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 대한 탐구는 이성적 관점이나 감성적 관점에서, 또는 창조론적 관점이나 진화론적 관점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거기에 덧입혀진 철학이라는 채색은 '우리'를 형이상학과 형이하학 사이에서 떠돌게 만들기도 한다. 그 '우리'는 바로 '인간'이다.
그것이 어떤 방향에서 바라보는 것이며 어떠한 손놀림으로 다루는 것이건 간에 '인간'을 탐구하는 것은 별빛 하나 없는 어두운 밤바다를 떠다니는 조각배처럼 방향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니 온갖 잡다한 사색과 주장이 끼어들 여지가, 애써 찾아 나설 필요도 없을 만큼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인간을 탐구함에 있어 발생하는 이런 망망함과 비결정성은 ‘인간 자체에 내포된 복잡성과 불완전성’에 기인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식의 접근을 통해 어떠한 해석을 거쳐 어떤 결론에 도달하게 되든지 간에, 그 모든 접근과 해석과 결론이 '인간'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어떤 존재냐’와 같이 널리 회자되고 있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질문 또한, 그것의 답이라고 주장되고 있는 모든 것들을 답이라 받아들여도 괜찮을 수도 있고 그 전부를 오답으로 치부해야 할 수도 있게 된다.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하면 범위가 너무 넓어지는 것이 '우리라는 인간'에 대한 것이기에 폭을 좁히려는 시도가 필요해진다.
인간이 ‘관계 속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측면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겼다는 글귀를 눈여겨서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폴리스적인 존재’라고 얘기함으로써 ‘나’라는 인간의 존재에 있어 ‘우리’라는 개념을 심어놓았다. 개개인에 불과했던 '나'는 그의 입을 통해 '우리'라는 전체의 개념이 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살아갔던 시대에 대해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가 살아간 고대의 그리스에서는 '폴리스(Polis)'라는 것이 사회의 구성과 정치의 단위였으며 또한 인간이 문명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시스템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 이 폴리스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가장 이상적이라고 여겼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폴리스란 이데아(Idea)로 돌아갈 수 없는 인간이, 삶 속에서 고안하고 마련해낸 현실의 이데아였던 것일까."
2. 인간은 폴리스적인가
'인간이 폴리스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사회적인 변화를 반영하게 되면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또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는 말의 씨앗이 되었으며 ‘이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가’와 같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에 있어 인간의 속성이나 인간 자체를 나타내는 하나의 정리(Theorem) 이거나 공리(Axion) 또는 명제(Proposition, Thesis)이거나 부명제(Lemma)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개체(Entity)들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개체는 그것을 보조하는 다양한 속성들(Attributes)을 지니고 있다. 이때 속성은 그 개체를 구성하고 있는, 그래서 그 개체가 존재케 하는 가장 말단(leaf)의 성질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존재에 대한 탐구는 그 개체에 대한 탐구이며, 속성의 발견과 규명을 통해 그 개체로 점차 다가설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하나의 개체는 자신의 속성을 가지게 될 때 비로소 실재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란 개체의 관점에서 보면 폴리스는 '인간이 살아가는 시스템'이기에 '인간이란 개체가 가질 수 있는 하나의 속성'에 해당한다. 하지만 폴리스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폴리스를 구성하고 있는 속성' 중에 하나이게 된다. 따라서 폴리스는 속성이기도 하고 또한 개체이기도 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쳐 놓은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이 폴리스적인 삶이고, 인간은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는 것을 지금의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금의 세상에서 폴리스적인 삶이란 무엇이고, 어떤 방향에서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마을이자 도시이면서 또한 국가이기도 했던 폴리스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이, 공공의 규범이 개개인의 삶보다 앞서는 것이, 서로가 서로의 시선을 의식하면 살아가는 것이, 그런 폴리스적인 삶이 과연 인간의 존재를 가장 인간답게 하였던 것이었을까. 그때는 그러했다면 지금은 어떨까.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로 눈을 돌려 보면 커뮤니티(Community)라는 개념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아가던 시대의 폴리스라고 여겨볼 수 있다. 커뮤니티에는 혈연을 바탕으로 하는 가족이란 가장 작은 형태의 커뮤니티에서부터, 살아가고 있는 장소를 단위로 하는 지역적인 커뮤니티와, 특정한 성격을 매개체로 하는 사회적인 커뮤니티, 믿음이 단위인 종교적인 커뮤니티 그리고 국가라는 가장 큰 커뮤니티가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커뮤니티는 그 나름의 생태계를 갖기 마련이며 그것이 미시적이건 거시적이건 간에 관리시스템 또는 행정시스템, 단위에 따라서는 정치 시스템이라고 불리게 되는 시스템에 의해 조직되고 관리와 운영이 이루어지고 있다.
인간이 폴리스적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규정을 현재의 명제로 받아들인다면 ‘인간은 커뮤니티에 속해야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존재’인 것이고 따라서 ‘인간의 삶은 반드시 커뮤니티에 연관되기 마련’이다. 결국 지금의 커뮤니티는 고대의 폴리스가 그러했을 것처럼 인간을 행복하게도 때론 불행하게도 만드는 거부할 수 없는 사회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잠시 호흡을 고르고 주변을 살펴본다. 크든 작든, 중요하건 그렇지 않건, 지금 내가 속한 커뮤니티는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현실적인 증거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단지 그곳에 있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곳에 속한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는 실질적인 개념이다. 결국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커뮤니티는 인간의 존재를 증거 하는 핵심 속성(key attribute)이며 그 자체로서 다양한 속성을 지닌 개체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커뮤니티에 대한 탐구를 통해 '인간은 폴리스적인 존재'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현시대로 끌어내어 해석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