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는 해바라기에 대해 아주 특별한 애착을 가졌던 것 같다. 해바라기에 대한 빈센트의 애착은, 노랑이라는 꽃의 색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지만 타오르는 듯한 꽃의 형상 때문일 수 있다. 빈센트의 <해바라기> 시리즈는 1887년에 그린 네 점의 작품과, 1888년에 다섯 점, 그리고 1889년에 세 점까지 해서, 지금까지 총 열두 점의 작품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들 중에서 일본의 한 개인 컬렉터가 소장하고 있던 1888년 작 <여섯 송이 해바라기>는 2차 세계대전 중에 발생한 화재로 소실되었고, 남아 있는 열한 점의 작품들 중에서 일부는 다른 개인 컬렉터가 소장하고 있어 작품 전체를 직접 감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로열블루 색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두 번째 버전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소실되었다.
<Sunflowers>, second version: royal-blue background, 98cm × 69cm
Formerly private collection, Ashiya, Japan, destroyed by US air raid of World War II on 6 August 1945
빈센트의 <해바라기> 시리즈 중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는 1888년 작 <해바라기>이다. 이 작품이 대중에게 잘 알려지게 된 것에는 전시관인 내셔널갤러리가 런던 시내의 중심가에 있다는 ‘접근의 용이성’에도 있지만 작품 자체의 작품성에도 있다.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서 소장하고 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1888년 작 <해바라기>는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 중에서 네 번째 버전으로 알려져 있다. <Sunflowers>, 1888, 4th Version, 92.2cm × 73cm, National Gallery, London
내셔널 갤러리의 <해바라기>는 빈센트가 그린 다른 해바라기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갖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해바라기와 꽃병에서부터 그 배경을 이루고 있는 벽면과 탁자까지, ‘고흐의 노랑’이 캔버스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또한 노랑의 채도에 덧붙여진 약간의 붉은 기운이 사물과 사물 사이의 경계를 흐리지만 분명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고흐가 만들어 낸 이 경계는, 어렴풋한 것이 더욱 선명한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다.
알려진 바로는, 파리 생활을 청산하고 프랑스 남부의 아를로 거처를 옮긴 빈센트가, 그토록 함께 지내고 싶어 했던 고갱 또한 이 그림을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미국의 [필라델피아미술관]에서도 1889년 1월에 그려진 빈센트의 <해바라기>를 감상할 수 있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고흐미술관]과 독일 뮌헨의 [노이에 피나코텍 박물관]에서도 빈센트의 <해바라기>들을 만나볼 수 있다.
지금까지 세상에 드러난 빈센트의 작품은 900여 점에 달한다. 스물일곱에서부터 서른일곱까지, 약 10년이란 시간 동안 빈센트는 900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다. 빈센트의 작품을 얘기함에 있어 10과 900은 실로 놀라울 만큼이나 대단한 숫자들이다. 10이라는 연도의 숫자는 너무 짧아서 놀랍고, 900이라는 작품의 숫자는 너무 많아서 놀랍다.
이 숫자들을 통해 빈센트는, ‘도저히 믿기 어려울 만큼의 다작 화가’(incredibly prolific painter)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그림으로 생계를 해결할 수는 없었지만, 그림이 그의 생계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되지는 못했지만, 빈센트는 10년이란 세월 동안 오직 ‘그림 그리는 일’을 자신의 업으로 삼은 완전한 ‘전업 화가’였던 것이다.
그 많은 빈센트의 그림들 중에서도 <해바라기> 시리즈는 1887년부터 1889년까지 빈센트의 예술적인 변화와, 예술에 대한 그의 세계관, 그리고 내면의 심리상태까지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들이 되고 있다. 빈센트가 살아간 것이, 1853년 3월 30일에서 1890년 7월 29일까지 불과 삼십칠 년과 약 4개월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해바라기> 연작을 통해 1887년에서부터 1889년까지의 빈센트를 들여다보는 일은, 그를 연구하는 연구자들뿐만이 아니라 그의 예술을 아끼고 사랑하는 예술애호가라면 반드시 치러야만 하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빈센트의 <해바라기> 시리즈에 대한 해설과 분석만으로도 책 몇 권 정도는 어렵지 않게 꽉 채워 발간할 수 있게 된다. (고흐의 <해바라기>에 대한 좀 더 자세한 해설은 별도의 챕터를 통해 다루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