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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의 마을 피렌체

피노키오의 마을 피렌체


피렌체의 거리에서 그 아이를 만난 것은, 작은 낌새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아주 우연한 일이었다. 언젠가 지나친 적은 있었겠지만, 아마도 그때는 의미 없는 기념품 정도로만 여겼었기에 별달리 눈길을 주어야 할 의미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 아이가 피린체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분명하게 알아차리게 되었다. 


사실 피렌체를 돌아다니다 보면 조금 자주 눈에 띄기는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자주’는 단지 여타의 관광지에서보다 ‘조금 더 흔하게’라는 의미일 뿐, 피렌체 곳곳마다에서 늘 그 아이를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그 아이를 부르는 이름은 <피노키오>(이탈리아어:Pinocchio)이다.    


피렌체의 쇼윈도 안을 장식하고 있는 피노키오     


그날은 미켈란젤로 광장에 올라 피렌체를 붉게 물들이는 저녁노을과 어둠에 잠겨버린 피렌체의 밤풍경을 감상하고 숙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유럽의 구도심 골목길이란 게 가끔은 길을 잃기 마련이라서 가로등 없는 짙은 어둠 속을 걸어가고 있었다. 


좁은 골목의 모퉁이에서 붉고 노란 불빛을 밝히고 있는 기념품 가게의 쇼윈도 앞을 지나가다가 무엇인가에 이끌려 가게의 문 안으로 들어섰다. 가게의 문을 밀고 들어가 바로 앞에서 그 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는 쇼윈도 바로 앞과 가게 안 선반 위에 가지런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 며칠 동안 이미 몇 번은 만났을 것 같은데,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때마다 그냥 지나치기만 했을 뿐 눈인사조차 나누질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아이가 왜 여기에 있지?". 하긴 손재주 좋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피렌체 사람들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프라하의 마리오네트 인형이 그러하듯 피렌체의 지역특산품이겠지, 생각했다. 부끄럽지만 당시 내가 가졌던 지식의 범주로 인해 그 순간에 일어난 물음과 그에 대한 대답은 그 정도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어떤 물음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나보다 십 년 이상은 연식을 더 먹었을 되었을 것 같이 보이는 가게의 주인장이 그 물음에 대해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 


피노키오의 작가 <카를로 로렌치니>(Carlo Lorenzini, 1826년 11월 24일 - 1890년 10월 26일, 필명은 <카를로 콜로디>((Carlo Collodi)가 이곳 피렌체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답변이었다. 그는 또한 작가 카를로 로렌치니가 토스카나 출신이지만 실제 <시에나>와 같은 토스카나의 다른 도시들에서는 피노키오를 만나기 어렵다는 설명과, 피노키오만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가게가 피렌체에만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있는 또 다른 가게의 주인장에게서도 동일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피렌체가 토스카나 지방의 주도이니 카를로 로렌치니의 출신에 대해, 광의로는 토스카나라고 할 수 있고 협의로는 피렌체라고 할 수 있게 된다. 어쨌거나 그날부터 피노키오는 피렌체를 떠올리게 하는 감상적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피노키오 인형이 달려 있는 열쇠고리가 나의 백팩 표면세서 흔들거리며 가게 밖으로 나섰다. 피노키오는 르네상스의 거장들 속에 숨어 있는 ‘피렌체의 마스코트’라고 여겨도 좋을 것이다.    

       

엔리코 마잔티의 오리지널 아트 (출처: 위키백과)

     

르네상스를 더듬으며 찾아간 피렌체에서 우연히 만난 나무아이 피노키오, 유난히 코가 긴 아이와 조금 덜 긴 아이는, 외진 골목 어귀에서 유난히 밝은 조명을 뿜어내고 있는 가게의 문을 밀고 밤의 거리로 나온다. 돌길과 돌벽의 수직이 만나 이루어진 피렌체의 각진 골목길에서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이들의 코와 코에 자꾸 시선이 간다. 궁금해진다. 

“저 사람의 마음의 코는 어떨까.”

      

이방인으로 이곳을 돌아다니고 있는 나 같은 사람들과, 집을 찾아가고 있는 현지인들, 피렌체가 인퓨전된 저마다의 삶이 어두운 골목길에 그림자를 더해 넣는다. 피렌체의 밤바람이 차갑다. 쇼윈도에 비친 나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메마른 얼굴에서 '나무아이 피노키오'보다 줄에 매달려 비걱거리는 ‘사람인형 마리오네트'가 연상된다.       


숙소로 돌아와서 커피를 내린다. 손으로 커피잔의 온기를 더듬는 것은 끊을 수 없는 중독이다. 그래도 괜찮다. 이럭저럭 지금까지 잘 살아가고 있으니. 한국에서 실어온 음악을 틀고서는 나른해진 몸을 침대 위에 누인다. 한참을 뒤척거리다가 오늘이 담겨 있는 이미지들을 만지작거린다. 


기계상자 안에 갇혀 있는 피노키오는 어딘지 어색하다. 금방이라도 튀어나와 호텔 방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어지럽힐 것만 같다. 나무아이 피노키오는 자유 의지를 따라 살아가고 있지만 현실에서의 인간은 몇 가닥 줄에 매달린 사람인형과도 같아서 스스로를 구속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누군가 물어 온다. 뭐라고 답해야 하나, 이럴 때면 그 아이가 일으키는 소동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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