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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의미 Mar 01. 2024

내 마음은 누군가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

세상의 모든 '나'를 위해

'쓴다'라는 말과 '쓰고 있다'라는 그런 다분한 의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꿈을 가지는 것은 차라리 낫다. 스스로 '할 수 있다'라는 기분이 들게 해 주기 때문이다. 예술은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기분이 중요하다. 취권의 고수는 술에 취해있어야 한다. 취권과 달리 글은 나중에 깨어나서 고칠 수 있다. 취할 수 있을 때 마음껏 취하고 무엇이든 써놓자.



한 글자를 쓰는데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고심해도 상관없지만 언젠가 끝을 맺어야 한다. 글자 하나에 그렇게 고민할 만큼 지금의 나에게 능력과 인정이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고민을 하는 이유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인지 내가 잘 보이기 위함인지도 중요하다.



잘 쓰는 건 어차피 남들이 평가하는 일이다. 그러나 남에게 인정받은 사람은 글을 잘 쓰는 것일까? 인정을 넘어 그 사람이 평가받을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은 있는 것일까? 그가 세상에서 글을 가장 잘 쓴다면 누가 그를 평가해 줄 수 있을까. 예술가는 사랑을 받고 크다가 마지막에 가서 고독해진다.



무언가를 알고 난 후에는 진실에서 멀어질 수 있다. 비판을 하지 못하고 그 의견의 뒤를 따라 말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느리게 의미 없는 글을 쓰고 있다. 의미 있는 글을 써낸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인위적이라 견딜 수가 없다. 판단은 감히 내 몫이 아니다.



한 사람쯤은 이딴 식으로 글을 써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글을 잘 쓰는 똑똑한 사람들이 많아서 다행이다. 어떤 것이 유익하고 그나마 도움이 되는 글일지 짐작은 가지만, 나는 도저히 그런 식으로는 쓸 수가 없다. 쉽고 편안한 글이 좋다는 건 알지만 때때로 풀리지 않는 마음들은 해석되지 않고 난해한 모습으로 남아있길 원한다.



결국 나는 글을 쓰려는 한 사람으로서 계속해서 '나'를 외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글에서 '나'를 빼고, '그리고', '그래서', '그러므로', '하지만', '그러나'와 같은 것들을 빼라고 해도 그럴 수가 없다. 그런 건 글을 잘 써야 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다. 남들이 말하는 그 기본이라는 것은 내게는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



어떤 것을 사용하든 그것이 그 사람을 계속 쓰게 만들어준다면 그게 진실이다. 글쓰기가 단순한 글자의 나열로 그치지 않으려면 더 마음과 가까운 것을 써야 한다.



말을 고르고 있는 건 아직 두려운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나'를 빼지 않으면 사람들이 읽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타인이라도 나와 가까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걸 빼버리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 사람들은 완벽한 타인으로 돌아서게 되지 않을까. 그때야말로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쓰는 사람이 돼버릴지 모른다.



스스로 '소설을 써야 하는 사람'이나, '에세이를 써야 하는 사람'으로 규정할 필요는 없다. 그것들은 진심을 담아낼 형식이다. 마치 '룰은 깨뜨리기 위한 것'이라며 형식을 무시할 필요도 없다. 제아무리 맑은 물도 어딘가에 담기지 않으면 그 투명함이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형식은 필요하다.



가장 나다운 것이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것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반대로 가장 나와 동떨어진 것들이 내가 추구해야 하는 것이라면? 진정 시대의 글쟁이들은 그런 걸 일일이 다 규정하고 받아들이고 있을까.



무엇이든 '나답다'라고 억지를 부리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내가 쓸 수 있는 것이 나의 글이며 자연스러운 것을 그대로 보여주자는 것이다. 나를 상대로 가스라이팅을 할 필요는 없다. 원래 점잖은 사람이었다니, 착한 사람이었다니,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니 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속일 필요는 없다. 남들이 원하는 착한 아이가 되어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없다.



자연스러운 것이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만들어진 것이 된다. 바뀐 내용은 더 이상 나에게나 읽는 이들에게나 진실이 되지 못한다. 나는 나의 자연이다. 자연은 그대로 있을 때가 가장 완벽하다. 이 사람에게도 보여주고 저 사람에게도 보여주고 하는 것은 소위 개발을 하겠다는 말이다. 목 좋은 곳이라고 사방팔방 콘크리트를 치고 카페를 차리고 캠핑장을 짓기 시작하면 자연은 그 길로 끝장이다.




이미지 출처(© zioxis,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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