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된 노동자를 위한 새로운 협업 생태계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은 우리가 일하는 방식이 정말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송길영 님의 <시대예보:경량 문명의 탄생>을 읽으면서 더 깊이 공감했다. 우리는 지금 '경량화'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책에서 말하는 '경량'은 단순히 가볍고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이동성과 연결의 유연성을 뜻한다. 이 대목에 특히 깊이 공감했다.
14년간 디자이너로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은 변화를 목격했다. 예전에는 대기업, 규모 있는 팀, 체계적인 시스템이 곧 경쟁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오히려 빠르게 뭉치고 자연스럽게 흩어질 수 있는, 변화에 즉각적인 반응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마치 새떼가 V자 대형으로 날아가는 모습과 비슷한 것 같다. 각자는 독립적으로 날지만 필요할 때는 서로의 기류를 이용해 더 멀리, 더 효율적으로 날아간다. 리더가 지치면 다른 새가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대신한다. 목적지는 같지만, 가는 길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바뀐다.
독립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 혼자 설 수 있어야 하는데, 동시에 누구보다 잘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프리랜서든, 사이드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직장인이든, 제2의 커리어를 고민하는 사람이든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회사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정해진 역할만 하면 됐다. 위계질서도 명확했고, 의사결정 구조도 체계적이었다. 그런데 독입된 개인으로 일한다는 건 완전히 다른 세계다. 관계 자체가 곧 인프라가 된다. 신뢰와 소통, 상호 이해가 업무 시스템 그 자체가 되는 거다.
권고사직 후 프리랜서로 일해보고자 하였지만 나라는 사람을 증명하기도 어려웠고 이전에는 각 팀에서 나눠서 해야 했던 일을 온전히 혼자서만 해야 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은 다시 외주를 주어야 하는 상황에서 마케터, 개발자, 카피라이터들이 간절했다. 각자의 전문성의 역할을 해낼 수 있는 그런 프로젝트 단위로 일할 수 있는 분들은 어디서 만나야 하는 것일까?
'느슨한 연대'라는 표현이 참 좋다. 너무 느슨하면 연결이 끊어지고, 너무 단단하면 경직된다. 그 절묘한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
신뢰 기반의 빠른 연결이 가능해야 한다. 계약서를 일일이 검토하고 검증 절차를 거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서로의 작업 스타일과 품질 수준을 누군가 검토하고 한눈에 확인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간단한 확인만으로도 협업의 시작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역할의 유연성도 중요하다 생각한다. 한 프로젝트에서는 팔로워였던 사람이 다른 프로젝트에서는 리더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고정된 직급이나 서열이 아니라, 프로젝트의 성격과 개인의 전문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역할이 결정되는 것이다.
지식과 자원의 개방적 공유는 어떨까? 정보를 독점하지 않고 자유롭게 나눈다 서로 채워나가는 것. 한 사람의 성장이 전체 네트워크의 역량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을까?
그리고 건강한 결합과 분리가 이뤄져야 한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뭉치고, 끝나면 감정적 부담 없이 각자의 길을 간다. 이별에 대한 부담이 없어야 만남이 자유로워질 거라 생각된다.
전통적인 조직이 추구했던 '견고함'은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는 강점이었다. 하지만 변화가 빨라진 지금 오히려 발목을 잡는다. 지금 시대의 핵심 키워드는 적응력(Adaptability)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우리는 뼈저리게 느꼈다. 견고한 시스템을 자랑하던 큰 조직들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반면 느슨하게 연결된 독립 노동자들의 네트워크는 상대적으로 빠르게 새로운 상황에 맞춰나갔다.
유연한 연결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층적인 관계 구축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단순한 업무 관계를 넘어서 개인의 신뢰, 전문성에 대한 존경, 미래 비전 공유 등 여러 연결고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정기적인 소통도 중요하다. 당장 프로젝트가 없어도 꾸준히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서로의 안부와 근황을 묻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공유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이런 일상적인 교류가 위기상황이나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서로를 믿고 빠른 협업이 가능하게 한다. 자연스러운 관심이 관계를 살아있게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스레드에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응원하고 있는 스친들이 있는데 이들을 통해 동기부여를 받기도 하고 다음에 좋은 프로젝트로 함께 일하고 싶다는 관계가 형성되었다.
상호 성장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서로의 성공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지원해야 한다. 경쟁자가 아닌 동반자로 인식하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경쟁하는 구도에서는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누군가의 성공이 내 기회를 빼앗는 게 아니라, 전체 파이를 키우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느슨한 연대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의도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독립된 노동자들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협업 생태계를 우리가 직접 만들어가야 하는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프리랜서로 일하던 시기 일을 구하기가 어렵고 내가 외주를 주어야 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을 찾고 그 상대방의 전문성을 확인하는데 꽤나 어려움을 겪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직의 틀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생각이 점차 커져갔다. 독립된 노동자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창조적인 독립자로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데 이바지하고 싶고 일과 삶의 경계를 허물고, 자신이 정한 방식과 가치관으로 자유롭게 일하며 독립된 노동자로 살아가는 그런 세상을 꿈꿨다. 그래서 프리에이전트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서로를 돕고 함께 성장하고 협업을 할 수 있는 그런 커뮤니티를 만들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