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정말 잘 부르고 싶은 노래이다. 갓 내린 에스프로소의 향기 보다 더 진한 감상 몇 조각을 추억의 발자국에 떨어뜨리며 걸어가는 여행길은, 정말 제대로 부르고 싶은 노래의 한 토막이 된다.
그 노래에는 음악적 지식이나 기교 따위가 담겨 있을 필요는 없다. 화성학이라든지 리듬, 호흡법이라든지 발성법, 창법이라든지 곡의 짜임새 같은 양식적인 것들 보다는 여행자의 가슴에서 '툭'치고 올라온 감상을 목소리의 파동에 적당히 실어 입 밖으로 밀어내면 될 뿐이다.
이국의 먼 하늘 아래
맑은 들판 오솔길을 걸어가는
여행자의 감상은
어린 계집아이의 웃음이거나
작은 종달새의 지저귐처럼
마냥 밝고 경쾌한
바람의 노래 같고,
잿빛 하늘에 진청의 빗물이
후드득 떨어지는 날
어렵사리 찾아든
숲 속 낡은 오두막의
처마자락을 타고 내리는 물줄기의
투명하지만 애잔한 노래 같다
들숨 날숨의 호흡 결이
미세한 음의 파동으로
살갗에 속삭이면
얇은 고막의 세밀한 떨림이
살갗의 촉을 더욱 예민하게 한다
가릴 것 없이 벌거벗은 나신의 피부는
그 나지막한 입술의 속삭임에
오돌 도돌 봉긋하게 솟아나서
여행의 지독한 맛에 길들여진
여행자의 이성을
벗어날 수 없는 혼돈에 빠지게 한다
훔치고 싶어 진다. 살며시 훔쳐, 노랫가락에 담아 넣고 싶어 진다. 길가의 저 풍경, 부서진 돌조각에 새겨진 인간 삶의 역사가, 문명의 어느 둥근 하늘아래에서 살아온 모습을 노래하고 싶어 진다. 불현듯 목이 열리고 가슴이 뜨거워진다. 다행이다.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표이기에.
여행길 걷기란 게 이리 인간의 감상을 목과 호흡에 온전하게 싣고 싶게 만드니, 그 강한 중독성은 늘 초이성을 여행자의 본성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또한 행복한 일이다. 어떤 착각은 사람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영혼의 식량이기에.
눈이 시려,
그 파란 하늘 바람은
바다절벽에 애써 매달린 잔풀의
작은 몸뚱이를 가벼이 쓰다듬고 지나가지
그 가마득한 발아래,
청옥의 파리한 바닷물엔
바람의 박자에 맞춘 백색 포말의 군무가
자유로이 바다공연장에 오르고
절벽 위에 자리 잡은 관객은
대를 이어 인간의 관람석을 지키지
새로 돋은 속살 같은
말간 바다의 피부는
햇살조차 말게 여과시켜
순백의 눈빛을 반짝이게 하고
파스텔 파랑으로 채색된
바다 물살 군데군데 뿌옇게 숨어 사는
반점 같은 섬들의 낮은 절벽에는
인간의 작은 삶이
좁은 골목길을 따라 느리게 쌓은
돌담의 하얀 벽과
짙은 오렌지 고동빛의 지붕 아래에
옹기종기 엉켜 붙은 인간 마을의 품 안에서
바다의 바람으로 숨을 쉬지
손에 잡힐 듯 인간 삶에 내려앉은
파랑의 하늘바다에 하얀 새 한 마리가
뽀얀 구름의 선을 그리며
눈 뜬 채 낮 꿈을 꾸고
빛의 가루 같은 가벼운 날개 짓으로
어느 날 바다에 내려앉아
하얀 포말의 무늬가 되어
파란 바다의 자잘한 꽃으로 피어나지
바다마을 사람들의 기질을 닮은 겐지
그 절벽 위 파란 바람 부는
인간의 하얀 마을에서
길을 멈춘 나의 빈 여정은
바다마을 사람들의 낮 삶을 살고
바다마을 사람의 밤잠을 청하지
오늘도 바다마을 잔풀은
바닷바람에 떨리고 있지
빛의 입자조차 온천지에 옅은 안개로 내려앉은 작은 섬들, 그 안을 옹기종기 살아가는 하얀 집과 파랑과 오렌지고동의 지붕들, 좁은 골목을 누비는 하얀 웨딩행렬이, 파스텔 톤 바다마을에서 맞닥뜨리고 싶은 여행자의 마음속 풍경이다.
골목길에 쪼그리고 앉아 가방을 내려놓는다. 흠 흠, 목청을 가다듬고 입술을 연다. 햇살이, 바닷바람이, 들판의 꽃 향기가. 사람의 체취가, 평상 마루에 누워 듣던 할미의 흥얼거림 같은 아련한 노랫가락이 되어 갈매기의 울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