의 날개>, 사건의 개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고의 건축가이자 발명가인 다이달로스(Daedalus)의 외아들인 이카로스(Icarus, Icaros)와 그의 날개에 대한 이야기는 고대 로마의 시인인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o, 20 March 43 BC – 17/18 AD)의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를 통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오비디우스의 설명처럼 ‘자연의 법칙을 거슬러’ 하늘을 날고자 했던 그들 부자의 이야기는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많은 문학가와 사상가,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다이달로스는 위험천만한 비행을 나서기에 앞서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카로스에게 다음과 같이 단단히 일러두었다고 한다.

“너무 높이 날개 되면 태양의 열기 때문에 날개의 깃이 타버릴 것이고, 너무 낮게 날면 바닷물에 날개의 깃이 젖어서 무거워질 테니 반드시 하늘과 바다의 중간쯤을 날아야만 한다.”

이것은 날개의 사용법에 대한 설명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일종의 경고였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때의 일을 기록한 오비디우스는 다이달로스가 이카로스에게 비행하는 법에 대한 주의사항을 숙지시키는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하였는데 그것은 그들 부자에게 닥칠 불행에 대한 일종의 복선인 셈이다.

오비디우스에 따르면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부자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때, 이들의 모습을 본 ‘낚싯대를 드리운 어부와 지팡이에 몸을 기대고 선 목동 그리고 쟁기를 잡고 선 농부’는 필시 그들을 신으로 여겼을 거라고 한다.


자연의 법칙을 어기려고 했던 것인지, 아니면 지상에서 그들을 바라봤을 이들의 경배에 도취되었기 때문인지 또는 하늘을 날게 되었다는 환희 때문인지, 아니면 여느 젊은 아들자식들이 그렇듯 아비에 대한 이유 없는 반항이 원인이었든지, 아무튼지 아비가 미리 알려준 주의사항을 지키지 않은(또는 잊어버린) 이카로스는 하늘을 너무 높게 날아올라 태양 가까이에까지 올라갔고, 결국에는 날개에 문제가 생겨 바다에 떨어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날 이카로스가 떨어져 죽은 그리스 바다에 있는 섬에는 그의 이름을 딴 이카리아(Icaria)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사실은 어느 누구도 바다로 떨어지는 이카로스를 직접 목격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후대에 그려진 몇몇 그림 작품에서는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이카로스를 바라보는 이들을 묘사하고는 있지만 당시 이카리아 섬에 살고 있었을 사람들은 그저 묵묵히 자신들의 일에 열중하고 있었을 뿐이었을 것이다.

오비디우스가 그들의 비행을 목격한 것으로 언급한 인물들은 '정치가와 군인과 사제'와 같은 사회의 지배층이 아니라 '어부와 목동과 농부'와 같은 일반 대중이라는 점을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일반 대중이란 당시에나 지금이나 작은 것을 부풀려 얘기하기를 즐기고 사회의 다수이긴 하지만 타인에게 쉽게 '현혹' 당하는 '이성보다는 감성을 앞세우는 경향이 강한' 인간의 무리이다. 이런 점에서 오비디우스가 그들을 목격자로 지목한 것에 대해서는 표면적인 것 이상의 의미를 둘 필요가 있게 된다. 게다가 사실 지상의 사람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크지 않은 물체를 목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카로스가 추락하는 대목에서 흥미로운 또 다른 점은 막상 날개의 제작자이면서 이카로스와 같이 비행에 나선 자이자, 그들이 날개를 달고 하늘을 통해 탈출을 감행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빠지게 만든 장본인 격인 아비 다이달로스가 분명 어떤 식으로든 이카로스를 구해야 하는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락에 있어서만큼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은 듯, 어쩌면 추락의 방관자인 듯, 아들의 추락에 있어서는 마치 그림자 인간이 되어 버린 듯 아무런 역할이 찾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뿐인 아들이 자신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태양 가까이로 날아오르는 위험천만한 짓을 저지르는 장면을 목격하였을 다이달로스는, 그의 아들에게 위험성에 대한 주의를 사전에 주었다는 것은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을 미리 예견하였다는 의미인데, 그 위험성을 익히 알고 있었을 그가 어찌 아들의 철없는 행위를 물리적으로 제지하지 않았던 것일까.

다이달로스는 이카로스가 너무 높이 날아오르는 행동을 취하는 것을 목격하였기에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예견할 수 있었을 것이기에 물가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보듯 자신의 외아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카로스의 추락을 목격한 유일한 사람은 다이달로스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이달로스는 이카로스가 바다에 떨어져 숨을 거두기 전에 어떻게든 구해내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대체 왜 다이달로스는 그의 외아들의 죽음을 방임했던 것일까. 신의 아들로 태어나 감히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지녔던 다이달로스를 생각해본다면, 이 날 발생한 이카로스의 추락과 죽음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에 대해 저녁의 그림자보다 더 길고 진한 의혹을 '아비 다이달로스'에게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이제 다른 시선으로 이카로스와 다이달로스를 바라보자. 다이달로스는 아직 하늘에서 그의 아들을 찾고 있거나 이제야 이카리아의 앞바다를 향해 내려오고 있는 중이라고 추측해 봐도 되겠다. ‘왜 이제야’라든가 ‘아직도’라는 의문은 오직 인간에 대한 것이기에 신의 자식으로 태어나 신과 인간의 시간을 살아갔던, 어쩌면 현재도 살아가고 있을 다이달로스에게는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져볼 만은 하지만 그리 의미를 둘만하지 않은’것일 수 있다.


오비디우스는 이 이야기를 듣거나 읽게 되는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게 되기를 바란 것 같다.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무모한 도전은 결코 성공할 수 없으며, 자신의 직분에 충실해야 한다.”


상상은 또 다른 상상을 주렁주렁 달아내는 법이다. 전통적인 해설에 따르면 이카로스는 무모한 도전자이다. 하늘은 신이기에 하늘을 높이 날고자 하는 것은 신에 대한 도전이라고 해석된다. 신에 대한 도전과 추락이라는 관점에서는 바벨탑을 쌓아 올린 인간의 무리와 그것에 대한 심판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카로스는 누구인가.”

“이카로스는 한낱 철부지일 뿐인가. 아니면 신의 권능에 대한 도전자이거나 운명의 개척자인가.”

“이카로스는 인간의 진화를 위한 제물인 것일까.”


이카로스를 희생자로 본다면 누가 가해자일까. 이카로스를 추락하게 만든 것은 하늘이고 태양이기에 하늘과 태양이 가해자인 것일까. 아니면 미궁에 갇히게 되는 상황의 제공자였고 날개를 제작했던 아비 다이달로스가 가해자인 것일까. 또는 아비와 아들을 미궁에 가둔 크레타의 왕 미노스가 가해자인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희생이 따르더라도 인간의 진화를 위해서는 누군가는 도전해야만 한다는 교훈을 만들어 내고 싶었던 우리라는 인간 집단이 가해자인 것일까.


태양은 오늘도 수평선 너머로 유유히 질 것이고 내일 아침이면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또다시 그 반대편에서 떠오를 것이다. 또한 그의 아비 다이달로스와 미노스 왕은 이카로스처럼 하늘에서 추락을 해서이건 땅에서 그냥 숨을 거두었건, 아주 오래전에 이 땅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비록 그들이 평행 우주라든가 다른 어딘가를 살아가고 있다고 한들 인간이 살아가는 이 땅에 남은 것은 오직 이카로스의 날개에 얽힌 비극적이라 불리고 있는 이야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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