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나폴레옹 3세의 꿈 또는 오스만의 작업

꿈과 작업 사이에 흐르는 인문학적 긴장의 미학

파리: 나폴레옹 3세의 꿈 또는 오스만의 작업

- 꿈과 작업 사이에 흐르는 인문학적 긴장의 미학


곧게 뻗은 직선 위에 내려앉은 웅장한 대로, 높이를 맞춘 우윳빛 석조 건물, 거리를 장식하는 가로등과 같은 파리의 낭만적인 이미지는 '시간이 빚은 자연적인 산물'이 아니라 19세기 중반 한 황제의 원대한 꿈과 야망에, 한 행정가의 광적인 추진력이 탄생시킨 '인공적인 노력의 산물'이다.


파리가, 낡고 병든 중세의 허물을 벗겨내고 '아름답고 낭만적인 도시'의 모습을 갖게 된 것은 나폴레옹 3세 황제와 조르주 외젠 오스만(Georges-Eugène Haussmann, 1809–1891) 남작(이하 오스만 (남작))의 협작 파리 대개조 사업(1853-1870, Haussmann's Renovation of Paris) 덕분(때문?)이다.


19세기가 갓 중반을 넘어선 1853년, 나폴레옹 3세의 지시와 전폭적인 지지로 막이 오른 '파리 대개조 사업'은 파리의 지도를 완전히 새롭게 그려 넣은 도시 계획으로, 지금껏 인류가 행한 수많은 도시 인프라 개조(개선) 사업 중에서 가장 대담하면서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낸 '도시 계획의 수작'으로 꼽힌다.


'새로운 파리'를 탄생시킨 이 사업은 나폴레옹 3세가 황제로 즉위한 바로 다음 해인 1853년부터 그가 실각한 해인 1870년까지 약 17년에 걸쳐 시행된 국가적 규모의 프로젝트였으며 사업의 발주와 총괄 기획은 나폴레옹 3세가, 구체적인 콘셉트를 설계하고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일은 오스만이 담당하였다.



황제의 꿈: 중세의 허물을 벗기다

파리 대개조 사업이 시행되기 전까지 파리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좁고 불결한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 있고,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이 언제든 창궐할 수 있는 열악한 위생에, 혁명 때마다 바리케이드가 놓이는 구불한 거리가 뒤엉켜 있는 '중세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덩치만 커져 버린 불안정한 도시'였다.


이런 파리는 나폴레옹 3세에게 풀고 싶은 거대한 숙제였다.

런던 망명 시절, 근대화된 도시의 효율성과 편리함을 눈으로 보고 직접 경험했던 그는 파리를 '세계의 수도'로 재탄생시키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었다.


그의 꿈은 편리함과 위생을 바탕으로 한 미적인 개선만이 아니라, 권력의 효율적인 통제와 자본의 흐름을 가속화하려는 전략적인 것이었다.

새로운 파리의 필요성은 그 이전부터 이미 있어왔지만 단지 책상머리에서나 그려볼 수 있는 불가능한 꿈으로만 치부될 뿐이었다.

하지만 나폴레옹 3세는 달랐다. 그는 새로운 파리의 꿈을 현실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오스만은 그 꿈을 현실의 세계에 안착시켰다.

그래서 이 사업의 또 다른 이름이 '나폴레옹 3세의 꿈'이자 '오스만의 작업'(Travaux Haussmanniens)인 것이다.



꿈의 이면: 정치적 고뇌와 불안

나폴레옹 3세의 꿈의 이면에는 깊은 정치적 고뇌와 불안이 똬리를 틀고 있다.

위대한 나폴레옹 1세의 조카라는 혈통적 배경은 그를 지켜주는 방패막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정통성을 증명하게 만드는 그늘이기도 했다.

또한 파리 시민들의 잦은 폭동과 혁명은 공포 그 자체였다.


// 17세기와 18세기에 일어난 주요 폭동과 혁명:

프랑스와 17세기와 18세기는 '폭동과 혁명의 시기'였다. 17세기 중반에 귀족과 민중의 왕권에 대한 저항으로 일어난 프롱드의 난(1648년-1653년), 18세기 중후반에 일어난 지방 전쟁(Guerre des Farines, 1775년), 혁명의 전야제라 할 수 있는 레베용 폭동(1789년 4월), 그리고 결정적으로 프랑스 대혁명(French Revolution, 1789년 5월 5일~1799년 11월 9일)이 이 시기에 있었다. //


파리의 길을 넓혀 대로를 만드는 일은 표면적으로는 위생과 미관을 위한 것이었으나, 폭동군의 바리케이드를 약화시키면서 정규군의 대포가 진격할 수 있게 하는 '통치의 효율성'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아름다운 파리를 향한 황제의 꿈 이면에는 권력을 지키려는 고민이 자리를 잡고 있다.



오스만의 작업: 살해당한 중세의 낭만 위에 피어난 파리의 미학

황제의 꿈을 현실로 옮긴 인물은 조르주 외젠 오스만 남작이다.

파리는 긴 시간이 만들어 낸 유서 깊은 유기체였지만 그의 눈에는 수술이 필요한 중증 환자였을 뿐이었다.

그는 '도시의 외과의사'를 자처하며 팔과 다리, 머리와 몸통을 포함한 파리의 전신에 칼을 대었다.

수만 채의 중세 가옥을 철거한 자리에 거침없이 흐르는 직선의 대동맥(Grands Boulevards)을 뚫었다.


'오스만의 작업'(Travaux Haussmanniens)은 가혹하였다.

수많은 서민의 삶의 터전들과 역사적 흔적들이 파괴되어 사라졌다.

오스만의 작업은 일반 시민들뿐만이 아니라 지식인과 예술가들에게도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주었다.

그들에게 오스만의 작업은 파괴의 폭력을 휘두르는 광폭한 짓일 뿐이었다.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사라져 가는 옛 골목길을 보면서 "도시의 형태는 필멸하는 인간의 마음보다 더 빨리 변한다."라며 서글퍼했고 예술가들은 파괴의 현장 앞에서 역사와 기억이 지워지는 아픔을 속으로 삼켰다.

오스만은 파리라는 유기체에 켜켜이 쌓여 있던 시간의 나이테와, 무질서의 낭만을 지워버린 '파괴자'라는 혹독한 비판을 견뎌야만 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파괴 속에서 새로운 미학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현대적 하수도 시스템과 가스등, 질서 잡힌 거리와 건물 같은 파리 특유의 미학이 이 파괴 위에서 피어났다.

오스만의 작업은 불결하고 불안전한 파리를 '걷기 좋은 보행자의 파리'이자 '낭만이 흐르는 아름다운 파리'로 재탄생시켰다.


오스만의 직선들은 단순한 도로가 아니었고 통일과 질서의 꽃바람이 흐르는 도시의 혈관으로서 '도시 미학의 정수'였다.

하지만 사업 당시 '오스만'이란 이름은 파리의 창과 문, 지붕과 굴뚝에 찍힌 부정적 '낙인'과도 같은 것이었으며 사람들은 그것을 '오스만 형식'이라고 불렀다.

'오스만 스타일'의 미학적 성취도 불구하고 그 이름에 비난과 반항의 의미가 담기게 되면서 파리 대개조 사업은 '오스만의 파리 대개조 사업'(Haussmann's Renovation of Paris)이라는 고유 명사로 자리 잡아갔다.

시간이 흘러 19세기의 끝무렵에 이르면서 오스만의 질서 잡힌 균질한 직선의 압박은 예술가들이 그토록 갈구했던 '엇박자'와 '불협화음'의 발원지가 되어 파리를 예술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꿈과 작업 사이에 흐르는 인문학적 긴장의 미학

우안(Rive Droite)에 내려앉은 오페라 가르니에와 샹젤리제 같은 화려한 건물과 대로는 나폴레옹 3세가 그토록 원했던 '성공의 서사'를 완벽하게 구현한 위대한 설치 예술품들이 되어 파리의 심장과 혈관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파리 대개조 사업은 파리의 영혼을 두 개로 나누었다.

이제 센강은 물리적 경계로서가 아니라 영혼의 경계로서 파리를 가로지르게 되었다.

화려함 뒤편으로 밀려난 소외된 이들의 영혼은 좌안(Rive Gauche)의 골목으로 스며들어 보헤미안 정신과 저항의 철학과, 자유를 향한 새로운 예술로 피어났다.


나폴레옹 3세가 꾼 '질서와 정통성'이라는 정치적 꿈은, 그가 오스만에게 쥐어준 '자본과 권력'이라는 도구를 통해 현실화되면서, 파리의 미학을 탄생시켰다.

오늘날 우리가 센강을 따라 걸으며 만끽하는 파리의 아름다움은 야망과 광기, 정치와 권력, 자본과 파괴, 소외와 좌절이 빚어낸 '아름다운 모순'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파리는,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조차도 미처 생각지 못한 것들을 가만가만 들려주기도 한다.

누군가 나무 계단을 내려서는 중저음 저벅거림이 밤공기를 떨게 하는 뒷골목은 파리의 미학이 미처 닿지 못한 또 다른 파리의 '인문학적 긴장의 미학'일 수 있다.


"파리가 나폴레옹 3세의 꿈이든 오스만의 작업이든 상관할 바 아니다. 파리라는 예술품이 뿜어내는 미학에 취한 채로 깨어나지 않는 미혹의 삶을, 시지프스처럼 담담하게 살아가면 그뿐이다. "


#파리 #파리대개조 #파리의인문학 #파리의미학 #오스만남작 #나폴레옹3세 #센강 #우안 #좌안



매거진의 이전글파리 대개조 사업의 진정한 승자 오스만 남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