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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보의 학장시절과 시인으로의 성장

랭보의 학장시절과 시인으로의 성장  

                 

랭보의 학창시절

학창시절 초기의 랭보는 아주 뛰어난 모범생이었다. 특히 라틴어 작문 대회에서 수차례 입상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학창시절부터 랭보는 언어적 감각이 탁월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점차 반항적으로 변하였었고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방랑에 빠지기도 하였다. 랭보는 결국 16세가 되던 해에 교육기관을 통한 공식적인 학업을 포기하였다. 


랭보가 반항적으로 변하게 된 것에는 분명 어떤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또는 지속적이고 불규칙적인 어떤 현상이 랭보의 심리에 작용했을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한 사람이 변하게 되는 것은 어떤 하나의 사건으로 인한 것이기 보다는 살아온 배경과 사회 환경 같은 외적인 면들 이외에도, 그 사람의 내적인 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랭보의 경우에도 어떤 하나의 사건만을 콕 집어서 “그것 때문에 랭보가 반항적으로 변하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랭보에게는 문학이, 그의 변화에 격발작용을 일으켰을 거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문학에 대한 본격적인 몰두

랭보가 본격적으로 문학에 몰두한 것은 중학교를 다니던 열다섯 살 경부터였다. 그 무렵의 랭보는 소수의 부르주아가 이끌어 가고 있는 불평등한 사회에서 자행되고 있는 각종 불의와, 종교의 위선을 규탄하는 시를 썼다. 그가 쓴 여러 편의 시에서는 랭보가 가톨릭교회와 부르주아의 도덕에 대한 강한 혐오감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랭보가 살아간 시대의 사회적 환경을 고려해야할 필요가 있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부의 증가로 인해 경제적 불균형이 더욱 심화되고 있었으며, 인간의 가치는 ‘인간 자체’로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경제적 능력을 중심으로 판단되어지던 시대에 랭보가 태어나서 성장하며 교육을 받으며 인간으로서의 격을 갖추어 가고 있었다. 


인본주의적 가치관은 더 이상 발을 디딜 곳을 찾지 못한 채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으며, 그 자리에는 자본주의적 가치관이 빠르게 대체되었다. 또한 종교는 이런 사회적 현상을 외면 내지는 방임, 또는 묵시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보였다. 어쩌면 랭보의 눈에 당시의 교회는 ‘종교적 신성함’을 잃어버리고서는 부르주아의 편에 서서 부르주아를 옹호하는 것처럼 비쳤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구보다 조숙했던 어린 랭보는 이런 사회적 불의에 반기를 들고, 행동과 언어를 통해 저항하고자 한 것 같다. 중학교를 마치기도 전에 랭보는 몇 번의 가출을 되풀이하다가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그 자신의 내적인 변혁을 모색하였다. 그 시절의 그는 파리코뮌(Paris Commune)에 열광하였다. 랭보는 파리코뮌이 새로운 시대를 향한 봉기였던 것처럼 ‘언어적 봉기’를 통해 삶의 변혁을 이끌 상징적인 표현들을 탐닉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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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코민

파리코뮌은 1854년생인 랭보가 17세였던 1871년에 있었던 파리에서 있었던 민중 봉기이다. 프로이센ㆍ프랑스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하고 나폴레옹 3세의 제2제정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다. 이 봉기를 통해 민중에 의해 설립된 혁명 정부가 72일 동안 존속하면서 여러 가지 민주적인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결국 정부군에게 패배하여 수많은 희생을 낳고 붕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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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보와 이장바르

랭보가 문학을 시작하게 된 것에는 그의 담임선생이었던 이장바르의 역할이 있었다. 랭보는 이장바르에게서 빅토르 위고(Victor Hugo, Victor Marie Hugo, 1802-1885)가 1862년에 발표한 장편 소설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과 같은 문학작품들을 소개받으며 본격적으로 문학의 세계에 발을 딛게 되었다. 


각박한 사회에서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범죄자가 되어 세상과 인생을 저주하며 불행하게 살아가던 주인공 <장 발장>(Jean Valjean)의 영혼이, 주교(主敎)의 자비심(깨끗한 사랑)에 감화되어 사랑을 깨닫게 되고 ‘민중을 위한 정치가’가 되어 선정(善政)을 베풀며 ‘영혼이 구제되어 가는 과정’을 텍스트로 그린 ⟪레미제라블⟫의 내용을 통해, 이 시절에 랭보가 쓴 시에 나타나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종교에 대한 회의’와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경멸’의 뿌리를 찾아볼 수 있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랭보의 어머니는 이장바르에게 “왜 아이에게 그런 소설을 읽히느냐.”며 불평하였다고 한다. 가톨릭 신자로서 누구보다 엄격한 종교적 교육관을 가졌던 어머니의 눈에는 ⟪레미제라블⟫은 불경스러운데다가 반사회적 성향을 표출한 잡글의 하나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장바르와 랭보는 단순한 교사와 제자의 관계를 넘어 그 이상의 친밀한 관계였던 것 같다. 가출한 랭보가 가장 먼저 찾아간 사람이자 그의 든든한 정신적 지원군이 이장바르였다. 이장바르는 랭보의 [영혼의 스승]이었던 것이다. 또한 이장바르는 랭보에게 바칼로레아 시험을 보고 대학에 입학하여 학업을 계속할 것을 권유했지만, 너무 조숙한 랭보는 “나는 시인이기에 대학 따위는 갈 필요가 없다”는 자세로 일관하였다.  

    

이즈음(1871년) 랭보는 자신의 시의 세계를 밝힌 편지, <견자의 편지>라고 불리고 있는 두 통의 편지를 이장바르와 폴 드메니에게 써서 ‘이제부터 자신은 시인의 길’에 전념할 것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견자의 편지>는 랭보의 문학을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는 문서이다. 이 두 통의 편지에서 랭보는 시에 대한 자신만의 논리를 펼치면서 자신은 <견자>(見者, voyant, 꿰뚫어 보는 자)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견자>는 랭보의 시와 사상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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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보의 <견자의 편지>

1871년 5월에 열일곱 살의 랭보는 시인으로서 ‘시에 대한 자신의 세계관’을 밝히는 편지 두 통을 쓴다. 이 편지들은 랭보가 ‘견자’로서 세상을 향해 자유로운 항해를 시작하겠다는 일종의 출사표라고 할 수 있다. 

5월 13일에는 담임선생이자 학창시절의 멘토였던 조르주 이장바르에게 써서 보냈으며, 5월 15일에는 스승의 친구이자 시인인 폴 드메니에게 써서 보냈다. <랭보의 견자의 편지>는 바로 이 두 통의 편지를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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