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숨 쉬는 법을 배우기까지
내 인생은 정말 평범하고 무탈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낳으며 달라지기 시작했다. 화면이 멈추기도 하고 로딩이 길어졌고 결국에 멈춰버렸다. 그 순간에도 나는 내가 괜찮다고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평범한 부모님 밑에서 큰 사고 없이 자랐다. 아버지는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어머니는 계속 아르바이트를 하시며 살림을 꾸렸다. 집은 넉넉하진 않았지만 나와 동생은 행복함을 충분히 느끼며 자랐다.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보며 좋은 대학에 합격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효도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평범한 삶을 유지하려면 내가 더 노력하고 잘해야 한다고 믿었다. 잘 버티고 잘 참고 견디면 잘 살아갈 수 있을거라고 너무 순진하게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나의 그 평범한 삶은 둘째를 낳기 전부터 뭔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어긋남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데서 먼저 온다. 소리보다 먼저 오는 균열처럼 대화가 줄어드는 것, 웃음이 억지로 나오는 것, 사소한 말에 마음이 솔리는 것 이런 사소한 불편의 감정이 쌓이길 시작한다. '이 정도는 다들 겪는 거지'라고 넘겼지만 그런 감정들이 쌓이는 속도는 생각보다 빨랐다.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 내 일상은 더 고되지기 시작했다.
산후 우울증이 찾아왔다. 새로운 것을 배워보고 싶다는 이야기에 대학원에 가야겠다는 배우자를 응원하며 평일과 주말에도 아이들만 보며 지냈다. 그 당시 첫째는 어린이집 적응도 어려웠고 발달이 느려서 센터를 다니고 있었다. 어떤 날은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났고 어떤 날은 가슴이 답다해다. 하루 종일 아이 둘을 케어가면서 밥을 먹는 건지 숨을 쉬는 건지 모를 때가 많았다. 부모님 집도 멀고 친했던 친구들과도 거리가 있어 비슷한 아이를 키우는 육아 동지들만 있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묻는 질문에는 바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이 아니라 생존만 남아 있었다.
그 즈음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왕복 4시간이 넘는 출퇴근 시간과 강의까지 듣느라 늦게 퇴근하고 주말에는 피로감에 힘들어하는 배우자를 보며 독박육아가 계속 되풀이 되는 환경을 바꿔보고 싶었다. 내가 온전히 나인 상태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고자 이사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 와중에 세 번째 사업을 시작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무모한 도전이라기보다 살기 위한 선택에 가까웠다. 나에게는 '돈 버는 능력'이 필요했다. 누구의 도움 없이도 아이들을 케어하면서 사업을 준비했고 이사 시기가 애매해서 두 달이 걸리는 시간동안 부모님 집에서 신세를 지기도 했다. 아이 둘은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였는데 현실은 일도 엄마로서의 역할도 두가지를 동시에 해내야 한다는 그런 압박을 느꼈다.
체력은 금방 바닥이 났다. 아이들이 원에 가면 동업하는 대학교 동기 언니와 만나 사업 준비를 하고 하원을 하면 아이들을 돌봤다. 다시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아이방 작은 베란다를 개조해서 만든 책상에 앉아 다시 일을 시작했다. 함께 동업을 하는 언니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더욱 열심히 일을 했다.
대부분의 날이 그렇게 흘러갔다. 밤이 되어서야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있었고 새벽이 되어서야 잠들고 아침에 다시 일어나 아이들을 챙기고.. 사람의 몸이 그렇게 오래 버틸 수 있을 거라 믿은 게 나의 착각이었다.
무엇보다 배우자와의 관계를 계속 좋지 않았었다. 감정이 쌓이면 어느 수간부터는 대화가 아니라 공기가 된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 기류.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도 해보고 관계를 개선해보려고 부부 상담도 받았다. 하지만 상담은 관계의 기술을 가르쳐줄 뿐, 관계의 본질은 바꿔주진 못했다. 우리는 서로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서로의 상처를 더 깊이 건드리고 있었다.
우울감이 커지니 불면증이 찾아왔다.
잠이 오지 않으니 마음은 더 쉽게 무너졌다. 잠을 못 자면 작은 말에도 가슴이 내려앉고 사소한 일에도 화가 치밀고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진다. 그렇게 나는 점점 '나'라는 사람을 잃어갔다. 엄마로도 동업자로도 배우자로도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았다. 배우자는 계속 나를 탓했다. 그리고 나 자신도 그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렸다. 내가 부족해서 더 노력해야 해서 내가 더 참아야 해서.
하지만 현실은 참는다고 해결되지 않았다.
곪아진 염증은 결국 터진다.
그날이 왔다. 내 입 밖으로 이혼이라는 단어가 처음 꺼내졌을 때, 신기하게도 후회나 아쉬움이 먼저 오지 않았다. 오히려 무감각하고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도 들었다. 감정이 너무 오래 고여 있었던 탓일까? 터지는 순간에는 통증보다 해방감이 먼저 왔다.
'아, 끝이구나.'
내 마음에서 울리는 끝이라는 말은 슬픔이라기보다 사실 확인처럼 느껴졌다.
이혼을 결정하고 마주한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이혼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과 환경이 모두 바뀌는 일이다. 집, 돈, 아이, 관계, 앞으로의 시간... 모든 것이 흔들리고 찢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을 하고 나니 그때부터는 생존이었다.
감사하게도 주변의 도움 덕분에 생각보다 빠르게 정리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정리가 빨리 된다고 마음이 정리되는 것은 아니었다.
현실은 차갑고 냉혹했다. 나에게 주어진 돈은 크지도 적지도 않은 '어딘가에 끼인'금액이었으며 그 금액을 받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목돈이라고 부르기엔 부족하고 가볍다고 넘기기엔 무거웠다. 경력은 단절된 상태였고 나는 두 아이를 키워야 했다. 그리고 지방인 부모님 곁으로 내려가기로 결정되어 사업을 더이상 유지하기에 어렵다고 판단해 동기 언니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업도 정리를 해야 했다.
세 번째 사업은 조금씩 성과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판매도 늘고 글도 노출이 잘 되고 오프라인 소품점에 입점도 이어졌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라며 동기 언니가 아쉬워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성장'보다 '지속 가능한 삶'이 더 중요하다 생각했고 아쉬운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때 어떤 선택은 '포기'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키는 일' 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매출을 얻는 대신 아이들의 일상을 지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무너지지 않을 최소한의 기반을 지키고자 했다. 사업을 접고 나니 이제 닥친 차가운 현실은
"그래서 앞으로 뭘 하며 먹고 살지?"
하루 종일 끙끙거리며 머릿 속으로 고민만 했다. 누군가 괜찮을거야, 해결될거라 말해도 통장은 괜찮지 않았다. 아이들은 계속 커갈 것이고 혹시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상황도 생길까 두려웠다. 그렇게 나는 어른으로서의 책임을 져야 했다.
이혼을 결정하고 본가로 내려가기로 한 뒤 서울에서 일하다 고향으로 내려와 유치원 선생님을 하고 있던 친구가 생각나 전화를 했다. 내 사정을 듣고 친구가 진심을 담아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 보육교사를 해보는건 어때?"
나는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육교사?
나는 디자이너였고 제품을 만들어 팔기도 했던 사람이었는데 누군가를 돌보고 가르키는 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친구는 아주 현실적인 조건을 말해줬다. 자격증 취득 기간이 1년 반이고 자격증을 따고 나서 바로 취업을 할 수 있고 지방에 디자인 일자리를 없지만 보육교사 일자리를 있었다.친구의 말이 내게 구조선처럼 들렸다.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라 당장 숨을 쉴 수 있는 방법. 내가 지금 필요한 건 멋진 커리어가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현금 흐름'이었다. 그래서 바로 강의를 알아보고 수강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꽤 큰 금액이었지만 바로 실행에 옮겼다. 이 강의가 나의 성장을 위한 배움의 투자의 시작이었다. 이혼 숙려 기간 동안에도 열심히 강의를 듣고 과제를 하며 내 인생을 로그인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리고 이혼을 하는 과정에서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갔었다.
처음엔 모든 게 내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내가 약하고 모자르고 감당을 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믿었다. 그런데 상담을 받는 과정에서 알게 된 건 내가 약한 게 아니라 내가 너무 오래 버티고 있었다는 것이다.
상담 이후 나는 마음공부에 깊은 관심이 생겼다. 내가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졌기 때문인지 아니면 나를 먼저 이해해야 했기 때문이었는지 이유는 잘 모른다. 그렇게 나를 회복하기 위한 공부도 함께 시작했다. 다시 살아가고자 하는 기술을 하나씩 습득하기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렇게 2018년 12월 나는 고향으로 내려왔다.
낯선 곳이면서도 가장 친밀한 곳.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동네, 내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있고 부모님이 살아가는 그리운 나의 집. 그곳에서 나는 다시 시작했다. 새로운 출발이라기보다 다시 숨 쉬는 법을 배우는 시작이었다.
내 인생이 로그아웃 된 뒤에야 깨달았다. 경력은 끊길 수 있고 계획은 무너질 수 있다. 하지만 삶은 그 와중에도 계속 된다. 그 삶 속에서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감각을 얻는다.
사람을 읽는 감각, 생존하기 위한 본능,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키는 감각
그리고 이 브런치북에서 나는 그 감각을 '일의 언어'로 번역해 보려고 한다
여러분의 인생에서도 인생이 로그아웃된 순간이 있으셨나요?
그리고 지금 어떤 방식으로 다시 로그인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