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과 미술관 그리고 갤러리는 ‘예술작품의 소장과 전시’라는 비슷한 기능을 담당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막상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면 어딘가 다른 부분이 있는 것도 같아 예술애호가들조차 머뭇거리게 된다.
아래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박물관과 미술관, 갤러리는 하나의 개념에 근원을 두고 있지만 시대적 문화적인 영향으로 인해 다른 용어처럼 사용하게 된 ‘호모아르스적인 용어’들이다.
이 용어들을 고찰하다가 보면, 예술은 뿌리가 같다고 해서 동일한 꽃잎을 피우는, 일상적인 활동이나 현상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뮤지엄’(Museum)이란 영어단어는 한국어에서 ‘미술관’ 또는 ‘박물관’으로 번역되고 있다.
뮤지엄에서 소장 및 전시하고 있는 작품이 회화(미술) 작품을 위주로 하는 경우는 주로 ‘미술관’이란 이름을 사용하고 있고, 회화작품 이외에도 다른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을 소장 전시하는 경우에는 ‘박물관’이란 이름이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뉴욕 맨해튼의 중심에 있는 <MoMA>(<모마>, The Museum of Modern ART)의 경우에는 <뉴욕현대미술관>이란 명칭이 대표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The MET>(<더맽>),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은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란 명칭이 혼용되고 있다.
이는 <모마>의 경우 전시작품의 많은 부분이 회화작품이기 때문에 ‘미술관’이란 명칭이, <더맽>의 경우에는 회화작품 이외에도 이집트문명과 고대 그리스문명의 건축작품, 회화작품, 조각작품 등이 함께 전시되고 있기 때문에 ‘박물관’(博物館)이란 명칭이 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식의 번역이 이루어진 것에 대한 근거는 다음과 같이 박물관, 미술관, 뮤지엄에 대한 사전적 정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박물관은 넓을 박(博), 만물 물(物) 자를 써서 ‘세상의 다양한 만물을 두루 소장하고 전시하는 시설’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사전적 의미에서 박물관은 고고학적인 자료, 역사적인 유물, 예술품, 그 밖의 학술적인 자료를 수집하고 보존, 진열하여 일반대중에게 전시함으로써 학술연구 및 사회에 기여할 목적으로 만든 시설을 의미한다. 미술박물관, 민속박물관, 역사박물관, 과학박물관 등과 같이 특정한 목적을 위한 전문박물관들이 이에 속한다. 미술박물관을 줄여서 부르는 것이 '미술관'이다.
미술관은 박물관의 한 종류로서 주로 미술작품을 수집, 보존, 전시하는 전문적인 시설을 말한다. 회화ㆍ조각ㆍ공예ㆍ건축ㆍ사진 등과 같은 미술작품과 이에 관련된 자료에 관한 특수목적의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대개의 경우 박물관보다 규모가 작기 때문에 특정한 예술사조나, 작가집단 등에 대한 집중성과 전문성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사전적 의미에서의 뮤지엄은 '그림이나 조각품, 과학적 유물 또는 역사적 유물과 같이 흥미롭고 가치 있는 것들을 수집하여 일반대중이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하는 공간 또는 건물'을 말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영어사전에서는 museum은 박물관으로 번역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전적으로 본다면 뮤지엄이 곧 박물관이지만 실제 사용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근래에 들어서는 예술작품들을 소장하고 전시하는 공간에 대해서는, 기존에는 박물관이란 명칭을 사용하였다고 하더라도 뮤지엄이란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란 명칭이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란 명칭을 대신하는 것에서 그러한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museum: A building in which interesting and valuable things (such as paintings and sculptures or scientific or historical objects) are collected and shown to the public.
하지만 이런 식의 용어 사용에 대해 정해진 기준과 체계가 분명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를 지나고 해방과 전쟁을 거치면서 현대식 학문과 예술이 태동하는 과정에서, 초창기 학자들과 예술가들이 가졌던 시대적 문화적 혼동이 이러한 번역을 낳았고 그것들이 현재까지 이어져 온 것에서 모종의 영향이 있었을 것임을 감지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미술관과 박물과, 뮤지엄이란 용어를 어떤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영영사전과 한국어사전에서 보는 것처럼 뮤지엄이란 단어에는 미술관, 예술관, 박물관, 갤러리와 같이 예술작품을 소장 전시하고 연구하는 다양한 기능이 포괄적으로 포함된다.
따라서 ‘뮤지엄’을 굳이 미술관이나 박물관과 같이 번역된 용어를 사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실 미술관과 박물관은 '회랑'이라는 용어처럼 한자어 표기에서 온 것이라는 점에서 뮤지엄을 외래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 이들의 주장이 옳은 것인지는 의문이다.
뉴욕 맨해튼 5번가의 <뮤지엄마일>(Museum Mile)은 <박물관마일>이나 <미술관마일>과 같이 번역하지는 않는다.
Museum Mile은 그냥 <뮤지엄마일>이라고만 불린다.
그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그것은 <뮤지엄마일>이란 명칭이 뉴욕에서도 1970년대부터 사용되었고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그 이후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예술과 문화에 대한 이해력이 상당히 성숙된 이후에 <뮤지엄마일>이란 명칭이 국내에 들어왔다는 시대적인 배경이 이것에 작용한 것이다.
만약 1960년대나 그 이전에 <Museum Mile>을 번역했다면 <박물관마일> 또는 <박물관 길(거리>), <미술관마일>나 <미술관 길(거리)>라는 명칭을 지금의 우리가 사용할 수 있다.
영어에서의 <뮤지엄>(Museum)을 주로 ‘박물관’으로 번역하는 것은 뮤지엄의 주된 기능이 예술작품 이외에도 각종 유물과 같은 ‘가치와 의미를 가진’ 다양한 물건들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뮤지엄과 달리 <갤러리>(Gallery)는 주된 기능이 예술작품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갤러리는 'Art Gallery'라는 의미에서 <미술관>으로 소개되거나 <갤러리>라는 용어를 그냥 사용하고 있다.
프랑스어에서는 ‘musée’가 박물관이나 미술관과 같이 비상업적 목적으로 운영되는 공공전시기관을 뜻하며, ‘galerie’는 주로 상업적인 목적으로 운영되는 화랑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림과 같은 예술작품들을 진열하기 위해 만든 방’을 의미하는 화랑(畫廊)은 뮤지엄의 한 형태로 국내의 경우 그림을 수집하여 판매하는 화상(畫商)이 화랑을 겸하면서 소규모로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이러한 접근 관점에 대해 전적으로 타당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개념적으로 어느 정도는 포용성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의 개념적 구분에서는 박물관과 미술관, 갤러리의 차이를 소장 및 전시작품에 대한 매매 가능성에 둘 수 있다.
박물관 또는 미술관은 공공적 성격을 갖기 때문에 소장 작품이 상업적인 목적에서의 매매 대상이 되지는 않지만 갤러리는 소장작품을 그와는 달리 상업적 목적에서의 매매 대상이 될 수 있다.
또한 국내에서는 규모에 따라서 뮤지엄의 명칭을 구분하기도 한다.
규모가 작은 경우에는 갤러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좀 더 큰 경우에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뮤지엄과 갤러리를 작품에 관련된 성격이 아닌 규모로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다.
런던의 중심부인 트라팔가에 위치한 <런던 내셔널갤러리>(The National Gallery)는 규모나 상업적 목적을 기준으로 갤러리와 뮤지엄이란 명칭을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1824년에 문을 연 <런던 내셔널 갤러리>는 영국 최초의 국립미술관이며 약 2,300여 점에 달하는 소장작품의 약 3분의 2가 개인 컬렉터들에게서 기증받은 것들이라고 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초기작품에서부터 초기 플랑드르 미술(Flemish Art) 작품들과 같은 서유럽 회화작품들을 주로 소장하고 있는 <런던 내셔널갤러리>의 소유주는 영국 국민이다.
따라서 소장작품들 또한 영국 국민의 소유이며 어떠한 상업적 목적을 가지지 않았으며 입장료 또한 받지 않는 갤러리이다.
('뮤지엄과 살롱: 어원적 접근'이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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