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정원 플로렌스를 걸어 다니는 발걸음에서는 행복이 묻어날 것만 같다.
플로렌스의 돌길을 걷다 보면 토스카나의 들판에서 불어 온 바람을 만날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상상에 빠진 지금이 플로렌스의 추억에 진정성을 입혀야 때이다.
그래야만 한 겹의 낭만이라도 더 이 자리에 새겨둘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자신의 주관을 객관이라 우기는, 앞뒤 어긋난 억지가 일상화된 곳이기에 객관적인 것을 구분하려는 노력 따위는 할 이유가 없다.
낭만에 있어서라면, 더욱이 여행에서의 낭만에 있어서라면 더 주관적이 된다고 해도 괜찮다.
‘낭만은 오직 나만의 것’이라는 이기심에 휩싸인다고 해도 탓할 이 누구도 없다.
듬뿍 채색하고 마음껏 꾸민다고 해서 원망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만지작거리지 못한 것들이 행여 남겨지더라도 낭만이라는 얇은 천 한 겹을 그 위에 살짝 내려놓으면 된다.
그래야만 시간 지난 언젠가의 그때에도 이 아름다운 플로렌스가 ‘너무 먼 그대’로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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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렌스의 돌길을 걷는다.
플로렌스의 돌무더기가 잉태하고 성장시킨 낭만의 정원을 돌아다닌다.
가장자리 한편에서 발견한 여백에 몸을 웅크려 넣는다.
삶의 여백이란 것이, 아무리 작더라도 알고 보면, 버려진 것들이 숨어 지내는 곳일 수 있다는 생각에, 고개가 떨구어진다.
인기척에 깨어난 불빛 한줄기가 이곳을 비춘다.
덮으려고 하지만, 찢어진 조각들이 순서 없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어, 행여 더 흉물스러워질까 봐 멈칫 손을 움츠린다.
덮고 싶은 것들만 골라 덮고 나니 틈새로 고개 내민 골이 더 깊고 어둡게 느껴진다.
그래도 걸음은 계속되어야 한다.
찢어 흐트러진 삶의 조각들을 퍼즐처럼 맞추며 길을 걷는다.
제 모습 찾는 날이 올 수 있을지, 그날이 온다 해도 그것이 온전한 모양일지, 알 수 없다.
혼란스러움과 궁금증 속에서 ‘그래도 플로렌스에서라면’, 기대를 안고 길을 걸어간다.
플로렌스는 물안개 자욱하게 낀 아침 호수 같아서 신비롭기까지 하다.
르네상스의 정원, 낭만의 정원에서 살아가는 지혜를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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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와 플로렌스, 너를 부르는 규칙을 정해야만 하겠다.
낭만을 찾으려는 나는 너를 플로렌스라 부르고, 인문과 예술, 르네상스와 역사를 좇으려는 나는 너를 피렌체라 부르기로 한다.
피렌체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더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작은 메아리조차 허락하질 않으니 알 길은 없다.
하지만 피렌체의 거리에서 만나는 꽃 한 송이에도 너는 플로랄한 옷으로 갈아입은 플로렌스가 된다.
아무래도 괜찮다.
혼동 속에 섞여 부르는 이름조차도 결코 너의 아름다움을 줄일 수는 없다.
피렌체 또는 플로렌스라는 지명은 단지 ‘꽃이 많은 도시’라서 붙여진 것이 아니라 ‘르네상스라는 문화의 꽃을 피운 도시’라는 의미를 품은 것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플로렌스는 이제, ‘꽃보다 더 아름다운 피렌체’로 가슴에 자리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