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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엉 Dec 02. 2021

뱅쇼의 추억

좋아하는 로스터리가 있다. 정식 이름은 '암스퀘어 커피 로스터스마음속에는 단순히 커피집이라고 저장되어 있다. 우연히 잠이 깨어 드립백을 뜯었다. 이 커피가 몇 그램이더라, 주문을 다시 클릭한다. 새벽은 딴짓하기 좋은 시간이다. 간만에 커피집 블로그를 들어가 본다. 주인의 섬세한 기록 좋아한다. 뻥 튀겨지지도, 답을 내리지도 않는 차분한 탐구심이 빼곡하다. '뱅쇼에 개인적으로 좋은 추억이 있습니다.' 마치 나도 뱅쇼에 좋은 추억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아스라이 좋은 느낌만 남아 있을 뿐, 도무지 어떤 추억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구리 컵에 시나몬 스틱이 꽂혀 있던 것 같기도 하고, 유리잔에 예쁜 레몬 장식이 있던 것 같기도 하다. 누구와 함께였을까, 혼자였을까. 쌀쌀한 나무 바닥을 떠올려 본다. 나는 크리스마스 장터에서 뱅쇼가 제일 맛있더라. 아니다. 그는 나와 크리스마스까지 함께 하지 않았다. 뱅쇼를 먹어야 한 해를 잘 끝내는 것 같아. A는 아주 좋은 벗이지만 그 뱅쇼는 너무 달았다. 집에서였을까. 부쇼네 와인으로 만든 뱅쇼는 아주 끔찍한 맛이 난다. 대체 이처럼 코끝을 간질이고, 몸을 훈훈하게 덥혀 주는 뱅쇼는 어디에서 맛보았을까. 상상 속의 뱅쇼인지, 뱅쇼라는 단어가 가진 따스함인지 고민하다 서늘함에 가까운 커피를 들이켠다. 여전히 커피는 맛있고, 새벽 가슴은 남모르게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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