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향수샵에서 생각해 본 Brand Identity
제품 기획자가 꼭 해야하는 큰 고민 중에 하나는 자신이 맡은 브랜드, 혹은 가게에 얼마나 많은 제품군을 가지고 가야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다양한 제품을 구비하여 고객이 뭐든지 선택하게 해주는 것이 특징인 브랜드도 있겠고, 아주 선정 된 시그니처 제품만으로 승부하는 브랜드가 있을 것입니다. (김밥천국과 순대국밥집을 생각해봅시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은 아니지만 둘 중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 지는 기획자가 미리 설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처음에는 시그니처 아이템만 중점적으로 팔겠다고 시작해놓고, 옆집 뒷집에서 파는 아이템을 모두 갖다 파는 정체 모를 브랜드가 되기 쉬우니까요.
다양한 제품 군의 브랜드 :
장점 - 넓은 고객층을 수용 가능. 각 고객의 취향을 디테일하게 만족시킴.
단점 - 고객에게 선택의 피로도를 줄 수 있음. (일부의 경우에는) 전문도가 낮아보일 수 있음
소품종 위주의 판매 브랜드 :
장점 - 판매 예측 쉬움 (원가 관리, 재고 관리 등에 유리)
단점 - 타겟 고객 외의 다양한 고객 수용이 어려움. 시그니처 아이템에 대한 개발이 어려움
이렇게 써두면 사실 소품종 위주의 판매 브랜드가 더 좋은 선택지 같습니다. 사실 한국 시장에서는, 특히 외식 시장에서는 강력한 시그니처 아이템을 위주로 한 소품종 위주의 판매 브랜드가 더 유리한 것이 사실입니다. 전반적으로 "유명한 메뉴"를 선택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고, 그 메뉴 때문에 찾아오는 고객의 비중이 확실히 높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국 시장이 아니라면 조금 더 다른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뉴욕은 수 많은 인종과 국적과 스타일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그러다보니 "Customization"에 대한 욕구가 굉장히 강한 곳입니다. 제가 미국 다른 지역에는 살아본적이 없지만 Salad Shop인 <Sweet Green>이나 Chipotle의 모델을 보면 확실히 우리 나라와 다르게 자기가 원하는대로 선택해서 만들어 먹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한국은 아직까지는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을 고객들이 크게 선호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앞으로는 충분히 변화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뉴욕 Soho에 위치한 두 향수 샵은 고객에게 얼마나 선택지를 주는지가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한국에도 이미 론칭 되어있는 "Le labo"라는 브랜드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에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은 "Fueguia 1833"이라는 브랜드 입니다. 조향사 Julian Bedel이 아르헨티나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브랜드로 파타고니아의 천연 재료를 이용하여 독특하고 다양한 향을 만들어내는 니치향수 브랜드입니다.
Le labo에서는 약 15가지 향수 종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저같은 결정장애자에게도 고단하지만 결정 할 수 있는 수준의 선택지입니다. 각 향수는 캐릭터가 각각 명확히 달라서 물론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큰 고민 없이 구분하고 고를 수 있는 수준입니다.
이와는 좀 다르게 Pueguia 1833 매장에는 정말 빼곡하게 다양한 종류의 향수가 가득 차 있습니다. 어떤 향수들은 서로 비슷하면서 미묘한 차이만 가지고 있는 향수들도 많습니다. 워낙 다양한 종류의 향수를 보유하고 있다보니 시트러스를 조금 더하고 싶다던지, Woody한 향을 더하고 싶다던지에 맞춰 각자의 취향에 따라 디테일하게 향수를 고를 수 있습니다. 또한 Pueguia 1833은 한 향수를 만들 때 제한적인 수량만 생산합니다. 보통 각 향수는 400-600개 정도만 생산되며 그 이후에는 기후나 퀄리티, 생산 당시의 향료의 원료 생산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화합니다. 그러다보니 브랜드 전체에서 생산하는 종류로 보았을 때는 어마어마한 가짓수의 향수를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저 같은 선택장애자 + 향수에 대한 소극적 소비자는 Pueguia 1833은 사실 조금 피곤한 브랜드입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향수를 소비하고, 자신의 향을 찾아가기를 좋아하는 고객에게는 천국 같은 브랜드일 것입니다. 이처럼 브랜드의 상품 SKU (Stock Keeping Unit)를 얼마나 가져가는지는 중요한 브랜드 아이덴티티 중의 하나입니다. 무조건 많다고, 무조건 적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판매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하는 중요 포인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