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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d Aug 24. 2016

마와리 견문록 #3

끝없는 암기의 괴로움_2

"경대야?"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알고 보니 경찰대 출신이냐는 말이었다. 시간마다 이뤄지는 전화보고에서 보고거리가 없으면 으레 "누구를 만났다"는 식의 면피*를 내놓아야 했다. 그럴 때면 선배는 내가 만났다던 경찰의 신상을 캐물으며 보고의 진위를 확인했다. 이름, 계급, 직위, 직책, 나이, 경력, 학연, 지연, 혈연까지. 대개 '직책' 이후에는 답을 못했지만 운 좋게 다 대답했을 경우, 마지막으로 꼭 '입직 경로**'를 물어봤다. 경찰대 출신일 경우, 기수도 알아야 했다. 그리고 외워야 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기획 회의 및 팀 회식이 있었다. 각자 맡은 라인을 하루 종일 떠돌아다니다가 이 날만큼은 저녁시간 즈음해서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마와리'를 몇 시간만이라도 쉴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지만, 한 편으로는 또 다른 괴로움이 있었다. 암기 테스트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 질문의 홍수에서 살아남기 위해 회사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나는 엑셀로 정리된 예상 문제를 외웠다. 담당하는 경찰서 ㅡ 적게는 4개에서 많게는 7개까지 ㅡ 의 조직도와 부서별 수장의 이름 및 신상 정보를 머릿속에 구겨 넣었다. 질문은 대개 이렇게 날아왔다.


경찰서 벽에는 이런 것들이 걸려 있다. 휴대폰으로 찍어 놓고 틈틈이 보고 다녔다.

"경찰 계급 밑에서부터 외워봐."

"너, 강남서장 이름 뭐야?"

"입직경로는? 몇 기?"

"전공이 뭐래?"

"임기는?"

"형사과장 이름은 뭐야?"

(이하 심화 및 반복)


취재 대상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조직이나 계급, 부서별 기능과 사건의 처리 절차 등에 대한 학습 강요는 이해한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어느 부서에서 이 사건을 담당할지 알아야 바로 덤벼들 수 있다. 사건의 개요를 파악한 뒤, 처리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예상할 수 있어야 취재가 순조롭다. 하지만 해당 인물의 뒷배경을 조사하는 건, 기자라기보다 정보원의 영역이다. 사건을 취재하는데 담당자의 전공을 알 필요가 있나? 출신 지역이나 출신 학교? 나이? 쓸모없다.


결국 이런 정보들은 취재원과 사적으로 친해지기 위한 정보다. 출입처에서 공식적으로 나오는 뉴스가 아닌, 이면의 뉴스까지도 포섭하기 위한 기자들의 무기다. 출입처 사람들과 호형호제하고 사적으로 술을 마시며 흘러나오는 정보들까지도 호시탐탐 감시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필요한 부분이겠지만, 기자의 기초에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수습 기간은 취재의 기본을 갈고닦아야 할 시기다. 뉴스를 올바르고 균형 있게 취재하는 방법, 윤리적 갈등 상황에 처했을 때 판단 기준, 더 좋은 기사의 덕목 등을 배워야 할 때다.


기자의 기본보다 정보원으로서의 역량을 더 중시하는 것은 폐단이다. 나는 취재 현장에 나서면서 취재 윤리나 보도 윤리를 교육받은 기억이 없다. "이건 좀 잘못된 거 아닌가요?"라는 질문엔 "그런 거 따지면 기자 못한다"는 답변이 돌아왔을 뿐이다. 그저 타사가 모르는 정보를 더 빨리 혹은 단독으로 획득하고 보도하는 것이 미덕임을 배웠다. 이렇게 성장한 기자가 세월호 사고와 같은 거대 취재현장을 직면했을 때 어떻게 취재에 임할까를 생각해보면, '기레기'의 발원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면피(免避) : '기자의 생명은 보고'라는 말이 있다. 출입처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뉴스들을 꼬박꼬박 보고하는 것이 기자의 주 업무다. 하지만 보고거리는 부족하기 마련이고, 보고할 것이 없을 때 '이거라도 보고 해야겠다'에서 '이거'가 면피다.


**입직 경로 : 직업에 들어오게 된 경로. 경찰의 입직 경로에는 경찰대 졸업, 간부 후보생, 순경 시험, 특별채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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