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Americano)라는 말은 영어에서 미국을 뜻하는 단어인 ‘America’를 말의 뿌리로 삼고 ‘..처럼’이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 접미사 ‘no’가 붙어서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그래서 '아메리카노 커피'(Americano Coffee, Caffè americano)를 단어 그대로 해석하게 되면 ‘미국처럼 마시는 커피’인 셈이다.
이 해석이 아메리카노 커피에 대해 익히 잘 알려져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허술해 보인다. ‘미국처럼’ 마시는 것이 아니라 ‘미국인처럼’ 또는 '미국사람처럼' 마시는 커피를 아메리카노 커피라고 할 수 있으니 조금의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미국인을 뜻하는 단어(추가) ‘American’에 접미사 ‘no’를 붙이면 ‘아메리칸노(Americanno)’가 되고 여기에서 중복되는 철자 n을 하나 생략한 것이 ‘아메리카노(Americano)’라고 바뀐 것이라 보는 것이 적절할 듯하다.
이렇게 탄생한 단어인 아메리카노 커피에는 나름 커피 맛을 좀 안다는 이탈리아인들의, 커피 맛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아 보이는 미국인들에 대한 커피 마시는 방식에 대한 무시가 담겨 있다.
어쨌든 진하게 내린 에스프레소 커피에 뜨거운 물을 부어 희석시켜 마시는 미국인 스타일의 커피가 이제는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으니 더 이상 ‘미국인처럼 마시는 커피’에 대해 ‘커피 맛이라곤 개뿔도 모르는 무식한 미국인들이나 마시는 커피’라고 얕잡아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미국인처럼 마시는 커피는 그 뿌리에서부터 철저히 대중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사실은 대중성보다는 서민성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초기의 이민자들은 차(Tea) 마시기를 무척 좋아했었다고 한다. 유럽의 차 문화를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정치와 경제적인 이유로 차(특히 홍차)의 가격이 비싸지자 그것을 대신할 수 있을만한 것을 찾아야만 했고 이때 그 자리에 들어선 것이 바로 커피이다. 하긴 진하게 내린 커피에 뜨거운 물을 부어 양을 늘리면 색이나 느낌이 홍차를 우려낸 것과 얼핏 비슷해 보이기는 한다.
커피 원두를 거의 검어질 때까지 불에 볶는 미국식 다크 로스팅 스타일 또한 이렇게 경제적인 이유에서 시작된 것이다. 유럽 땅에서는 서로 인연 없이 살던 홍차 가문과 커피 가문이 미국이라는 신세계에 넘어와서 대충 뒤섞여 살아가게 된 셈이다.
그렇게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행하던 커피 취향이 유럽으로 건너가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들에 의해서이다. 당시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들은 유럽인들이 마시던 에스프레소 커피에 뜨거운 물을 부어 희석하면 미국 본토에서 마시던 커피와 비슷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것이 오늘날의 아메리카노 커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유럽에서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넘어갔던 커피가 다시 유럽으로 돌아오면서 ‘미국인처럼 마시는 커피’로 스타일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미국인의 커피는 영국식 티타임의 편안함이나 우아함과는 원래부터 거리가 멀었다. 미국인의 커피는 다크 로스팅 된 원두를 아주 미세하게 갈아두었다가 뜨거운 물을 부어 대충 내려서 자신의 입맛만큼 커다란 컵에 채워서 한 손으로 들고 다니면서 마시는 가장 서민적인 음료이다. 그런 면에서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치 걸레 빤 물 같다고 혹평했던 유럽인들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아무튼 그 유래를 알게 되면 미국식 커피에서 뭔가 의미를 부여할 만한 특별한 맛이나 향을 찾으려는 시도 따위는 한낱 부질없는 짓임을 알게 된다. 길거리의 허름한 델리 선반에 놓인 색 바랜 보온 통에 담겨 있는 것을 한 손으로 찍찍 눌러 종이컵에 가득 채운 쓰고 검고 양 많고 뜨거운 음료가 가장 미국인적인 커피인 것이다.
뉴욕의 거리에서는 덩치 커다란 멍멍이도 커피 한 잔을 입에 물고 돌아다닐 것만 같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