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종소리

피렌체의 종소리


여행길에서 얻게 되는 '그것'은 책이나 매체를 통해 알게 되는 그것과는 결이 다르다.

그것을 단지 ‘지식’이라는 범주 안에 국한시키자니 지나친 ‘일반화’의 우를 범할 것 같아 조심스럽고, ‘지혜’라는 단어로 담으려니 정제된 정도와 시간의 숙성이 부족한 감이 있어 그냥 '그것'이라는 이름으로 남겨두기로 하였다.


어쨌거나 여행길에서 얻게 되는 ‘그것’은 지식과 지혜의 경계 즈음에서 서성이면서, 막연한 것을 향한 갈망에 시달리게 한다든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뒤적거리게 만든다든지,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하는 것과 같은 식으로 자기 나름대로의 생존방식을 행사하고 있다.


살아가는 것은 '혼자만의 여행길을 걸어가는 것'이란 걸, 현명한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리 현명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이미 알고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활자에 박혀 있는 그것에게 보다는 여행길에서 느끼고 호흡하는 ‘그것’에게 더 끌림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번 피렌체 여행길에서 마주한 그것 중에는 <종>(Bell)이라는 이름의 그것이 있다.

이탈리아처럼 중세의 흔적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는 곳에선 <가톨릭교회>라고 불리는 오래된 성당이, 손을 닿아 느낄 수 있는 그것 중에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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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눈 여겨 주변을 살펴보면 이곳에서는 오래된 성당이 우리네의 시골에 있는 마을회관만큼이나 흔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 성당의 가장 높은 곳에는 거룩한 십자가가 하늘을 향해 솟아 있고 그 아래에는 금속을 녹여 만든 단단한 종이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인간의 삶을 향해 입을 벌린 채로 허공에 매달려 있다.

가만히 서서 그것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인간이 지은 죄만큼이나 깊고 무거운 통곡이 동해바다의 검은 밤 물살처럼 밀려드는 것 같은 먹먹한 주술에 걸려드는 것만 같다.


마치 자기가 터줏대감인 양 마을을 지키고 서있었던 성당들만큼이나 무수한 종들이 나의 곁을 지나쳐 갔을 것이다.

하지만 무딘 감각 때문인지 지금의 피렌체에 와서야 종이라는 그것이 그때의 그곳에 존재했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의 이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뚜렷이 각인시키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피렌체의 종소리


돌아보니

지나간 그것이 바로 종이었다

어째서 그것의 울림을

듣지 못하였을까

여태껏 귀뿐만이 아니라

가슴조차 닫혀 있었기 때문일까


이것조차

지금의 종소리가 알게 하였으니

돌아보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고개를 돌려야만 하는 것이

삶이란 말인가


이곳에서는 종을, 집과 집이 연결된 골목의 어귀나 마을 광장의 가장자리에 있는 오래된 성당의 종탑 아래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종은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있는 높은 곳에 있지만 하늘이 아닌 인간을 향해서만 입을 여는 겸손함을 잃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종은 때맞추어 일으키는 공기의 진동을 통해 ‘인간의 회개’를 지도한다.

인간은 공기를 호흡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기에 종탑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은 종이 일으키는 공기의 진동을 들이켜야만 살아갈 수 없다.

피렌체의 종소리는 호흡을 통해 인간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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