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의 어느 날 혼자서 나선 여행길에서의 일이었어
이것저것 배낭 대충 꾸려 나선 그 길에서
아직 쌀쌀한 겐지, 벌써 쌀쌀해진 겐지 알 수 없는 검은 밤의 며칠을
바람 스산한 화왕산의 정상 구릉에서
마른 갈대 울음을 밤 친구 노래 삼아 길게 세우고 있었고
하늘 가까운 산정 머리 위에서
수줍게 망울 벌린 작은 꽃송이 같이 반짝이는
별들의 눈망울이 왜 그리 시리도록 슬펐는지
감청의 너른 바다 같은 밤하늘에서는
별빛과 바람이 뱅글뱅글 똬리를 틀며 맴돌고 있었지
손 뻗으면 노란 별빛이 영혼까지 물들일 것 같고
밤 구름이 가린 별무리에선
눈물방울 또로록 떨어져 내릴 것 같고
밤바람에 씻긴 말간 반짝임에선
옹달샘의 찰랑거림마저 들리는 것 같았어
그러다가 문득 하나가
알아차리기 어려울 만큼이나 짧은 찰나에
불쑥 무리를 벗어난 거야
잠시나마 인간의 땅을 향하던 그 별은
방향을 바꾸어 허공 너머로 사려져 갔어
아마 그 하나는 유성이 되었을 거야
머물 곳을 찾아 무량의 시간을 떠돌아야만 할 운명을
어쩔 수 없다는 듯 받아들이기로 한 거지
그 반짝이는 여린 몸뚱이로
길고 고단한 유랑의 길을 어찌 감당하려고
혼자서만 떨어져 나간 건지
안쓰러운 마음에 눈을 뗄 수 없었어
하긴 그날, 바위산 정상 갈대숲에서
텐트 한 겹으로 겨우 몸을 기댄 나나
밤바람에 부르르 떨고 있던 그 별이나
사정 다를 것 별반 없긴 해
그런데 말이야
별이 진다고 해서 별똥별이 되는 건 아니야
어떤 별은 감청의 하늘 너머로 아득하게 사라져 갈 뿐이야
그게 그냥 유성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거야
그 유성은 언젠가, 먼 뒷날의 언젠가 그 자리에
텐트 치고 기다릴 한 사내를 다시 찾을 거라는
차갑고 슬픈 언약을 그날 남겼어
그래서 그 사내는 아직 그곳에서 서성이는 게야
밤이 되면 검고 가마득한 하늘을 올라다 보면서
벗어날 수 없는 슬픈 언약을
그게 운명이라는 듯 지키고 있는 거야
언젠가 다시 만나는 날에는
사내도 그 별도 별똥별이 될 거야
그때서야 비로소 그 별은
사내의 가슴에 내려앉게 되는 거야
하지만 어쩌지, 행여 그날
길었던 기다림보다 더 슬퍼지면 어떡하지
The Starry Night, Van Gogh, June 1889.
MoMA(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산 능선이며 산 정상 어느 곳에서나 텐트를 퍼지를 수 있었고, 당시에는 불법이 아니었기에, 산길마다 사람 붐비는 일 따윈 없었던, 벨 에포크(Belle Époque, 좋은 시절, 아름다운 시절)라는 이름을 붙여 파리지앵 흉내를 내더라도 부족함 하나 없는 꿈과도 같은 시절이, 누구나처럼 나에게도 있었다. 겨울이 한창일 때만 아니라면, 봄과 여름, 가을과 이른 겨울 늦겨울 할 것 없이, 지리산이며 한라산, 소백산이며 오대산 같은 높고 큰 산들을 혼자서 돌아다녔다.
먹을 것이라곤 라면 몇 봉지와 사탕 한 봉지 정도만 챙길 뿐이었지만, 밤이슬을 가릴 텐트며 밤 산의 추위를 견디게 해 줄 군용 모포와, 며칠간 마실 수돗물과 청동으로 제작된 석유 버너와, 그 몸뚱이를 채울 석유와 분사 노즐을 가열하는 알코올과, 밤의 어둠을 밝힐 렌턴과 렌턴용 대형 건전지와, 화장실 구덩이를 팔 접이식 삽과 스피커 달린 워커맨과 워크맨용 소형 건전지까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들을 배낭 속에 어찌어찌 구겨 넣는 일을 계절마다 즐겁게 반복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찌 그 무겁고 많은 짐을 짊어지고 산을 올랐는가 싶긴 하지만 당시에는 무겁다거나 힘들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나도 젊고 산도 젊고, 하늘도 젊고 구름도 젊고, 나무도 젊고 바위도 젊고, 계절과 상관없이 ‘늘 푸른 바람’이 귓불을 간지럽히며 농을 걸어오던, 시간마저 젊었으니 그 시절이 나에게는 분명 벨 에포크였다.
산을 오른 것은, 산길 걷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밤이 내린 산 능선이나 정상에서 고개 들어 올려다보는 별빛에게 흠뻑 빠졌기 때문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늘이 탁 트인 외진 곳을 찾아 하룻밤 지새울 거처를 마련해야만 했다. 가리는 것 하나 없이 맞이했던 밤하늘의 그 별들은 지금도 망막 위에서 맴돌고 있다. MoMA(모마, 뉴욕현대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반고흐의 <The Starry Night>을 자꾸 찾게 되는 것은 아마도, 분명 그 시절에 새겨 넣은 망막의 추억 때문일 수 있다.
어떤 추억은 원래부터 아름다웠던 것이 아니라 왜곡과 채색을 통해 아름다워진 것이란 걸, 언젠가 지나가던 세월이 책임질 일 없다는 듯 무심하게 툭 말해주었다. 하지만 어떤 추억은, 기억하려는 이가 그것에 갇혀 지내도록, 그래서 행복해지도록 스스로가 아름다워지기도 한다.
그날 그 능선에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온 밤을 오롯이 지새운 날들은 추억이란 이름으로 때맞춰 날숨과 들숨을 들이켜고 내뱉고 있다. 그럴 때마다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보면 '추억한다는 것'이 그리 좋은 일인 것만은 아닐 수 있다. 나이 든 사내의 눈물은 세월 때문이 아니라 추억 때문이라고, 핑곗거리 하나 더 만들어 붙여도 행여 부끄러울 일은 없겠다. 다행이다, 그래도 가슴 적시는 추억이 있으니 결코 외로워지지는 않을 것 같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