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화사
나의 영화사는 언제부터였을까. 엄마 손을 잡고 처음으로 본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부터 시작해야할까? 일일이 정리하자니 무료한 작업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적어야할까. 여러 기억 중 한 순간이 떠오른다. 재미로 보던 영화를 깊게 보기 시작한 때가 있다. SNS에서 우연히 보게 된 영화 소개 글이 시초였다.
그 영화는 <시계태엽 오렌지>(스탠리 큐브릭, 1971)였으며, 소개 글은 “스탠리 큐브릭 형님께서 악이 무엇인지 보여주신다.”, 대강 이런 느낌이었다. 그날 나는 스탠리 큐브릭을 알았고, <시계태엽 오렌지>를 봤으며, 악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라고 말하면 좋겠지만 나에겐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보다 누군가에게 “악이 뭔지 모른다고? 그렇다면 이 영화를 한번 봐”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나는 어쩌면 영화가 아닌 허세를 배운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그분을 통해 <매그놀리아>(폴 토머스 앤더슨, 1999)에 담긴 인생을 보았고, <펀치 드렁크 러브>(폴 토머스 앤더슨, 2002)를 보고 사랑의 힘을 실감했다. 코엔 형제 감독 작품에 스며든 허무함을 씁쓸히 맛보았으며, 팀 버튼 감독의 낭만을 달콤하게 향유했다. 그리고 왕가위 감독의 작품들을 통해 홍콩의 지나간 시절들을 기억했으며, 아메리칸 뷰티(샘 멘데스, 1999)를 통해 ‘오늘이 내 남은 인생의 첫 날’임을 배웠다. 허세로 시작한 영화는 서서히 내 인생에 스며들었다.
문득 나는 영화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가올 고난과 역경을 떠안으며 꿈과 낭만을 택했다. 현재 대학원에 진학해 영화이론을 공부하며 바라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예전처럼 좋아하는 영화를 맘 놓고 볼 수 없게 됐다. 오히려 고된 분석 작업을 하며 좋아하는 영화마저 흥미를 잃게 됐다. 꿈과 낭만은 단지 이상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따르면 내게 고된 분석 작업은 영화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기 위한 단절의 과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영화를 사랑함과 동시에 영화와 멀어지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겪는 흔들림은 앞으로 무수히 겪어야 할 과정처럼 보였다. 어쩌면 많이 흔들릴수록 더 잘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불안감이 조금 진정됐다. 나는 이제 사랑과 단절이 공존하는 지금을 마음껏 즐기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영화를 앞으로도 여전히 사랑할 것이다. 그 여정에 May the Force be with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