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놉시스도 주어지지 않고
플롯도 짜여 있지 않으니
종 잡을 길이 없다
지금까지 무엇을 상영한 것인지
결말이 있기나 한 것인지
어느 것 하나 알 길 없는 영화가
스크린에 걸려 있다
무수한 삶의 순간들은
스쳐가는 장면과 장면일 뿐이다
새 필름 뭉치가 영사기에 걸리려나 보다
물 때를 기다려 갯벌로 나가는
바닷가 마을의 아낙처럼
마음이며 걸음이 바빠진다
이윽고 필름이 돌아가고
빛의 입자가 쏟아져 달린다
제목도 모르고 내용도 모르지만
지금이 바로 그때이고
이 자리가 바로 그 자리임을
짐작으로 알아차린다
스크린을 메운 이 영화가
나의 삶에서 마지막 상영작이기를
검은 공간을 가로지르는
외줄기 불빛 같은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그래, 때 맞춰 이 자리에 앉았으니
이젠 그것을 읽어낼 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