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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전기: 로마의 무명화가 카라바조

카라바조 전기: 로마의 무명화가 카라바조


카라바조의 실력이 제아무리 탁월했다고는 하지만 로마는 결코 호락호락한 도시가 아니었다.

이제 갓 첫 발을 디딘 스물한 살의 청년 카라바조를 메트로폴리탄 로마는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카라바조는 적잖이 당황했다.

화가로서 자신의 실력이라면 로마의 모든 시민들이 두 손 벌려 환영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예술에 대한 안목을 가진 로마의 지성인이라면 금세 그것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고, 하루아침에야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리 늦지는 않게 로마의 기성 화단 또한 자신을 인정할 것이라고 자신했었다.

왜냐하면 카리바조가 서 있는 그곳이 세상의 중심이자 예술의 도시 로마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카라바조가 맞이한 로마에서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예술에서뿐만이 아니라 일상에 있어서도 카라바조는 모든 것들이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그저 바라보는 것 밖에는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다.


처음 몇 년간 로마는 카라바조의 마음뿐만이 아니라 몸까지도 피폐하게 만들었다.

일상에서도 그렇지만 화가로서의 삶에서도 아무런 희망을 찾을 수 없는 하루하루가 의미를 잃은 채로 그냥 지나가고 있었다.

유일한 낙이라고는 적을 걸치고 있는 화실(또는 사제 판돌프의 사택)에서 요구하는 캐비닛 그림 같은 소품을 가끔이나마 그리는 것과, 로마의 저잣거리를 기웃거리며 하릴없이 돌아다니는 것 정도였다.


성인인 된 카라바조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로마에 도착한 초입기 몇 년 동안이, 공식적인 기록에서는 아무런 말썽에 연루되지 않은 거의 유일한 시기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머니가 비어 있었으니 하루 종일 돌아다녀 본들 말썽이 일어날 만한 일에 끼어들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본인 스스로야 자신이 뛰어난 화가라는 자부심에 차 있었겠지만 해서 다니는 꼬락서니는 영락없는 빈털터리 무명 화가의 행색에 지나지 않았을 테니, 그 시기의 카라바조로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평범(?)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을 것이다.

볼 만한 것, 참견할 만한 것들이 즐비하게 늘려 있는 로마의 저잣거리는 밀라노의 그곳보다 더 신기한 장소였다.

그래서 그것들 사이로 기웃기웃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심심할 틈은 크게 없었을 것이다.


피 끓는 이십 대 초반의 카라바조에게 그런 것들조차 없었다면, 그런 것들에게서 위안을 받을 수 없었다면, 한 해 아니 한 달이라는 시간을 보내는 것조차 늘어진 시계의 바늘이 돌아가는 것처럼 너무 느리기만 하고 무척 힘들게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그 시간은 로마가 아니었다면 결코 누리지 못했을, 성공을 향한 열망 속에서 잠시 맞이한 여유의 시간이었다.

메트로폴리탄이란 곳은 지금도 그렇지만, 카라바조가 살았던 당시에도 사람을 끌어당기고, 그곳에 일단 발을 담그고 나면, 설사 아무리 궁핍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고 해도 결코 쉽게 그곳을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간교하기 짝이 없는 사술을 부리는 흑마법의 공간임에 분명하다.


카라바조는 이런 현실에서의 생활 속에서도 자신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뛰어난 화가라는 사실과, 자신이 로마에 온 것은 화가로서 크게 성공하기 위한 것이며, 또한 자신의 손으로 그린 그림들을 언젠가는 로마의 주요 교회들과 교황청의 벽면에 걸고야 말겠다는 초심을 결코 잊지 않았다.


자신이 처한 현실이 당장에는 어려웠지만 카라바조의 가슴에는 희망의 불꽃이 계속해서 타올랐다.

그림에 있어서만큼은 자신이 최고라고 믿었으며 사실 최고였다.


아무리 주변을 두리번거려 봐도 몸을 눕혀 쉴 집도,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도, 반겨줄 일가친척도, 아무것도 없었다.

화가로서의 실력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가진 것이 없었고, 거기에 돌아갈 곳조차 없었기에 카라바조에게 로마는 그야말로 ‘배수(背水)의 진(陣)’이나 다를 바 없었다.

카라바조는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고 또 걸었다.


“더 이상은 물러설 곳이 없다. 그날이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에는 교황청 또한 나의 실력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분명 그렇게 될 것이란 걸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든 그렇게 만들고야 말 테니까. 그날이 되면 교황청의 벽면에 내가 그린 그림이 걸리게 될 것이다. 내가 바로 카라바조이다. 느낄 수 있다, 그날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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