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언 여사의 분노를 이해하다

by 원더쏭

이른 봄날 아침에 아주 맑은 햇살이 거실 통창을 뚫고 슬그머니 들어왔다. 햇빛은 거실 마루를 지나서 한쪽 구석의 있는 알로에 잎을 관통하였다. 초록색의 알로에는 햇빛이 통과한 곳이 투명한 연녹색을 띠면서, 통통하니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예쁘다. 그려보고 싶을 정도로 빛의 연출이 훌륭했다. 한창 그림 그리기에 심취했던 나는 알로에 화분을 그려보고 싶어서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었다. 며칠 후 제일 마음에 드는 사진을 문화센터 그림 수업에 지참하여 밑그림을 그렸다. 그림 공부를 같이하던 친구가 사진을 좀 빌릴 수 없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내심 내키지 않았으나 그러라고 했다. 친한 친구라서 거절할 용기가 없었다. 나만의 독창성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마음을 간신히 눌렀다. 나는 그 친구만 사진을 사용하였으면 좋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 친구는 사진을 집으로 가져가서 연습을 좀 하겠다고 하였다. 다음 주 수업에 나는 사정이 생겨서 결석했다. 두 주가 지난 후 수업에 가니 나의 사진은 친구에게 있지 않았다. 그림지도 강사의 그림 따라 그리기 샘플 파일철에 버젓이 묶여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묻지도 않았다. 물론 그림 강사에게도 아무 말하지 않았다. 따지고 이야기하면, 나만 사진 한 장으로 치사하게 노는 사람이 될 정도로,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없는 상황이었다. 마룻바닥에 배를 깔고 심혈을 기울여 찰칵찰칵 찍은 나의 사진은 그렇게 나의 손을 떠났다. 그리고 나도 그림 강습 교실을 떠났다.

몇 년이 지난 후에도 나의 사진은 그림 강사소유의 그리기 샘플 파일의 한 페이지가 되어, 그림 수업에 사용됨을 보았다. 나는 좀 씁쓸한 마음이 들었으나, 그냥 샘플 사진 한 장 보시했다고 생각하며, 오래전 나의 스승인 미스 테리언의 분노를 이해하게 되었다.

오래전 대학 시절에는 우리에게는 지적 재산권에 대한 개념 자체가 희박하였다. 교재가격은 비쌌으며, 특히 원서는 구하기 쉽지 않았고,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제법 높은 가격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누군가 원서를 가지고 있으면, 여럿이 학교 근처의 복사 전문점에 가서, 빌린 원서를 통째로 복사하여 제본까지 한 다음 나누어 가졌었다. 우리는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낄 정도로 넉넉하지 않았으며, 그저 청운의 꿈과 기상만 높았었다.


몇 년간 직장생활을 하던 내게 미국 이민의 바람이 불어왔다. 해외개발공사에서 진행하는 미국 간호사 자격시험 준비반에 등록하였다. 강사진은 모두 배우자를 따라서 한국에 온 미국 현지 정식 간호사들이었다. 강의는 영어로 진행되었고, 그 열기가 대단히 뜨거웠다. 우리는 늘 그랬던 것과 다름없이 교재와 영어 회화 테이프를 복사하여 사용했다.


어느 날, 수업 후 미스 테리언이 심각하게 할 말이 있으니 강당으로 모이라고 했다. 미스 테리언은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면서 말을 꺼냈다. ‘한국에 오니 많은 사람이 죄책감 없이 남의 책이나 영어 회화 테이프를 복사하여 사용한다. 이런 행위는 지적 재산의 도둑질이다.’라고 말했다. “No, no”를 연발하던 그녀의 파란 눈동자는 분노로 더욱 차갑게 보였다. 그녀는 값이 비싸도 원서를 사서 공부하라고 말했다. 그녀의 뻐끔담배와 더불어 홀짝거리던 코카콜라는 더욱 낯설게 느껴졌다. 수업 후에 우리는 대다수가 그녀의 말을 수긍하지 못한 채 그녀를 비난하기에 바빴다. 실내에서 담배를 피웠다는 둥, 다리를 건방지게 꼬고 앉아서 말을 했다고, 또 돈을 아끼려고 복사 좀 한 걸 가지고 대수냐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테리언 여사는 다음날 영어 수업시간에 남의 저서에서 인용한 글을 어떻게 작성하며, 레퍼런스는 어떻게 수록하는지에 대해 열강을 했다. 학기가 끝나고 나는 그럭저럭 미국 간호사 시험을 치른 후, 뉴욕의 어느 병원에 취업이 되어서 한국을 떠나게 되었다.

얼마 후 나의 이민 가방에는 간호학 원서 세 권만 달랑 들어갈 수 있었다. 미국의 저작권 문제도 있고, 많은 복사본 책들의 무게가 버겁기도 했다. 물론 미지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여러 생필품이 가방을 꽉 채웠다. 나와 같이 이민 갔던 원서들은 이십 년 넘게 보관되다가, 내가 이사할 무렵, 뉴욕 맨해튼의 헌책방에 기증되었다.

세상이 많이 바뀐 요즘에는 책의 저작권만 아니라, 노래의 저작권 때문에 성탄절 캐럴을 길거리에서 듣기 힘들다. 글을 쓸 때도 인용구는 출처를 정확히 밝혀야만 한다. 대체로 남의 물건은 탐하지도 않으며, 깜박 두고 온 물건을 찾으러 가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기도 하다. 그만큼 우리 경제가 좋아지고 국민의식이 많이 높아졌기 때문이리라.

오래전에 다녀온 알래스카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여행수필을 쓸 기회가 있었다. 옛날 사진들을 이야기에 첨부하기엔 좀 맞지 않아서, 스톡 포토 사이트에서 적지 않은 돈을 지급하고 사진 여러 장을 샀다. 잡지에서 남의 사진을 슬쩍 복사하여 쓸 수도 있었으나, 나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미술반에서 잃어버린 나의 알로에 화분 사진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는 요즈음도 대학가의 문방구에서 원서를 복사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직도 남의 지적 재산권을 도용하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남의 저작물을 슬쩍 복사해 사용하는 사람은, 순간의 잘못된 판단이며 단순한 실수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소한 작품일지라도 누군가의 피땀 어린 노력의 결과임을 간과하면 안 된다. 저작권 침해는 반드시 고쳐야 할 우리의 악습이다.

테리언 여사가 아직 세상 어디엔가 생존해 있다면, 한 번 만나 보고 싶다. 당신이 나에게 지적 재산권에 대한 개념을 일찌감치 심어줌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2853자 공백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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