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가, 뉴욕이 좋다

뉴욕연가, 뉴욕이 좋다


회백색 콘크리트가 오히려 낭만인 도시

거리마다 골목마다 예술과 문화가 충만한 도시

두 발로 걷는다면 가지 못할 곳이라곤 하나 없는 도시


누구라도 길 잃을 일일랑은 없는 도시

발바닥이 시큰거릴 때면 어김없이 공원이 나타는 도시


모서리 하나하나가, 불빛 하나하나가,

가슴이 시릴 정도로 뚜렷하게 새겨지는 도시

여명과 노을을 구분하는 것이 의미를 잃어버린 도시


작정 없이 나선 산책길에서도 미술관에 들어서게 되는 도시

현대예술이 꿈틀거리며 성장하는 도시

밤이면 재즈바에서 울리는 선율에 안기는 도시

시답잖은 퍼포먼스와 거리예술의 경계가 모호한 도시


뉴요커보다 관광객이 더 많은 도시

지구상에서 물가가 제일 높아 살아가기 팍팍한 도시

다이아몬드의 시세가 결정되는 다이아몬드의 도시

세계 금융의 중심 도시


동서남북 어느 모서리에서나 물과 맞닿아 있는 도시

스스로가 세상의 중심이 된 도시

가로로 난 길 스트리트와 세로로 난 길 애비뉴를 따라

이스트와 웨스트로 토막토막 나눠진 도시

쓰레기통보다 반려동물이 훨씬 많은 도시


홈리스의 당당한 손 벌림이 일상인 도시

사람과 자동차가 뒤엉켜 북적이는 도시

무단횡단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도시

자동차의 소음이 도시의 웅성거림 같은 도시


앰뷸런스의 날타로운 비명소리가

도시의 하품 정도로 들리는 도시

일 년 365일 내내 공사장을 지나야 하는 도시

발바닥 아래에서 덜커덕거리는 진동이 느껴지는 도시

도로 바닥 아래에서 밤안개 같은 증기가 피어오르는 도시


키 큰 건물들이 도로의 양옆을 막아선 도시

하루 종일 콘크리트 그늘 속을 살아가게 만드는 도시

센트럴파크를 도시 중앙에 커다랗게 품은 도시


센트럴 파크 전경(위키미디어).JPG

<센트럴 파크 전경>, 출처: WikiMedia Commons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떠날 수 없는 도시

일단 발을 들이면 벗어나지 못하는 도시


버로우(borough)마다 저마다의 삶과 호흡이 있는 도시

자유의 여신상이 굽어살피는 자유의 도시

감지 않은 머리로 돌아다녀도 부끄러울 일 전혀 없는 도시


세상의 모든 인종이 뒤섞여 저마다의 언어로 떠들어대는 도시

고담시의 음침함이 몸을 웅크리게 만드는 도시

5번가의 화려함이 눈을 멀게 만드는 도시

5번가 전경(위키미디어).JPG

<5번가(5th Avenue) 전경>, 출처: WikiMedia Commons


시애틀보다 스타벅스가 더 흔한 도시

검정색 슈트가 잘 어울리는 도시

일 년 내내 뮤지컬을 즐길 수 있는 도시


사는 게 바쁘니 다른 이에게 신경 둘 일 없는 도시

무엇을 하든 마냥 자유로울 것 같은 도시




여러 해 동안 여행자로 때론 학술 행사의 주관자나 참석자로 유럽과 세계 각 나라들을 돌아다녔다. 얼추 헤아려 보니 아프리카 대륙만 빼고 40여 개국에 발걸음을 찍어 왔다. 짧게는 며칠에서부터 길게는 몇 주라는 시간을 등 가방 둘러메고 돌아다니며 살았으니 엉덩이에 바람 들기 딱 좋은 삶을 살아온 것 같다.

하긴 떠돌아다닌 그 시간들 덕에 지금 이곳 뉴욕을 살아가게 된 것이니 고개라도 까딱거려 감사함을 표해야겠다.


세상을 좀 많이 돌아다녀왔다는 이들은 흔히 미국과 유럽을 비교하곤 한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은, 그 근본이야 같다고 할 수 있지만, 생각하는 방식과 삶의 방식이 전혀 다른 두 개의 대륙일 뿐이다.

비록 미국 사회의 근간이 유럽식 문화와 사고방식에 뿌리를 두고 있긴 하지만 미국이란 나라를 세우고 성장시킨 사람들은 유럽땅에서 살아왔던 그들의 선조들을 넘어선 새로운 것들을 이루고 싶었던 것 같고, 지금도 그것들을 이루어 오고 있다.


미국을 얘기할 때 가장 흔히 범하게 되는 실수는 미국이란 나라를 단지 '하나의 국가'로 보는 것이다. 미국을 하나의 나라로 묶어 얘기하기엔 그 범위가 너무 넓고 주(State)들 각각은 자치적인 법률시스템과 행정시스템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미국에 대해 말할 때면 많은 자치정부로 구성된 하나의 대륙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눈먼 이가 코끼리의 코만 만지고서는 코끼리에 대해 모두 아는 것처럼 떠벌리는 격이 되기 십상이다.


뉴욕은 또 다른 특별한 미국이다. 뉴욕을 알아 가기 위해서는 미국적인 사고방식뿐만이 아니라 뉴욕적인 시야를 가져야 한다. 그중에서도 맨해튼을 중심으로 스스로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뉴요커의 생활터전들은, 그들 식의 또 다른 문화를 영위하면서 저마다의 삶을 만들어 내고 있다.


뉴욕은 세계경제의 중심 도시일 뿐만 아니라 음악과 미술, 문화가 제 알아 짝을 짓고 싹을 틔워 성장하여 결실을 맺어가고 있는 도시이다. 글을 좋아하는 이에겐 핸드폰에 담아 온 작은 한 컷의 사진이 긴 스토리를 주렁주렁 매달게 만드는 수다쟁이의 도시이다.

뿌리가 다른 다양한 사람들의 문화가 잡초처럼 뒤엉켜 자라나 들판과 숲을 이루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도시의 바람이 되어 불어오고 불어 가는 곳이 뉴욕이다.


미국이란 대륙에서 걸어 다니며 거리며 골목을 느낄만한 도시라곤 뉴욕이 거의 유일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사건에 뿌리를 둔 파리나 런던, 빈을 돌아다니는 것과는 달리 뉴욕에서는 근대와 현대문화를 중심으로 눈길을 두어야 한다. 뉴욕은 뉴욕을 그 자체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뉴욕이 되는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미국의 커피, 아메리카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