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같은 여행

음악 같은 여행


여행은 음악이다. 먼 길에 오른 여행자는 늦어진 잠에서 깨어난 어느 날의 느지막한 오후에 시골 마을을 달리는 완행버스에 오른다. 먼지 자욱한 차창의 유리에 비스듬히 기울어져 스며드는 태양 빛의 끝에서 노래 한 곡을 찾아 듣는다.

미처 갈지 않은 건전지 때문인지, 등 굽은 시골 할미의 낡은 살림살이 같이 낡은 모터 때문인지, 되감기 버튼을 몇 번 눌러 어렵사리 찾은 그 노래에는, 꺽꺽거리는 톱니바퀴의 힘겨운 숨소리가 축 처진 백 코러스 같이 더해진다.

눈을 감는다. 꼭 들어야 할 것은, 그것이 어떤 상태이든지 간에 들리기 마련이다. 귀롤 들을 수 없는 것일랑은 마음으로 들으면 된다.


선잠에 든 것 같은 시간이 깜빡 흐른다. 꿈속의 어디인지 선계의 어디인지 애써 구분할 필요는 없다.

눈 몇 번 뜨고 내리는 사이 햇살이 더 기울었다.

음악이 멈출 시간이다. 헤드폰을 접고 타닥거리는 버스의 소음에 귀 기울인다.

몸에 걸친 것들을 벗어 내린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것이 오히려 편안할 때가 있다.


여러 나라의 여러 도시와 시골 마을을 여행자란 이름의 이방인으로 걷고 또 걸었지만, 아직 출발점에서 그리 멀리까지 오진 못한 것 같다. 간 곳보단 갈 곳이 늘 더 많은 것이 여행이다. 한 곳을 다녀올 때마다 가야 할 곳이 더 많아지는 것이 여행의 아이러니이다. 출발한 곳으로 돌아오게 되는 여행은 뫼비우스의 띠를 걷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도 다행이다. 갈 곳이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 도달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끝이 주는 위안은 긴 여행길을 걸어본 여행자의 본능만이 알아차릴 수 있다.

시간에 얹힌 세월의 가장 큰 작용은

퇴화이거나 변절이다

다녀온 곳들의 기억도

어느새 습자지에 감싸 덮이듯 희미해져 가고

적당히 변형된 기억은

추억이란 이름으로 남겨진다

변형은 변절이거나 변이이다

지나간 것의 변절은

어느 순간 아픈 상처가 되고

적당하게 변이한 기억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다

추억의 속성이 아련함이니

여행의 끝에 남는 것은

어느 기억 속,

아련한 추억의 앨범 한 권이다


시간 흐른 어느 날, 문득 펼친 앨범에서 추억이 되지 못한 채 색 바랜 사진을 발견한다. 추억의 색바람이란 게 퇴색일까, 변절일까. 그 퇴색의 변절에도 담담해지는 때가 있기 마련인가 보다.

하지만 그것이 슬퍼지는 것은 어쩌면, 퇴색의 빛바램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먼 길을 잘 걸어왔기 때문일 수 있다. 잘 걸어왔기 때문에 슬퍼지는 것이나, 강한 자만이 살아남아서 슬퍼지는 것이나, 슬퍼지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해력이란 게 세월의 흐름과 함께 오는 법이니, 무언가를 깨닫는 순간, 이마의 주름만큼 가슴의 골이 깊어지기 마련이다.

여행길은 그 세월의 풍화작용을 잔잔한 결로 변이시킬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정말 좋은 여행길의 음악은 세월의 골을 ‘세월의 결’이 되게 한다. 이것이 여행이 부리는 주술이다. 그래서 여행길에서도, 머리에 두른 헤드폰을 놓지 못한다. 마법의 주문 같은 리듬은, 거친 삶의 시간을 결 곱고 보드라운 문양으로 바꾸어 가슴과 얼굴에 남게 한다.


늘 그랬던 것처럼 준비랄 것 크게 없이 여행길에 나선다. 챙기지 못한 여행가방에 앞서 가슴이 먼저 그 길에서 음악 한 곡을 선곡한다. 이젠 몸뚱이의 걸음이 그 뒤를 따라야 할 때이다. 모든 여행이 새롭기에 그 길에서 듣는 모든 음악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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