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의 의미
경쟁분석은, 일목요연한 정보 표현을 위해 '비교표 형태'로 작성할 것을 추천한다. 여기서 핵심은 '표 형태'다. 비교대상에 창업가(팀)를 포함시키고, 비교항목이 또 중요한데, 고객 입장에서의 구매 포인트여야 한다. 단순한 스펙・기능의 나열은 큰 의미가 없다.
왜 비교표를 사용해 자료를 제시해야 하냐면, 그래야 창업가(팀) 아이템의 차별성, 즉 경쟁력이 뚜렷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주어진 피칭시간은 충분치 않다. 서면으로 사업계획서를 검토하는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짧은 시간 안에 직관적으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경쟁분석은 한 번에 전달해야 할 정보의 양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쟁분석을 시장분석 다음에 위치시키는 것이 좋다. 시장분석에서 고객과 수요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자연스레 시장을 선점하고 있을 플레이어(Player)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마인드셋(Mindset)'을 주제로 한 첫 글에서 사업계획서(피칭덱, Pitching Deck)는 '설득'이라는 목적을 가지므로, '흐름', 나아가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그런 점에서 시장분석 뒤에 경쟁분석이 오면 맥락을 연결시키기 쉽다.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말이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인데, (시장규모와 성장률이 실제 사업을 함에 있어서는) 무용하다고도 느껴질 수 있는 시장분석과는 다르게, 경쟁분석의 필요성은 누구나 안다. 직감적으로 다른 것들과는 달라야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간혹 자신의 아이템은 기존에 없던 것이어서, 또는 혁신적인 제품/기술이기 때문에, 소재 기술이라는 이유로 경쟁자가 없다거나, 경쟁분석을 할 수 없거나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창업가가 있다. 고객이 다르고 시장이 다르기 때문에 경쟁자 또는 경쟁제품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피칭을 바라보는 상대방은, 고객 입장에선 얼마든지 대체품이 존재할 수 있는데, 이점을 창업가가 간과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이 등장했을 땐 피처폰을, 무선 이어폰이 등장했을 땐 유선 이어폰을 대체품으로 간주할 수 있다. 하물며 피처폰과 유선 이어폰은 이전 세대와는 다른 스마트폰과 무선 이어폰이라는 혁신적인 제품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장에서 없어지지 않고 현재도 팔리고 있다.
기존 제품 또는 경쟁자 대비 차별성을 만들거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경쟁분석을 해야 함을 모르는 창업가는 없다. 그러나 평가하는 입장에서 보면 차별점, 그 자체만을 위해 전략을 만들어 제시한다고 느껴지는 사례가 많다.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고, 복합적일 수도 있지만, 내가 찾아낸 이유는, 창업가(팀)가 사업계획서를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했기 때문이다. 사업계획서 또는 피칭덱의 필수항목으로 경쟁분석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또는 창업 교육・프로그램을 경험을 하면서 차별화가 필요하다는 말을 반복해서 들었기 때문에, 피칭을 경험해 보니 심사위원들이 '그래서 고객이 창업가의 솔루션을 구매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반복해서 질문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답변으로서 만들어내기 위해 경쟁분석을 하고, 그러한 고민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이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또 어떻게 보면, 차별화 포인트를 "what?(무엇을 해야 하지?)"이라는 관점에서만 찾고 고민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보여주기식 전략이 아닌, 진짜 (경쟁)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어떻게? 경쟁분석이라는 방법을 활용해서. 찐 전략을 도출하는 또 다른 특별한 방법을 기대했다면 실망시켜서 미안하다. 경쟁분석보다 쉽고 효율적인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경쟁분석에 적혀있는 차별화 또는 경쟁전략을 실제로 적용하고 있는가? 아니면 정말로 그 전략 또는 가치를 실행할 구체적 계획을 세우고 있는가? 창업가 자신과 팀은, 자기들이 제시한 전략으로 고객을 설득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가?
차별성이란 단어는, 평가하는 쪽에서 언급하기에 상대방을 직관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고, 통용하여 사용될 수 있기에 사용하는 용어다. 사실 창업가로부터 듣고 싶은 것은, 경쟁전략이다. 기술, 스펙, 고성능, 기능, 수단 등에만 국한하여 생각할 필요는 없다. 창업가가 고객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가치가, 차별 포인트의 본질임을 기억하자. 전략은, 이 제공가치를 어떻게 고객에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이나 계획일 수도 있다. 즉 시장진입전략 또는 마케팅 전략, 브랜딩 전략과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경쟁이 성립되기 위해선 목표가 같아야 한다. 마라톤 경기를 떠올려보자. 경기에 참가하는 모든 선수가 경쟁자일까? 모두가 골인 지점을 향해 1등을 목표로 달린다면, 경쟁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10km 또는 하프 지점이 목표인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또는 완주를 목표로 하지만 4시간 또는 6시간을 예상하며 달리는 참가자도 있을 것이다. 이들 모두가 1등을 목표로 달리는 자와 경쟁한다고 말할 순 없다.
사업에 있어 위에서 말하는 목표가 될 수 있는 요소는, 고객 그리고 고객의 문제, 제공가치, 아이템(솔루션, Solution)이다. 여기서 고객과 아이템, 이 2가지만 가지고 구분을 해보겠다. 동일한 고객에게 동일한 아이템을 제공한다면, 서로 경쟁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동일한 고객에게 다른 아이템을 제공한다면, 서로 경쟁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른 고객에게 동일한 아이템을 제공한다면, 또는 다른 고객에게 다른 아이템을 제공한다면, 서로 경쟁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1. 동일한 고객에게, 동일한 아이템을 제공하는 경우
2. 동일한 고객에게, 다른 아이템을 제공하는 경우
3. 다른 고객에게, 동일한 아이템을 제공하는 경우
4. 다른 고객에게, 다른 아이템을 제공하는 경우
고객이 다르고 아이템도 다르다면, 경쟁한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리고 고객이 다르나 아이템이 동일한 경우 역시 경쟁관계에 있다고 할 순 없을 듯하다. 왜냐면 이 케이스가 바로, 시장이 다른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시장이 다르므로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템이 동일하므로 언제든 경쟁관계에 놓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고객이 동일하나 아이템이 다른 경우는 어떤가? 아이템이 다르므로 경쟁관계가 성립할 수 없을까? 아니다. 이 경우엔 경쟁이 발생할 수 있다.
아이템은 다르지만 고객이 동일해 경쟁이 발생하는 대표적인 예로, 채널만 다른 경우가 있다. 극장과 OTT 플랫폼, 오프라인 교육과 온라인 교육, 백화점과 이커머스 등이다. 또 다른 예로 디즈니랜드와 같은 테마파크와 게임회사, 리디(북스)와 넷플릭스가 있다. 리디(북스)가 다른 온라인 서점 플레이어 대신 넷플릭스를 경쟁자로 설정해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함으로써 높은 기업성장을 만들어낸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출처: 동아비즈니스리뷰, https://dbr.donga.com/article/view/total/article_no/8679)
미국의 프로농구리그를 NBA(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라 한다. '마이클 조던'이라는 스타가 은퇴한 뒤 한동안 NBA는 "앞 좌석에서 아이들이 방해받지 않고 숙제를 할 수 있을 정도다."라는 핀잔을 들을 정도로까지 인기가 하락했다. 그러나 NBA를 "쇼 미디어 엔터테인먼트"로 업의 본질을 재정의하자, 엔터테인먼트와 관련된 콘텐츠, 게임, e스포츠 플레이어들이 "경쟁자"가 되었다. TV 대신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미래의 소비자 "Z세대"를 타깃하여 그들을 NBA 생중계로 유도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SNS에 멋진 경기 장면을 업로드하고, 선수들의 유니폼에 마이크까지 설치했으며, 선수들의 SNS 활동과 쇼 프로그램 출연 등을 독려했다. 일명 "스낵과 식사"라 불리우는 이 시장접근전략은 유효한 성과를 만들어냈다. NBA 리그의 전체 매출을 2014년 4.8Bn 달러 수준에서, 2022년 10Bn 달러까지 성장시키며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하는데 기여했다.
"경쟁"을 무엇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또는 사업의 "본질"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경쟁 상대가 달라질 수 있으며, 시장접근전략이 달라질 수 있다. 전략이 바뀌니 행동이 바뀌고 전과 다른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경쟁 또는 업의 본질을 바라보는 방식은, "창업가의 관점"과 맞닿아 있다. 앞선 시장분석에서 창업가의 관점을, 창업가가 사업 또는 세상, 시장을 해석(이해)하는 방법이라 했으며, 창업코치인 나는 이를 '기둥' 또는 '코어'라 부른다고 했다. 그리고 의사결정이나 선택을 해야 할 때 일종의 기준으로서 작용한다고도 했다. ('창업가의 관점'이라는 용어는, '언더독스'의 '혁신창업방법론'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나의 창업이론과 지식의 토대라 할 수 있다.)
경쟁분석 역시 기업의 외부환경을 다룬다는 점, 그리고 경쟁자 또는 경쟁 아이템(제품/서비스)은 시장 내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경쟁분석은 시장분석의 연장선에 있다. 시장분석에서 시장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창업가가 자신만의 관점을 정립하고 드러낼 수 있다고 말했던 것과 동일한 논리로, 경쟁분석에서 경쟁과 업(業, business)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창업가의 관점을 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