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 고독과 죽음의 미학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91138808705&orderClick=LAG&Kc=


프롤로그, 고독과 죽음의 미학 카라바조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생산지뿐만이 아니라 생산자와 품종, 수확연도가 서로 다른 검붉은 와인을 탁자 위에 잔뜩 늘어놓고서는, 손 가고 마음 가는 하나를 조심스레 고른 다음, 꼭꼭 닫혀 있던 코르크 마개를 살포시 땄을 때 일순 훅 풍겨 나오는,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고 풍부한, 푹 익고 잘 삭은 향기에, 너무 잘 골랐다는, 정말로 제대로 걸려들었다는, 이 병을 따길 진짜로 잘했다는, 넉넉한 안도의 눈웃음을 홀연히 짓게 된다.

카라바조의 그림은 기억의 호수 속으로 깊이 빠져들다가, 지금까지 대체 어떻게 살아온 것인지, 무엇을 위해 지금껏 살아온 것인지, 마치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무지렁이처럼 지금 바로 눈앞에 놓여 있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듯이, 언젠가 바로 앞을 지나쳐 간 것을 미처 인지하지도 못한 채 살아온 것은 아닌지, 어두운 극장 안을 가로질러 허연 스크린에 부딪혀 산란되는 영사기의 불빛처럼 희뿌연 먼짓길을 헤치며 살아온 것만 같은 시간과 시간을 자꾸 뒤돌아보게 만드는 신묘한 주술을 부리곤 한다.


살아가다가 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너무 까마득하기만 하여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바짝 뒤를 쫓고 싶어지는, 어느 한 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도저히 알 수 없을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불쑥 알아차리게 될 것만 같은, 그렇기에 떠날 수도 떠나보낼 수도 없는, 그래서 몹시 슬퍼지는, 그런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카라바조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과 그의 삶을 좇는 것은, 바로 그 무언가 때문이다.”

오래전의 어느 날인가 생각했던 것 같다. 언젠가 그때라는 것이 오면, 그와 그의 작품이 장식장 어딘가에 꼭꼭 챙겨 넣어 둔 상비약 같은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내가 될 만큼 몸 안 깊숙이 스며들어, 해괴하다 할 만큼 기가 막히기에 더욱 빠져들 수밖에 없는 그의 삶의 이야기와 그의 작품들을, 그리고 그의 내면과 그의 죽음을, 조목조목 하나 빠짐없이 꼼꼼하게, 카라바조가 그림 붓으로 작품 속 인물들과 이야기를 나눴듯이, 그 이야기에 자신을 그려 넣었듯이, 글의 붓을 들고 세세하게 그려 낼 것이라고, 그러고야 말 것이라고.

삶의 봉우리에서 그는 너무 일찍 내려섰다. 그래서 그를 떠올리는 일은 먹먹해지기 일쑤이다. 어떤 떠남은, 그래야 할 이유가 없이도, 아무런 기척 없이 그냥 갑작스레 찾아오는 법이다. 그는 빛을 알기도 전에 너무 일찍 어둠을 알아 버린 것이 아닌지, 어쩌면 그의 삶은 서쪽으로 난 창을 통해 서쪽 하늘만을 바라본 것은 아닌지, 무척 궁금하다.


그래서 서쪽 마을 어딘가에서 해가 질 때, 봄날의 목련이 한순간에 뚝 떨어져 내리듯, 유월의 장미꽃잎이 문득 시들어 바람을 따라 흩어지듯, 가을날의 낙엽이 허공을 가르며 기약 없이 추락하듯, 너무 익어 버린 그의 예술과 아직 풋풋한 그의 몸을 서쪽으로 길게 뉘인 것은 아닌지, 물기 낀 눈을 닦으며 자꾸 그의 주변을 서성이게 된다.

“가죽 가게를 다녀온 이에게서는 살 썩은 냄새가 나고 향수 가게를 다녀온 이에게서는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

- 탈무드에서

살아서는 스스로를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고독하였기에, 죽어서야 진정으로 아름다워진 비운의 천재 화가 카라바조, 빛과 어둠으로 인간의 이중성을 그려 낸 악마적 재능의 천재 화가 카라바조, 그의 삶과 예술과 죽음에서는 그의 작품만큼이나 격하면서도 허허한, 그래서 은밀하기까지 한 미학의 향기가 물씬 풍겨 난다.

또다시 하나의 끝을 향해 가고 있는 계절에, 뉴욕의 하늘 아래에서.


Dr. Franz KO(고일석)


이 책은 〈카라바조의 삶과 예술 그리고 죽음〉에 대한 기록이다. 카라바조의 작품에 대한 상세한 분석과 해설은 또 다른 저서 〈카라바조 예술의 이해와 작품 분석〉에서 다루기로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6. 에필로그, 카라바조를 회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