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벗 삼아/ 패스트 패션

by 원더쏭
image01.png 상점의 보세 청바지 진열대가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한동안 길거리 사진 찍기에 심취하여, 시간만 되면 카메라를 들고 길거리를 배회했다. 체력도 약하고 카메라 다룰 줄도 모르던 초보 시절에도, 꽃을 찍으러 다닐 때보다 사람들이 오가는 길거리나 재래시장이 더 좋았다. 처음엔 여럿이 무리 지어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그러다가 시장하면 근처 맛집에서 식사한 후 차를 마시면서 담소함이 아주 즐거웠다.


그 무렵에 나는 사진 실력을 키우고 더 좋은 사진을 찍고 싶어서, 문화센터 사진반에 등록하였다. 그곳의 교수님이 다큐멘터리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분이어서, 우리에게도 다큐멘터리 강의하시고 수강생들도 그 성향을 자연스레 따라갔다. 수강생 각자 원하는 주제로 한 학기 동안 사진을 촬영했다. 나는 한동안 주제를 못 정해서 방황했다. 재래시장을 기웃거리고, 사라져 가는 옛날 모습의 동네에도 가보고, 환경오염에 대한 주제를 고민하기도 했다.

어느 날 정기적으로 모이던 동호회에서 황학동 출사를 하게 되었다. 전에도 추운 겨울에 황학동에서 사진을 찍어 보기는 했으나, 사람이 너무 많았고, 나의 촬영 실력도 미숙하여서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다. 그러나 요번에는 주제가 있는 만큼, 나의 시선과 각오도 달랐다. 오늘 출사가 요번 학기 주제와 맞을 수도 있단 생각을 했다. 정해진 시간에 동료들과 동묘앞역 3번 출구에서 만났다. 반갑게 인사 후에 황학동 벼룩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image02.png 호객 행위 중 잠시 쉬고 있는 상인이 필자와 눈을 마주치자 옷을 싸게 주겠다고 얘기했다.


시장은 입구부터 빈티지 물건들의 향연이었다. 알록달록 여러 모양의 옷들이 걸려있는 작은 점포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헌 옷들 사이에 앉아 호객하는 상인들, 나름의 멋을 부린 노신사들, 신발 더미, 그리고 삼박자 믹스커피와 간단한 요깃거리를 파는 행상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길바닥에 주욱 늘어놓은 가전제품, 시계, 카메라, 무좀약 등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흥미로운 것들이 많다. 좋은 물건을 획득하려는 사람 중에는 이주 노동자들도 여럿 보인다.

나는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하느라, 물건을 자세히 구경하거나 구매는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다행히 사진을 찍히기를 거부하거나, 초상권 운운하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두 시간 정도 시장의 모습을 찍고 철수했다. 동료들에게는 그날의 출사가 어떤 느낌이었는지 모르나, 나에게는 큰 동기부여의 기회로 다가왔다. ‘그렇다, 환경오염을 주제로, 부제는 헌 옷으로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 자신의 아이디어가 대견했고, 앞으로 사진 찍을 일들에 조금은 흥분되기도 했다.

image03.png 마치 노다지를 캐듯 옷을 고르느라 여념없는 사람들이 정겹다.


며칠 후부터 나는 짬이 날 때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이 옷을 버리는 곳을 찾아보고, 동네 고물상도 방문하였다. 헌 옷들은 주로 옷체통이라 불리는 우체통 모양의 헌 옷 수거함에 버려지는데, 동네의 구석진 코너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었다. 내가 거주하는 동네의 옷체통은 예쁜 노란 색으로 때로는 두 개가 나란히 서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기도 했다. 여러 동네를 다녀 보니. 옷체통의 색도 행정 구역마다 달라서 흥미로웠다. 그 당시 옷체통 사진을 찍으러 다니던 습관 때문에, 근래에도 옷체통과 우연히 마주치면, 카메라가 없을 때는 핸드폰으로라도 그 모습을 담는다.

어느 날 나는 작심을 하고 동네의 고물상을 방문했다. 큰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 나를 고물상의 아저씨들은 의아한 눈초리로 맞이했다.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방문한 취지를 설명했다. 가능하면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사진을 찍을 것이며,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지는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사장님은 좋은 취지라며 흔쾌히 허락하셨고, 초상권에는 관심도 없으셨다.


그 후 여러 번 그곳을 방문하여 사진을 찍고, 버려지는 옷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다. 버리는 옷가지는 옷체통에 넣지 말고 고물상에 가져오면, 한 벌에 천 원씩 값을 쳐주니, 필자에게도 ‘헌 옷이 쌓이면 가져오라고 하셨다.’ 그 후에도 나는 성대시장과 광장시장 근처에 있는 고물상을 방문하였다. 황학동 벼룩시장에도 몇 번 더 가서 사진을 찍었다.


한 학기 동안 나는 많은 사진을 찍었으며, 얄팍하게나마 환경에 관한 생각을 해보는 기회가 되어서 보람이 있었다. 과도하게 생산되어 미처 다 팔리지 못하여 폐기되는 옷들, 빠르게 변화하는 유행에 민감하여 해마다 철마다 사들이는 옷과 가방들, 음식의 홍수에 늘어난 체중으로 맞지 않아서 버리는 옷 등, 어느 것 하나 핑계 없는 예는 없으나, 이에 지구는 몸살을 앓는다. 천으로 만든 친환경 가방들도 썩으려면 오랜 세월이 걸린단다. 일회용 컵을 지양하여 만드는 텀블러도 썩지 않기에 또 다른 환경오염의 요인이 된다니 과잉 생산에 관한 생각도 필요한 듯하다.

한 학기가 끝날 무렵에, 나는 아쉽기도 했으나 안도의 숨을 내쉬기도 하였다. 더운 날씨에 사진 찍으러 다니기에 좀 지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많은 버려진 옷들이 마지막 가는 곳을 따라 해외까지 가려면, 좀 더 면밀한 계획과 시간과 체력이 필요하기에 그 정도에서 일단은 숨을 돌리기로 하였다.

아직은 춥지만, 햇살은 맑고 청량하다. 겨울이 기울매 봄이 시나브로 오고 있다. 백화점 등 여러 곳에서 옷 세일 메시지가 나를 유혹한다. ‘옷값이 쌀 때 한 벌 마련할까’하는 생각이 없지는 않으나, 이 글을 쓰면서 그 욕망을 지그시 눌러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