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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베린 변호사 Nov 08. 2023

어느 변호사의 전세사기 상담 일지(1)

셀럽이 된 사기꾼들

1. 전세사기 피해자 상담


 더 큰 오류 상황에 깊이 관여하지 않기 위해 위 초고속으로 사표를 냈습니다. 그러던 중 대한변협 법률구조재단과 HUG(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전세사기 피해자가 많은 지역 피해자들을 위해 '법률상담 변호사'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나왔습니다. 재빨리 지원한 덕에 운 좋게 '법률 상담 변호사'로 위촉됐습니다. 기간은 10월 10일부터 10월 27일까지였고 이 중 저는 9일간 상담 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


 공교롭게 첫날 첫 타임은 제 담당이었습니다. 선정된 동사무소 네 곳에서 각 3일씩 진행했고 운영시간은 오후 12시부터 8시까지였습니다. 처음엔 큰 부담을 가지지 않고 갔던 듯합니다. 법률 상담이야 늘 하던 업무였고 자신 있는 분야였기 때문에 문제없을 거라 자신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곧 그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뉴스에서 막연히 피해자가 많다고 소식을 접했었는데 실제 현장에서 느낀 피해자들은 정말 많았습니다. 그리고 하나같이 무엇이든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간절했습니다. 하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없었습니다. 상담 개시 첫날은 4시간 동안 20명을 상담했습니다. 화장실 다녀올 짬도 나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밀려들었습니다. 사실 짬을 못내 화장실을 못 갔다기보다 간절한 눈동자를 두고 휴식 시간을 찾는다는 게 죄짓는 것처럼 느껴졌달까요.


 피해자의 95%는 20~30대 사회초년생 직장인들이었습니다. 해결책을 구하는 사람,  우왕좌왕하는 사람, 앉자마자 우는 사람, 자신이 아는 게 맞냐고 확인받는 사람 등. 대부분 같은 가해자 일당에게 피해를 당했지만 저를 찾아온 100명이 훌쩍 넘는 사람 중 같은 사연을 가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같은 빌라 피해자라도 입장이 모두 달랐습니다.


 10월간 이 지역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가장 많이 만나본 변호사로서 느낀 점, 알게 된 것들을 이곳에 기록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먼저 사람들이 비슷한 사기 수법을 인지하고 조금이라도 의심이 든다면 과감하게 계약을 하지 않길, 더 이상의 피해가 없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큽니다. 두 번째는 피해가 예정된 임차인이 이 글을 보며 조금이라도 답답함을 해소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피해자들이 제 또래인 청년들인 경우가 많아 더욱 마음이 쓰였던게 솔직한 마음입니다.


 대부분 피해자들이 전세기간 만기 후 다가올 피해를 속절없이 기다리며 무엇을 해야 할지 가늠도 못한 채 법률 상담을 찾았습니다. 이 기록이 그들의 숨 막히고 기나긴 매일 밤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2. 사기 수법


 제가 담당했던 지역 전세사기 수법은 이렇습니다.


 임대인 A는 다수의 공인중개사들을 고용해 그들과 짜고 임차인들을 속였습니다. 예를 들어 공인중개사는 계약서 쓸 때 받는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 선순위보증금(계약하려는 임차인 전에 들어온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모두 합한 금액)을 허위 기재하고 축소 설명해 임차인이 안심하고 계약을 체결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임차인들이 계약을 망설이면 공인중개사가 나서 '임대인은 돈이 많다, 여기 말고도 건물이 엄청 많은 부자다'며 바람잡이를 했습니다. 임대인은 계약일에 고급차를 타고 나타나 명품 옷, 시계, 액세서리 등을 과시하며 은근히 재력을 과시했구요.


 임대인 A의 악행은 계속됐습니다. 여자친구 B와 친동생 C를 동원해 이들 앞으로 빌라를 사고 그들을 임대인으로 내세워 임차인들과 계약하기도 했습니다. 여자친구 이름을 딴 법인도 설립해 그 법인을 임대인으로 하는 계약도 했습니다. 피해 예정 금액이 3,000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실제 A일당이 챙긴 돈이 얼마인지 아직 알 수 없으나 그들은 단 시간에 상당한 돈을 챙긴 듯 보입니다.

 

 그러나 분수에 맞지 않는 돈을 빠른 시간 내 챙긴 A의 악행은 그 오만함 때문에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A가 구속된 것이죠. 하지만 A가 구속된 사유는 전세 사기가 아닌 문서위조 혐의였습니다. 계약 과정에서 주택도시보증공사 명의의 문서를 위조해 사용하다 발각된 겁니다. A의 구속으로 그나마 돌려 막기하며 자금을 융통하던 A일당의 자금줄은 완전히 막혔습니다. 임대인인 A가 연락이 안 되고 비슷한 즈음 수도권에서 대규모 전세사기 피해 사건이 터지자 불안한 임차인들이 상황을 알아보다 이 지역 전세 사기 정황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게 9월에 있던 일입니다.


 그전부터 사기 사건을 담당할 때마다 느낀 건 누구라도 사기 피해자가 될 수 있단 사실이었습니다. 특별히 피해자들이 세상물정에 어둡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악의를 가지고 누군가를 속이려 들면 피해자는 속절없이 당합니다. 사기죄는 사람간 신뢰를 이용하고 배신하여 이득을 챙기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다른 어떤 범죄보다 피해자의 피해 회복이 더딥니다. 그만큼 물질적 피해보다 정신적 피해가 오래 남는 범죄라 악질입니다.


 다음 편에는 전세사기로 인해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할 피해가 예정된 사람들을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법률적 조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내가 상담했던 내용을 기초로 한 매뉴얼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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