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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태현 Aug 13. 2019

안심하세요, 행복해질 거예요

영화 - 최악의 하루

 영화의 시작과 끝은 소설가 료헤이(이와세 료)의 내레이션으로 동일하다. 료헤이는 오프닝에선 곤경에 처한 여자에 관한 이야기가 생각났다고 말하며, 엔딩에선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 사이엔 ‘곤경에 처한 여자’로 보이는 은희(한예리)의 이야기가 현실 소설 사이 무언가로 채워진다. 료헤이의 말대로 은희의 고된 하루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최악의 하루>는 액자식 구성을 지녔다. 큰 틀은 료헤이가 한국에 와 자신의 소설 출판 기념회를 열게 되며 겪는 이야기다. 작은 틀은 료헤이가 새로 쓰려하는 이야기 속 은희에 관한 이야기다. 두 이야기는 서로의 영역에 드나들며 이야기 속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위로를 건넨다. 



 료헤이는 자신의 소설 속 인물들에게 잔인한 작가다. 료헤이는 오로지 독자들의 호응을 위해 자극적인 소재를 사용할뿐더러 위기에 가둔 소설 속 인물들을 구해주지 않는다. 새로운 이야기 속 은희의 처지도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료헤이 포함 세 남자로부터 둘러싸인 은희는 자기모순의 함정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말 그 사람들을 알고 있나요?”라는 여기자 현경(최유화)의 질문처럼 료헤이는 정말 독자들을, 그리고 소설 속 인물들을 알고 있는가는 의문이다. 오로지 독자들을 위해 써온 글은 독자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며, 출판 사인회에서는 제대로 된 독자 한 명을 만나지 못한다. ‘상대에 대한 이타심’으로 ‘자기모순의 함정’에 빠지는 소설 속 인물들처럼 료헤이 또한 자기모순에 빠진 인물로 그려진다.


 

 똑같이 거짓말을 만드는 일을 하며, 똑같이 최악의 하루를 겪은 료헤이와 은희는 남산에서 필연처럼 재회한다. 둘이 처음 만난 낮에 은희의 어설픈 ‘곰방와’(こんばんは)라는 인사를 ‘곤니찌와’(こんにちは)로 교정하던 료헤이의 모습은 창작자와 피조물의 관계를 암시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재회 후 자신의 이름을 ‘응히’로 알아들은 료헤이에게 ‘은희’라고 교정해주는 은희의 모습은 창작자와 피조물이라는 단순한 구조를 넘어섰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라는 료헤이의 말은 은희 뿐만 아니라 료헤이 자신에게도 주문처럼 작용됐다. 타자를 정말 알고 있는가에 관해 고민하던 료헤이처럼,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은희처럼, 진짜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드물 것이다.


 다만 언어가 다르듯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교류한 둘의 모습을 바라보다 보면 무엇이 진짜인지 고민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알아듣지 못할 일본어를 은희에게 소개하는 료헤이, 연기가 아닌 주전공인 무용을 료헤이에게 보여주는 은희의 모습처럼 그렇게 안심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면, 료헤이의 독자로 저 둘과 같이 해피엔딩의 하루를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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