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감상의 지배에 몸과 영혼을 맡기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그저 방향 없이 걸음을 옮겨 다니다가 마음 가는 아무 곳에서나 아무 때를 찾아 멈춰 서면 될 뿐이었기에 그리 특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었다.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 새벽과 아침 그리고 오전과 정오, 오후와 해 질 녘 그리고 저녁과 밤의 어느 때에, 그저 밀려드는 바람결에 가슴이 쓸려가도록 그냥 내버려 두면, 감상은 늘 나의 영혼을 에워싼 거대한 우주가 되곤 했다.
무엇인가에 대해 '감상적'이란 표현을 사용할 때는 이성의 흔적을 찾으려 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감상적이란 것에서는 에고이즘(Egoism)의 짙은 향취가 물씬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에고이스트(Egoist)이기 때문에 감상적인 것일까, 감상적이기에 에고이스트가 된 것일까.”
인간은 그 자체로서 가장 에고적인 존재이니 인간의 본연은 감상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에서 답은 아니라 해도 답일 수도 있는 변명 정도는 찾아도 좋겠다. 원래 에고이스트에게는 답은 근심의 호수이고 변명은 자기 위안의 샘이다.
자신의 추억을 뒤적거리다가 보면 서랍 안에서 또는 집안 어느 구석에선가, 또는 책장의 한쪽 칸에서 나 자신에게는 무척이나 소중한 무엇인가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가지런히 모셔져 있거나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시장에 내다 놓으면 어느 누구도 쳐다보지 않을 것 같은 그것들에 담겨 있는 자신만의 추억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소중한 것일 수도 있다.
“소중하다는 것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서재 한 편에 꽂혀 있는 색 바랜 그 시절의 책들과 재킷 낡고 모서리 헤어진 LP판들, 한 번 더 눈길이 머물게 하는 잡동사니들과 어느 한 시절의 추억의 파편들 같이 흔히 ‘소중하다’는 표현의 그릇에 담긴 그것들에게 부여된 형이상학적인 가치가 바로 감상적 가치(sentimental value)인 것이다.
2. 감상적 가치, 가장 인간스러운 가치를 찾아서
서재의 책상머리에 앉아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는다. 지금이 오늘 하루의 언제쯤인지, 계절의 어디쯤인지, 얼마나 살아온 것인지를 소매 끝으로 쓱쓱 문질러 지워버린다. 손 내밀면 잡힐 것 같은 몇몇의 그것들과, 애써 돌아보아야만 흔적이나마 좇을 수 있는 그것들이 검은 바다 같은 망막 위를 떠다닌다. 감상적 가치란 어쩌면 '가슴 먹먹하게 하는 형체 없는 것들이 만들어내는 가없이 망망한 가치'일 수 있다.
너덜너덜하게 헤어진 1973년 판 노발리스의 <<밤의 찬가>>를 손에 쥔다. 훅 풍겨 나오는 오래된 책의 곰삭은 향기가 스물, 그 시절의 추억을 깨워낸다. 조심스럽게 표지를 넘기자 누렇게 변색된 종이 위에 세로로 내려 박힌 깨알 같은 검은 활자들이 밤하늘의 잔별처럼 반짝인다.
둥그런 밤하늘을 지붕 삼고 누런 종이를 달빛 삼아, 까만 활자의 별을 하나 둘 세며 밤을 지새우던 그날들의 내가 그곳에 아직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캐내었던 그 헌책방은 이젠 사라져 버렸겠지.”
이럴 때면 괜히 커피가 당긴다. 버릇일 뿐이라 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커피 원두가 담겨 있는 은빛 금속 깡통의 마개를 딴다. 진공에 갇혀있던 커피콩에서는 이른 새벽에 지피던 시골집의 군불 냄새가 난다. 커피 컨테이너의 뚜껑을 열어 커피 원두 여러 알을 부어 넣는다. 비어있던 물탱크에 물을 채우고 버튼을 누른다. 커피 갈리는 소리가 멈추자 말간 갈색의 커피 한 잔이 내려진다.
"아주 특별해진 것을 ‘각별한 것’이라고 하던가. 각별한 시간과 각별한 공간, 각별한 추억의 가치를 어떻게 숫자로 매길 수 있단 말인가."
어쩌면 감상적 가치를 지닌 무엇인가는 그 시간의 그 공간을, 어느 때의 어느 곳으로나 이동시키는 마법을 부릴 수 있는 것 같다.
북 찢은 새우깡 한 봉지를 허리 옆에 벌려두고 몸을 누워 하늘을 가린 책장을 넘기던 잔디밭의 풀냄새와, 속 허연 잔 바닥에 겨우 깔린 식은 커피를 탁자 위에 올려두고 밤이 늦도록 음악의 바다를 항해하던 음악다방의 매캐한 담배연기가 나의 서재로 소환된다.
추억은 그리워서 소중한 것이란 걸, 살아보니 더욱 절실하게 알게 된다. 돌아갈 수 없고, 돌아보지 말라는 것들이 늦은 가을날의 낙엽처럼 삶의 주변에 늘려있다. 아침이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처럼, 마을 들판을 흐르는 개울물이 어딘가로 흘러가는 것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언제인가는 감상적 가치를 지니게 될 무수한 것들을 떨어뜨리며 걸어가는, 긴 것 같은데도 막상은 짧기만 한 여행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