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티카 Oct 15. 2021

몸 말고,
우리의 마음이 궁금하진 않나요?

매드프라이드 유니버스 ep.8

글 이철승
사진 이철승



매드프라이드 서울 경험공유자 율무



율무 : 초등학생 때 친구들이 제 외모에 대해서 안 좋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어요. 가뜩이나 위축된 상태에서 그때 들었던 말이 굉장히 상처가 되었던 것 같아요.


율무님은 오랜 기간 섭식장애의 하나인 거식증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율무 : 가장 안 좋았을 때는 역시 중고등학생 때였어요. 그때가 외모에 가장 민감한 시기이기도 하잖아요. 마른 몸을 가지고 있어야만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줄 것만 같았어요. 조금이라도 살이 붙어도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누가 말랐다고 얘기하면 좋으면서도 또 마른 몸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더 말라야만 할 것 같아서 엄청 부담되고 불편했어요.


‘완전 날씬한데’, ‘어쩜 이렇게 동안일까?’. 어린 학생들이나 다 큰 어른이나, 누군가의 외모에 대해서 쉽게 평가하고 말하는 우리의 문화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율무 : 좋게 말하던 부정적으로 말하던, 누가 제 몸에 대한 얘기를 하면 증상이 악화돼서 며칠간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율무 님은 고등학생 때 기숙사에서 지내며 친구들과 수업은 물론 모든 식사와 생활을 같이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친구들은 조금씩 율무님에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율무 : 그때는 말라도 너무 말랐으니까 사람들이 종종 괜찮냐고 물어봤어요. 거식증은 몸으로 드러나니까 감추기가 힘들거든요. 하지만 얘기하지 않았어요. 말하면 그게 또 낙인이 될까 봐 두려웠거든요.


거식증은 보통 우울증을 동반하게 되고, 율무 님도 거식증과 함께 우울증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율무 님의 기분이나 감정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몸에 대해서 물어볼 뿐이었습니다.



거식증은 다이어트가 아니랍니다


십 대의 율무 님은 자신이 강박적으로 몸무게에 집착하고 먹는 음식마다 구토를 해도 그것이 거식증인지를 몰랐습니다.


율무 : 나중에 대학교에 진학하고 성인이 되어서야 거식증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거기에 제가 겪었던 모든 증상이 나열되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제서야 알게 된 거죠. 저조차 거식증인지를 모르니까 원인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어디에 물어봐야 할지도 몰랐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도 알 수 없었던 거죠. 다른 사람에게 제 상태를 언어화해서 설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어요.


하지만, 거식증인 것을 알게 된 이후에도 크게 달라진 것 없었습니다.


율무 : 병명을 알게 되니까 궁금한 게 많아져서 정보에 갈증을 더 느꼈지만, 정보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어요. 할 수 있는 건 인터넷에서 검색하는 정도였지만, 신뢰할 수 있는 정보는 찾기 어려웠고 왜곡된 정보만 가득했어요. 


그나마 달라진 것은 이제 성인이 된 율무님은 부모의 동의 없이도 정신건강의학과에 갈 수 있다는 정도였습니다. 


율무 : 근데 거식증은 약물치료조차 불가능해요. 우울증에 대한 처방을 받을 수 있지만, 우울증을 치료한다고 거식증이 낫는 것도 아니거든요. 


정보를 구하기도 힘들고 치료도 쉽지 않았지만, 또 다른 문제도 있었습니다. 


율무 : 제 자신이 섭식장애 당사자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느낀 게 정신건강 당사자에 대한 사회 시스템이나 제도가 부실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간단하게 예를 들자면 대학교에 다니면서 정말 힘들어서 수업을 듣기 힘든 날이 있거든요. 하지만 결석사유서에 진단서를 첨부하려고 해도 정신건강의의 진단서는 인정되지 않아요.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긴 설명이 요구됩니다. 상대가 거식증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면 그 설명은 더 길어지거나 아예 실패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때 당사자를 힘들게 하는 것은 어쩌면 설득력 있는 언어를 찾아야 하는 수고보다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현실이 아닐까요?



경험공유자의 방으로 들어오세요


자신을, 거식증을, 정신건강을 이해해주지 않는 세상에, 율무 님은 앞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할 듯합니다. 


율무 : 지금 대학원에서 장애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어요. 학부에서도 사회학을 전공했는데, 졸업 후 장애인 사회복지나 정신장애 당사자에 관련된 사회의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요.


정신건강 당사자들을 위한 확고한 목표와 의식을 갖고 학업을 이어가고 있는 율무 님이지만 그런 그에게조차 세상으로 나오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율무 : 매드프라이드에서 ‘경험공유자의 방’을 지켜달라는 안티카 대표님의 제안을 받고 처음에는 조금 망설였어요. 가상의 온라인 공간이라고 해도 이렇게 거식증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얘기하고 사람들 앞에 선 적이 없거든요. 누구에게 조언할 자격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고요. 제 섭식장애는 그냥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괜찮아진 거라 특별한 비법이나 치유 방법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라서요.


망설이는 율무 님에게 안티카는 ‘경험공유자의 방’은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임을 전했습니다. 


율무 : 그 얘기가 공감되더라고요. 제가 중고등학생 때 가장 절실했던 건 어쩌면 병명이나 치료방법을 아는 게 아니고 그냥 제가 당시 경험하고 있던 것들을 얘기할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얘기할 수도 없었고 얘기할 상대로 없었으니까요. 그걸 생각하면 그때 제가 그랬듯 지금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았어요. 


율무 님은 그렇게 ‘경험공유자의 방’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경험공유자의 방’에서 몸이 아닌 서로의 마음에 관해서만 물어보고 얘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언젠가 경험공유자의 방안으로 사회 전체가 들어올 날을 기다리면서요. 





제 3회 매드프라이드가 온라인 가상 공간 게더타운에서 개최 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2021 매드프라이드 유니버스

일시 : 2021년 10월 10일

장소 : 매드프라이드 게더타운 


매드프라이드 공식 홈페이지 : https://ffa.co.kr/madprideseoul

안티카 공식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antica.mind

안티카 공식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anticamind

유튜브 채널 ‘모두를 위한 자유’: https://www.youtube.com/c/모두를위한자유

매거진의 이전글 더디지만 달라지고 있는, 세상 밖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