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으로서의 가면

가면을 착용한다는 것의 의미

가면은 그것으로 얼굴을 가리는 사람의 의지를 반영하여, ‘자기 자신이긴 하지만 현실 세상에서의 내가 아닌 또 다른 세상에서의 나’일 수 있게 해주는,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게 해주는 기능을 가진 아주 특별한 ‘변신의 도구’이다.(가면의 이러한 기능은, 가면이 가진 여러 가지의 다양한 기능들 중에서도 주술적인 역할 또는 심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정신적 도구로서의 기능에 해당한다.)


가면을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나무나 종이, 흙이나 금속, 돌과 같이 생활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들을 이용해서 제작된 작은 물체의 한 가지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가면이 행할 수 있는 기능은 단순히 얼굴을 가리는 것에만 있지 않고, 심리적인 변신과 정신적인 위안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것에도 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가면을 쓴 것 같다.”라고 말을 하거나, 누군가에게서 ‘가면을 쓴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될 때가 있다.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가면을 썼다.”라는 것은 어떤 형상이나 상징으로 얼굴을 가렸다고 하는 직접적인 행위가 아니라, 행동이나 말이 어딘가 수상하거나 의뭉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에 해당한다.


이렇듯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가면을 쓰다.” 또는 “가면을 착용하다.”라는 표현에는, 누군가가 “딱히 이것이라고 말하기에는 곤란한 어떤 미지의 것으로 자신을 가림으로서 그 자신의 의사나 내면을 숨기려는 의도적인 행위가 있어 보인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정체성으로서의 가면

‘가면을 착용하는 것’이 마음이나 양심을 가리기 위한 의도적인 행위로 여겨지는 경우에는, 가면을 착용하는 ‘행위’만이 아니라 가면 ‘그 자체’ 또한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이러한 경우 “가면을 썼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사용하는 것은 그 또는 그녀의 행동이나 사고에 반사회적이라거나 어떤 불순한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 같다는, 경계와 비난의 의미가 그 표현 안에 담기게 된다.


인간의 얼굴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스스로가 선택하지 못하듯이 자신의 얼굴 또한 스스로는 선택하지 못한다. 따라서 자신의 얼굴은 자신에게 부여된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가면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에 준해서 자신이 쓸 가면을 선택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손으로 고른 가면을 자신의 얼굴에 착용할 수 있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는 언제든 그것을 벗어버릴 수 있다.

사회적으로 그 또는 그녀를 ‘바로 그 사람’이라고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가장 보편적인 수단은 사람의 얼굴이다. 사람의 얼굴이 그 사람의 사회적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가면을 얼굴에 착용한다는 것은, 자신이 속한 집단과 타인에게 보이는 자신, 즉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에 변화를 준다.” 또는 “사회적 정체성을 바꾼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가면을 착용한 채 살아가고 있는 사회적인 존재이다.”


이 말은 사람이 가진 사회적 정체성은 하나만이 아니라 여러 개일 수 있으며 또한 가변적일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가면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하게 자의에 의해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존재이다.


이때 어떤 사회적 정체성은 부정적인 면을 앞세워 발현될 것이고 어떤 사회적 정체성은 긍정적인 면을 앞세워 발현될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처럼 인간은 사회를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의 사회적 정체성은 곧 그 사람의 정체성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혼돈에 빠지게 된다. 우리가 흔히 그냥 ‘정체성’이라고 말하고 있는 인간 내면의 정체성은 하나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 정체성이 사람의 정체성이 될 수도 있다면 인간의 정체성은 하나 이상일 수 있다는 것이 된다.


왜 그럴까. 대체 어떤 것들이 한 사람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수많은 ‘답일 수 있는 답’을 찾아볼 수 있겠지만 어쩌면 그것들 중에서 그 어떤 것도 답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 인간이 그 어떤 형태의 정체성을 보이게 되든지 간에 그 정체성은 결국 그 사람의 자아 또는 자아의 어떤 한 부분이 내적⋅외적으로 발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인간이 가면을 찾는 이유에 대해 한 가지 ‘답일 수 있는 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이 가면을 찾는 이유는 자신의 자아가 그렇게 하라고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자아가 그 가면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자아가 그 가면으로 나의 모습을 가리고 싶기 때문이다.

나의 자아가 그 가면을 쓴 나를 ‘나인 것처럼’ 타인과 내가 속한 사회에게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나의 자아가 그 가면을 쓴 나를 나의 실체처럼 보이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논의만큼이나 복잡한 것이므로 이 문제는 차후에 다시 다루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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