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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랭보 그리고 그의 문학

파리의 랭보 그리고 그의 문학  

             

자유와 포용의 도시 파리로

시인으로서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랭보는 친구 브르타뉴의 소개로 당시 파리의 문학계에서 인기 높았던 시인 폴 베를렌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이즈음에 랭보는 자신의 시를 당대의 여러 유명 시인에게 보내었었는데 그 중에는 100행에 이르는 장시(長詩) <취한 배>가 있었다. 


랭보의 시를 받아 본 베를렌은 1871년에 랭보를 파리로 초청하였다. 랭보는 육체적으로는 아직 열일곱이라는 십대 소년에 불과할 수 있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이미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 낸 성숙한 시인이었던 것이다.   


파리에 도착한 랭보는 시인들의 모임에서 일약 주목 받는 인물로 떠올랐다. 여기에서 랭보의 작품만큼이나 놀라운 점은, 십대 소년을 정식 시인으로 인정하고 그를 받아들여 준 ‘파리의 문단’이다. 당시 파리의 문단은, 파리만큼이나 자유롭고 열린 곳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파리의 문단조차도 랭보의 무분별한 도발과 반항기를 모두 수용하지는 못했다. 파리에서의 랭보의 행보는, 그의 성격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지만, 십대라는 나이의 특수성에서 온 거칠고 투박한 치기어림이 원인을 제공한 것일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랭보는 파리의 문단에서 점차 멀어지게 되었다.    

      


파리의 랭보와 그의 문학적 동지 베를렌

파리에서 베를렌과 랭보는 동성애 관계에 빠졌다. 이 둘의 관계에 대해서는 ‘동성애’라는 하나만으로도 수많은 루머와 추문이 과장을 더하여 따라 다니고 있다. 베를렌과 랭보는 ‘문학적 동지’이자 ‘동성의 연인’이기도 하였으니 당시나 지금이나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쨌든 뜻을 같이 한 두 사람은 1872년 파리를 떠나 브뤼셀과 런던을 방랑하듯 전전하며 함께 생활을 이어갔지만 오래가지 않아 파국으로 치달았다. 이 둘의 관계에 대해서 애초부터 파국을 향해 달려간 [파멸적 관계]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어쨌든 베를렌이 랭보를 권총으로 저격한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의 관계는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이 1871년부터 1872년에 랭보가 겪었던 경험에 대해서는 1873년에 완성한 《지옥에서 보낸 한 철》에서 그 흔적을 고스란히 찾아볼 수 있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랭보가 생전에 출판을 시도한 유일한 시집(詩集)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기에 랭보의 작품세계와 베를렌과의 경험을 이해하는 것에 있어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지옥에서 보낸 한 철》에서 더듬을 수 있는 베를렌과의 경험에 대한 각종 상징에 대해서는 온전히 랭보의 입장에서 표현된 것이라는 점을 또한 알아둘 필요가 있다. (랭보의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1873년에 완성되었으나 인쇄 대금을 치르지 못해 정식으로 출간되지 못하였다.)      


        

시로부터의 탈출

이 무렵부터 랭보는 시인으로서 시에 대한 열의가 식어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파리에서의 경험이, 문단에서 겪었던 일들과 베를렌과의 사이에서 있었던 그것들이, 그를 시로부터 떠나게 했을 수 있다. 또한 십대의 끝 무렵에 극점까지 도달했던 반항의식과 도전이, 그것들이 만들어낸 반짝이는 상징들이 문득 사라졌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는 이미 ‘스스로 시를 정복해 버렸기에’ 더 정복할 것이 없다는 허망함을 느꼈거나, 파리의 기성문단과 시에 대한 반항심이 작용했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랭보의 ‘시에서의 떠남’을 ‘시로부터의 탈출’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랭보가 ‘왜 그랬는지”, “왜 그래야만 했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제대로 알 수 없다. 오직 랭보만이 알뿐이지만 랭보는 그 이유에 대해서 아무런 말을 남기지 않았다.      

  

이 무렵 랭보는 직업을 구하고자 현실세계를 분주하게 쫓아다녔다. 랭보가 직업을 구하려 노력한 것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놓는 이도 있긴 하지만, 분명한 것은, 생계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이제 랭보는 소년으로서 가족과 지인의 보살핌을 받거나, 베를렌의 연인으로서 그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기에 자신의 삶을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다.    


그 와중에도 랭보는 한편으로는 미완성작으로 남은 산문 시집 《일뤼미나시옹》의 원고를 작성하였다. 《일뤼미나시옹》은 《지옥에서 보낸 한 철》과 함께 프랑스 산문시의 최고봉을 이룬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랭보는 1875년 무렵 그의 문학을 완전히 단절하고 프랑스를 떠났다. 랭보가 1854년생이니 1875년은 그의 나이 스물 하나가 되던 해이다. 프랑스를 떠나 네덜란드·자바·북유럽·독일·이탈리아·키프로스 등을 유랑하며 ‘방랑자와 같은 삶’을 살아가다가 1880년 경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로 건너가 교역에 종사하는 상인으로서 자리를 잡았다. 


랭보의 이러한 변화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하겠지만 파리에서 겪었던 ‘현실에 갇힌 예술적 자유의 세계’에 만족하지 못한 것이 원인일 수 있다. 진정한 자유는 아무런 틀에 갇히지 않은 상태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성 파리의 문단은 랭보를 그들만의 잣대로 들이대려 했으니 ‘바람 구두를 신은 랭보’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랭보와 그의 시는 이미 파리의 문단에서는 거의 잊혀 있었다. 따라서 랭보가 프랑스를 떠난 것은 ‘완전한 지워짐을 통해 진정한 자유’를 얻으려고 한 것일 수 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전적으로는 아니라 해도 일부분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일들과 파리에서의 경험이 프랑스를 떠나게 만든 원인일 수 있다.    


          

랭보의 귀환과 죽음

랭보가 프랑스를 떠나고 몇 해가 지난 1880년경부터, 베를렌 등의 소개를 통해 랭보의 시가 파리의 문단에 알려지면서 ‘랭보만의 대담한 형식’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렬하고 풍부한 상징적 이미지’로 인해 젊은 시인들을 중심으로 반향을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랭보의 시는 파리로 귀환하였지만 시를 떠나 완전한 생활인인 되어버린 랭보에게, 파리의 문단에서 발생하는 일 따위는 자신과는 무관하기만 한 그저 먼 나라의 일일 뿐이었다. 


1891년, 골수암에 걸려 프랑스로 돌아온 랭보는 다리 절단 수술을 받은 몇 달 후인 그해 11월 10일에 마르세유에서 사망하였다. 그가 태어난 것은 1854년 10월 20일이었으니 그가 사망한 1891년 11월 10일은, 그의 서른일곱 번째 생일이 지나고 스무하루 째가 되던 날이었다.      

<바람 구두를 신은 천재 시인 랭보>의 삶은 그렇게 서쪽 산 능선을 홀연히 넘어가 버렸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의 출판에 대해

⟪지옥에서 보낸 한 철⟫(A Season in Hell (French: Une Saison en Enfer)은 랭보의 생전에 스스로가 출판을 시도한 유일한 시집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1873년 브뤼셀에 있는 한 인쇄소에서 500부가 인쇄되었다. 하지만 가난한 랭보는 인쇄 대금을 지불할 수 없었기에 결국에는 정식으로 출간되지는 못하였다. 이것을 통해 당시 랭보가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운 상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에 와서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인기 있는 소수의 유명 작가가 아니라면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작품집을 출판하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랭보는, 자신의 시집을 출간하기 위해 얼마의 돈이 필요한지, 그가 그 돈을 마련할 수 있을지에 대해 미리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누군가의 도움이 있을 거라고 여긴 것인지,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음이 분명한데도 랭보는 자비출판을 강행하였고 그렇게 해서, 아주 다행스럽게도,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 검은 문자를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나타내게 된 것이다.


사실 인쇄소 주인의 입장에서는 인쇄를 시켜놓고 인쇄대금을 지불하지 않고 증정본 몇 권만 수령해간 일이 아주 낭패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랭보가 찾아가지 못한 남아 있는 시집들은 이후 인쇄소의 창고에 오랫동안 보관되어 있다가 랭보가 사망(1891년)하고 약 10년이 지난 1901년에 발견되어 베를렌에 의해 랭보의 다른 유작 시집인 ⟪채색 판화집⟫(Illuminations)과 함께 정식으로 출간되었다.      


1873년에 인쇄된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 1901년, 베를렌에 의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약 18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18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랭보의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 인쇄소의 창고에 보관된 것에 대해서는, 인쇄소 주인이 ‘언젠가 랭보가 찾아가길 기다린 것’인지, ‘창고에 처박아 놓은 채로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인지’ 알 길 없다.


인쇄소 주인이, 사실이든 아니든, 세상에 모습을 나타낸 랭보의 첫 시집의 작품성을 알아차린 ‘젊은 날 문학을 사랑했던 문학인’이라고 여겨보아도 좋을 것 같다. 그것이 아니라면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의 인쇄와 18년이란 세월의 이해에는 수많은 논픽션들이 끼어들 것만 같다.    

               

랭보의 문학적 동지이자 동성의 연인이었던 베를렌은, 랭보에 대해 다양한 삽화들을 그렸고 이 그림들 중에 여러 편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가 그린 이 그림들은 ‘파리에서의 랭보’를 표현한 또 다른 ‘상징’들이 되었다.     



랭보의 1873년과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의 집필

랭보의 삶은 말 그대로 복잡다단했다. 그의 시처럼 랭보의 삶은 온갖 ‘상징’들로 채워져 있어 그를 이해하는 것은 그 상징들을 해석해 내는 것처럼 난해한 일이 되고 있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 집필된 1873년은 랭보의 삶에 있어서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1873년 7월 10일, 랭보를 ‘지옥처럼 뜨거운 악마의 도시 파리’로 초대하였고, 문학적 동지이자 동성의 연인 관계였던 베를렌이 랭보를 향해 ‘충동적으로’ 총을 발사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일로 인해 두 사람은 영원히 결별하게 되었고 베를렌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랭보는 자신의 고향인 로슈로 돌아와 첫 번째 시집⟪지옥에서 보낸 한 철⟫의 집필을 시작하였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 집필된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랭보의 삶을 알고 있는 독자와 문학가, 연구가들은 이 시집에서 랭보가 시를 떠나게 된 이유와, 자전적인 이야기, 그의 삶에 얽혀 있는 베를렌의 이야기를, 시어의 상징들 속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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